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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아픈 여의길-새만금바람길

아픈 여의길-새만금바람길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 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 그것을 섬이라고도 할 수 없어 여, 라 불렀다/ 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 검은여

                                <나희덕의 시 ,부문>

팽나무와 필자

2년 전에 망해사를 찾았다가 맛 뵈기 걸었던 새만금바람길생각이 지폈다. 바다애인을 앗긴 채 앙상한 고목팽나무를 보듬고 바닷바람을 맞을 망해사의 고적한 겨울모습이 아른댔다. 그 바닷가를 따라 생긴 새만금바람길은 바다를 잊혀버린 섬도 뭍도 아닌 쓸쓸한 상처여로, 망해사여로, 새만금여로 떠오르는 거였다.

진봉방조제에 섰다. 겨울바다는 가을황금들판으로 둔갑됐다. 푸르디푸를 바닷물 대신 누런갈대밭이 펼쳐졌다. 끝도 안 보이는 갈대숲은 스산한 바람 한 떼를 몰고와 너울춤을 추고 이내 누런파도를 일궜다. 누런갈대바다의 누런파도라! 갈대바다를 누군가가 모세의 기적을 일으켜 갈대숲길을 만들었다.

들머리인 진봉방조제 아래

바다 속에 물고기가 유영해야 할 텐데 갈대숲에 박새들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갈대이파리에 메단 앙증맞은 둥지가 예술작품이다. 사람도 저리 이쁜 집을 못 지을게다. 연인 한 쌍이 손을 잡고 박새의 안방을 엿보고 있다. 글고보니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딱이단, 아니 나도 트랜지스터걸이라도 옆에 있음 좋겠단 생각이 굴뚝연기처럼 솟았다.

갈대바다는 하얀 조가비와 바위들을 오래전에 해안가로 밀쳐내고, 웅덩이는 하얀소금밭을 만들었다. 그 하얀소금웅덩이가 멀리선 바다호수처럼 보였다. 찰진갯벌에 깔린 갈대를 밟으며 걷는 트레킹이라니, 오직 갈대의 속삭임과 박새들의 수선거림만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걷는 맛과 멋은 새만금바람길의 은전일 것이다.

뭍으로 오른다. 옹색한 밭뙈기두렁의 호사스런 쉼터에서 지나온 황금갈대바다를 되돌아본다. 망망 금빛너울이다. 철망길을 걷는다. 바다와 육지를 갈랐던 해안철책선은 반공이데오르기의 상흔이다. 십여 년 전까지도 주둔했던 해안경비병이 철수, 철망이 무너졌어도 무탈한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자나 깨나 반공을 주술처럼 부르짖으며 금방 공산화 될 것처럼 주눅 들게 했던 독재자들의 허구가 씁쓸해진다.

전선포 철망길

사드를 생각한다. 사드 없음 김정은이가 핵폭탄을 터뜨려 우리가 초토화되고 미친짓 한 북괴는 말짱할까? 또라이 김정은이는 지 죽을라고 모험을 할까? 사드 없는 한미방위조약은 무용지물인가? 미국이 괌이나 일본에 배치한 사드만으로도 대북억제는 가능하지 않을까? 중국이 삐져도 북한핵을 포기시킬 수 있고, 한중경제의 천문학적일 피해도 미국이 보상해 줄까?

철망길 해안초소

대북강경책만이 살길인 것처럼 호들갑 떤 박근혜가 탄핵으로 물러났다. 군사독재박정희키드들은 왕위에서 쫓겨난 광해군으로부터 배울 점이 있다. 당파싸움에 쫓겨난 광해는 명과 청나라사이 등거리외교로 위기를 극복했고, 반정에 성공한 인조는 친명정책에 올인하다가 삼전도의 굴욕을 치뤘다. 400여 년 전, 인조반정때 내시의 도움으로 사다릴 타고 월담피신한 광해나 오늘 경호원호위 속에 사저로 쫓겨난 박근혜로부터 우린 뭔가를 깨달아야하지 않을까?

반공을 숙주삼아 무기경쟁을 해서 평화를 찾는다는 매파의 논리는 제국패권주의 군수업자들의 로비의 산물일 텐데 우린 벙어리냉가슴으로 따르는 건 아닐지? 400여살 묵은 앙상한 팽나무고목을 보듬고 바다 아닌 죽은 갯벌을 보고 있는 망해사에 들어섰다. 동해의 낙산사와 남해의 항일암과 더불어 서해바다의 짝꿍인 망해사한테서 영원한 연인인 바다를 빼앗은 것도 박정희개발독재키드들이었다.

새만금방조제에서 노다지를 캐 국부를 보장하기라도 할 것처럼 선거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이 된 노태우는 정작 새만금사업을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선진국은 지금 방조제를 허물어 갯벌을 살려 생태게를 복원시키려 혈안인데 말이다. 지금까지 까먹은 수십조원의 혈세보다 더 퍼 부어도 답이 묘연한 새만금방조제사업은, 황금어장을 악취 진동하는 썩은 갯벌로 만들었다. 가난한 어부는 삶의 터를 잃었다. 나도 전에 가끔 여기 신포갯벌에서 바지락을 캐며 바다속 신비를 체험하고 싱싱한 횟감으로 식도락을 즐겼었다.

망해사마당의 450살팽나무

팽나무발밑까지 파도 철석 대던 때의 망해사는 이젠 고얀냄새 땜에 코 막는 망뻘사로 개명해야하는지 모른다. 서해의 명품 해넘이를 자랑삼았었는데 이젠 황혼빛깔 없는 갈대밭일몰로 밤을 맞을 망해사가 됐다. 망해사에서 조망하는 갈대밭 속의 물웅덩이는 멋진 그림 같지만 가까이 다가서기 겁난다. 해선지 인적 뜸한 망해사를 뒤로하고 송림사이 바람길에 들어섰다.

낙락장송이 도열한 야산길은 품위와 멋이 있다. 구릉을 걸으며 갈대와 갯벌이 빚은 묵화를 엿보는 트레킹으로 그만인 코스다. 왼편엔 엷은 아지랑이가 지평선을 살짝 가린 드넓은 만경평야다. 목이 찢어져라 악써도 메아리 없을 망망 평야와 바다 한 가운데를 어슬렁대고 있는 거다. 아쉬운 건 보도블럭을 깔았다는 점이다. 보도블럭을 깔아놓은 이유를 모르겠다. 멍청한(?) 지자체장의 푼수짓 탓이다.

신포항에 닿았다. 깔끔하게 단장한 신포포구는 이젠 어항이 아니다. 대합과 바지락의 대명사였던 신포포구는 별 볼일 없는, 흥청망청할 꿈도 뺏긴 한적한 포구가 돼 따쓰한 햇빛에 희멀거니 메말라가고 있었다. 새로 만든 거대한 주차장엔 차 한 대도 없고, 아래 수로엔 갈 곳을 잃은 어선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물빠진 여는 밀물 때를 영원히 잊고 파도의 울음을 들으며 햇볕에 굳어버린 몸둥이를 말리고만 있어야 한다. 수로의 바닷물은 폐기름 화장으로 생명을 최촉하나 싶다. 손님 없는 상가는 파시나 다름없다. 그 넓은 포구를 얼쩡대는 사람은 나와 어느 한 쌍의 커플뿐이다. 포구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 여를 찾아 나섰을까? 

담수호로 변한 바다, 왼편의 아스르한 제방이 바이클코스로~?

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 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 물에 영영 잠겨버렸을지도 모를 기억을/ 햇빛에 널어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만/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바위,/ 썰물 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그 바위를 향해서도 여, 라 불렀을 것이다.” 라고 나희덕시인은 읊었다.

바이클코스로의 제방을 그려보다

새만금방조제와 연결되지 싶은 제방공사는 마무리되나 싶었고, 막힘없는 포도는 바이클링코스로 욕심낼 만하다. 끝이 안 보인다. 자전거를 타고 어떤 장애물도 없는 하늘과 바다사이를 달리는 낭만을 그려봤다. 바람과 갈매기만이 동행꾼일 바이클아욷도반을, 아니 꼭 불원간에 달리고 싶다.

봉화산자락을 파고든다. 폐철책선에 이어진 폐초소터가 인적일 만큼 자연숲길이라 좋다. 봉수대자리는 복원공사중인가 싶다. 이곳 봉화가 익산함라산의 봉수대로 이어져 끝낸 서울남산까지 연기를 날릴 것이다. 10km새만금바람길은 막힘없는 서해바다와 호남평야를 안으며 호젓하게 낭만에 젖어들 수 있는 트레킹코스로 넘 좋다. 나의 치사한 욕망으론 지금처럼 입소문 안나 오래오래 호젓한 트레킹로드였음 좋겠다. 

봉수대 

갈대와 바람과 나무와 새와 파란한늘만이 무한대로 펼쳐진 새만금바람길 사이를 가르는 물길은 멋진 수묵화로 다가오고, 고즈넉한 망해사의 맛깔나는 스토리텔링은 정서까지 살찌울 테다. 아직 회자되지 안해서 더욱 호젓한 트레킹코스, 데이트장소로 새만금바람길만한 데가 어딜까?싶었다. 시작점인 진봉방조제를 향한다. 왕복20km인 셈인데 전망 좋고 빡세지 않아선지 거뜬했다.

  2017. 03. 12

봉수대서 본 김제평야

봉수대서 본 서해(새만금담수호)

신포항의 텅빈 주차장

 

망해사해우소

망해사우물

 

전선포의 호사스런 2층쉼터

하얀소금길은 멀리선 물웅덩이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