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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쌍곡구곡을 품은 칠보산(七寶山)의 멋

쌍곡구곡을 품은 칠보산(七寶山)의 멋

 

 

푹푹 쪄디끼기를 백여 일쯤 됐을 테다. 징글맞은 폭염은 적운사이로 파아란 하늘 한 조각을 선뵈기 위한 앙탈이었나 싶게 오늘 아침하늘이 그리 신선할 수가 없다.

새벽에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도 했다. 지긋지긋하던 여름은 밤새 안녕이듯 괴산 칠보산을 향하는 여정은 산뜻한 기분으로 시작됐다.

 

45번고속국도에서 517번지방도로 갈아타고 쌍곡리 병암(餠巖;떡바위)마실에 닿은 건 10시를 넘겨서다. 버스는 병암을 지나쳐버린 통에 버스에서 내린 나는 잰걸음으로 되짚어 떡바위 앞에 섰다. 펑퍼짐한 시루떡은 산촌에 모여든 몇 가구식솔들을 먹여 살릴 만 했다. 그렇게 모여든 촌락이 지금은 산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뤄 살판났지 싶다.

-병바위(떡바위)

문수암계곡으로 빠져 칠보산을 향한다. 문수암 깊은 웅덩이에 모인 물은 옹색하기 그지없고 하얀 자갈들이 민낯을 들어내 골짝의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떡바윌 디카에 담아오느라 행둘(행복한 둘레길)일행에서 튀어나온 나는 초장부터 홀로라 맘이 다급해졌다. 바람 한 점 없는 골짝은 산님들 땜에 빨리 갈 수도 없지만, 서두르는 폼에도 비 오듯 할 땀이 솟질 않는다.

-문수암-

선선한 냉기는 정녕 폭염을 멀리 쫓아버렸나 싶다. 반시간쯤 헐레벌떡대니까 행둘님들이 쉬고 있다. 아는 분이라야 회장과 상황봉뿐이지만 반갑고 안도가 됐다. 행둘님들과의 산행은 오늘이 첨이다. 김정순회장(그곳에 가고싶다)은 댓글로 허물을 트고 몇 개월 전에 딴 산행에서 잠깐 인살 나눴었는데 나는 늘 미안한 맘을 갖고 있었다.

 

그곳엘 가고싶다, 찾아뵌다고 입방아만 찧곤 여태 뭉그적대서였다. 낙서하길 좋아하는 놈들이 본시 입만 뻥긋한다고 지례짐작이야 하고 있었을 테지만, ‘그곳에 가고싶다고 몇 번을 뇌까렸었으니 뻔뻔하다 할만하다.

물소리 바람소리도 없는 골짝은 뜨내기 산님들 수다소리로 메꿔진다. 하거나말거나 바위와 소나무의 연애질은 나의 눈길을 뺏고 간밤에 뿌린 빗방울을 머금은 푸나무는 생기가 돋았다.

 

쌍곡구곡 중에 문수골의 3곡 병암과 4곡 문수암은 봤는데 5곡 쌍벽과 6곡 용소를 놓친 채 청석고개에 이렀다. 높이 10m의 양쪽 단애쌍벽과 명주실타래를 다 풀어도 끝이 없다는 깊이의 용소는 물이 마르고 하얀 자갈과 바위들뿐이라 건성으로 지나치기 쉬웠을 것이다.

칠보산정을 향하는 능선길은 산수화속으로 파고드는 거였다. 농염한 연애꾼들이 엉클어진 암송(巖松)마을에 서면 첩첩산릉이 파도처럼 물결치며 안무 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여기가 속리산국립공원자락일 테니 박달산,악휘봉,장성봉,대야산,희양산정이 물굽이 칠 테고, 안개 속으론 속리산능선이 해일처럼 넘실댈 테다. 빗발이 후두둑 후두둑 이파릴 때린다. 난 바람막이 자켓을 꺼내 걸쳤다. 한줄기 소슬바람이 산릉을 훑는다. 이 청량함이라니~!

나무이파리들은 새초롬하게 반들거리며 병아리눈물방울만한 물방울을 안 쏟으려 부르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로 얼마 만에 얻은 빗물이나! 이파리위에서 빗방울은 미끄러지듯 춤추고 있다.

-큰바위 뒤에 숨은 꼬마마이산-

자연은 그렇게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다. 주어진 만큼만을 최대한 효용한다. 칠보산정(779m)에 올라섰다. 걸판진 암송들의 연애판타지다.

걸판진 건 산님들의 오찬파티(?)이기도 했다. 행둘 어느 산님이 부르는데 어디 엉덩이 드밀고 앉아 입가심할 자리도 없이 빼곡히 찼다.

이미 정오를 넘겼다. 할 수 없이 하산 길 어느 마땅한 자릴 찾아 기갈을 때우기로 했다. 거북바위동네에서 출입금지구역을 월담해 거암사이에 배낭을 풀었다.

-거북이-

고사목 한 놈이 바위 숲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놈이 어떤 눈깔 짓을 하던 간에 나는 우선 시장기부터 해갈해야했다. 거북이 옆모습이 푸나무사이로 아른댄다. 혼자만의 식사도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느긋하게 즐길 수가 있어 좋다. 칠보산정에서 안부까지의 암송(巖松)마을들은 경탄 이외 언어도단이다. 오직 산님에게만 허락한 산수화의 절경이라. 홀로산행의 맛은 그것들을 오지게 즐길 수가 있단 점일 것이다.

-필자의 점심때 파수꾼한 고사목-

안부에서 살구나무골로 들어섰다. 절말을 향하는 쌍곡계곡의 물길이 말라 아쉬웠다. 하긴 사라진 물길 탓에 희멀건계곡의 민낯을 엿볼 수가 있었다. 알몸 그대로인 바위와 돌멩이들은 퇴락한 낙엽 한 뭉치씩 보듬고 후미진 치부를 가렸다.

그래도 폭포의 명줄은 질기다. 살아있기에 소는 명경같이 훤하게 바닥을 들춰 보인다. 알탕을 즐기는 상황봉이 부럽다. 그가 오늘 또 나의 염염한 모습을 몇 컷이나 담아 까발릴지 궁금하다.

-거북 대가리, 아니 ET같다-

7곡 쌍곡폭포는 참으로 불쌍했다. 백팔노인네도 고렇게 오줌 싸지는 않을 것이다. 지자체에선 기우제라도 지내야 할 판이다. 행둘님이 준 살얼음 핀 막걸리 한 컵의 시원함이라니! 술맛 모르는 나도, 넘 차 목덜미가 따가워도 그 시원한 청량감은 그만이다. 3시 반쯤 절말 쌍곡휴게소에 닿았다. 행둘님들이 상가좌판을 빌어 뒤풀이가 한창이다.

-백여년의 삼각관계가 끝날 무렵-

근디 이건 흡사 잔치판이다. 냉콩우무국,영양탕,저육볶음,전부침,구운옥수수,구운가래떡은 여느 뒤풀이에서 맛보기 쉽잖은 먹거리였다.

그곳에 가고싶다의 그곳의 후덕한 인심을 절감하는 자리였다.

찜통더위가 사라진 오늘, 파아란 하늘을 내보이는 처서의 일기, 한줌의 맛뵈기 소나기, 한 떼의 운무와 뭉게구름이 뒷받침한 칠보산과 쌍곡구곡의 빼어난 자연은 모처럼 맞는 기분 좋은 산행 이였다.

-찌질찌질한 쌍곡폭포보다 폼 났다-

불교의 법화경에 나오는 일곱 가지 보배 - , , 산호, 파리, 마노, 기거, 유리가 있다는 소문에, 더는 일곱 개의 봉우리가 보석처럼 아름답다고 칠보산이라 하는데 옛날에는 칠봉산이라고도 했단다.

또한 쌍곡구곡(雙谷九曲)은 약 12km에 이르는 협곡 안의 절경 아홉 곳을 일컫는데 오늘 산행코스8km에선 네댓 개만 볼 수 있다.

 

피서산행지로 딱인 쌍곡구곡을 찾은 오늘, 지긋지긋한 여름나기는 오늘을 위한 몸살이였던지, 아침처럼 뭉게구름 사이로 얼굴 내미는 파란하늘이, 빛살치는 엷은 태양이 참으로 싱그럽다.

행둘, 그리고 그곳에 가고싶다에 맘의 박수를 보낸다. 친절에 맘 뿌듯했다.

2016. 08. 28

 

-백여년을 동거하다보면 암송도 일체가 된다-

-떡바위-

 -문수암 명경을 파문짓는 산님-

-말라버린 폭포의 누런물길-

-부채바위-

-칠보산정-

-산정의 오찬장. 방 빼길 기다리는 딱한 산님 -

-모델 요청힌 적 없는데?-

-얼마나 배고팠으면 벼랑에서, 목구멍이 포도청?-

-필자-

 

-또 하나의 거북이 밑에서 점심자릴 폈다-

 -공룡, 티라노 사우루스의 똥- 

-뭔 생각 중인데 결례했슴다-

-쌍곡폭포-

-쌍곡폭포 소-

-100여일을 몽니 부렸던 폭염이 빚은 아침에 선 뵌 푸른하늘

-아침에 선 뵌 같은 장소의 석양의 푸른하늘-

-출입금지구역인 쌍곡폭포상류를 범칙한 필자를 용케도 잡았다- 

-위 필자사진 6매는 상황봉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