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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사랑을 하려면 부소산엘 가라

사랑을 하려면 부소산엘 가라

 

-고란사종각-

 

추석연휴 나흘째 날, 단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폭염 뒤끝일 어제부터 찔끔댄 빗발은 실로 감로수에 다름 아니었다.

구봉산행을 단념한 우린 영화밀정을 볼까 저미고 있는데 이수가 지는 봤다고 해서 부여부소산을 찾아갔다. 지나 나나 삼천궁녀로 회자되는 낙화암을 가본지가 기억도 가물가물해서였다.

 

-백마강-

백제후예로 태어나 익산에 살면서 백제의 성지를 모르는 협량이란 소린 듣기 뭐하기도 해서다. 독특한 지붕의 부여문화재연구소 앞에 주차를 하고 구문매표소를 통과할 땐 정오쯤 이였다.

울창한 소나무들이 목욕재개하고 포도까지 물청소하곤 우릴 맞는다. 소나무숲길은 정갈하고 청량하다. 반질대는 송림사이로 부서지는 부슬비는 우산 받치기가 민망할 축우(祝雨)였다.

 

 

낙화암을 향한다. 송림 빼곡 찬 구릉을 오르는 길은 별천지 파라다이스입문 같다. 잘 다듬은 포도(鋪道)는 이름도 생소한 테뫼길을 낳아 부소산의 혈관처럼 얽혀 산책하기 그지없이 좋다. 멀리서 보면 커디란 봉분처럼 생긴 부소산(106m)은 테뫼식산성과 포곡식산성이 겹겹이 어울러 쌓은 능선의 파도를 품고 있는 성싶다.

 

 

랑비축복속에 송림 사이를 걷는 우린 시작부터 산뜻한 기분이 되어 여길 잘 왔다고 자축했다.
부소산정에 있는 사자루(泗溠樓)에 올랐다. 달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시인이 된다고 했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친필이고, 뒤쪽 백마장강(白馬長江) 글씨는 서예가 해강선생의 작품이란다.

 

-백화정-

아래 낙화암이란 바위잔등에 백화정(百花亭)이 날아갈 듯 위태하다. 굽이 친 소나무들은 육각지붕 정자의 파수꾼이며 방풍목이다. 나당연합군에 쫓겨 꽃잎처럼 산화한 여인들의 원혼을 추모하려 1929년에 부풍시사(扶風詩社) 시모임 회원들이 세웠단다. 시인들의 사랑이 고차원적이다.

 

낙화암에서 본 백마강-

 

낙화암에서 조망하는 백마강의 유유함은 백제의 슬픈 격랑을 안고 도도하다. 유람선이 물살을 일으키며 원혼을 진무하는 푸닥거릴 하나싶고~!

가파른 돌계단을 밟고 고란사(皐蘭寺)를 찾았다. 하늘을 가린 짙푸름 속에 고즈넉한 모습 엿 뵈는 암자와 백마강탁류는 비로써 일상탈출에 들게 한다. 고요가 배어 몸 적실 것 같다.

 

-고란사-

 

귀목과 소나무 숲에 숨은 고란사극락보전과 종각과 삼신각의 고루함은 물기 밴 이끼까지 걸쳐 고색창연하다. 쫓기던 의자왕이 머물며 마시던 약수를 마시러 고란석정을 찾아 한 주발 마셨다. 한 번 마시면 3년은 젊어져 많이 마시면 어린애가 된단다. 아서라, 애가 되어 집에 들어서면 아내가 귀신에 홀렸다고 달아날 것 같아 두 사발만 마셨다.

 

고란사삼신각-

 

싱싱한 고란초 이파릴 따서 띄어온 물이라야 마셨던 의자왕은 당나라에 불모로 잡혀가서 이 약수와 정자의 추억에 얼마나 애달파했을까!

고란사는 여기서만 자생하는 고란초에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고란초약수로 패기 넘쳤을 의자왕은 삼천궁녀와 놀아난 폐왕이 아니었다. 의자왕은 현명했고 당찼으며 백제를 엄청 사랑한 임금 이였다. 해서 백성들은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다.

 

-고란사약수정-

 

삼천궁녀는 나당연합군에 쫓긴 수많은 백제백성들이 항복하느니 백마강에 투신자결 했던 정황을 비하한 은유일 뿐이란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나 삼국유사나 사기 어디에도 삼천궁녀 얘긴 없다.

인근에 서동과 선화공주의 넋을 기린 궁남지란 연못이 있고, 백제와 신라연합군은 고구려의 남침을 막아 한수이북은 신라가, 이남은 백제의 영토로 귀속시킨 혈맹이였다. 

 

-고란사귀목-

 

그 나제동맹을 헌신짝 차버리듯 하고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침공한 게 신라였던바 사비성에 쫓긴 의자왕은 고토회복에 올인 했을 터다. 영원한 우방도 적국도 없단 걸 삼국시대에 이미 입증한바다.

하여 백성들은 왕을 따라 자결을 택했고 그 헤아릴 수 없는 투신을 삼천궁녀라고 덧씌웠지 싶은 게다. 저 밑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백마강서 낙화암을 봐야 실감이 날 터이다.

 

 

-선착장-

 

다시 반월루에 올라 부여시가지를 훑고 옆의 태자골 궁녀사를 일별한다. 의자왕 20(660)에 나당 연합군에 사비성이 함락될 때 낙화암에서 꽃잎처럼 떨어져 죽은 백제인들의 충절을 추모하려 세운 제각이다. 부소산성의 리드미컬한 테뫼길을 밟으며 삼충사(三忠祠)에 들어섰다.

 

-사자루-

 

외삼문과 내삼문을 들어서면 물먹은 초록잔디가 유난히 깔끔하고 배롱나무꽃의 처연한 한적함이 물씬거린다. 사당에 삼충신인 성충,흥수,계백의 영정과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10월 백제문화제때 제향을 올린단다.

우린 사당우측토방에 앉아 요기를 때웠다. 붉은 배롱꽃무더기 뒤 오죽 숲에서 박새들의 합창이 오찬장의 즐거운 선율로 흐른다.

 

-삼충사-

 

그 재잘거림 속에 느닷없는 까치가 훼방을 놓고 하얀무궁화꽃이 부질없이 송이채 낙화한다. 소쩍새울음소리가 청승맞다. 연둣빛 모과가 가을식탁을 차렸는데도 먹을 게 별로인 점심자린 축우가 곱게 빚은 자연으로 포식한다.

참으로 정갈하고 청량한 경내를 꽉 채운 고요를 온 몸으로 체감하면서였다. 소식쟁이 이수는 안 먹고도 살맛났지 싶다. 먹는둥 마는둥 하는 그가 깡다구 쎈걸 보면 놀랍다. 

 

-상사화군락지-

 

살다보면 이런 점심자리도 생긴다. 열심히 찾는 자에게만 자연은 상응한 은전을 베풀 거란 생각에 미친다. 우리가 시인이 아니고 작곡가가 아니어서 쫌은 자괴감에 빠졌다.

경비원한테 물어 우람한 은사시나무를 배알하고 영일루(迎日樓)를 향했다. 역대 왕들이 계룡산정에서 떠오르는 해맞이장소로 부여시가지도 한 눈에 들어온다.


 

-영일정-

 

영일누각 뒤로 만리창(萬里倉;군대곡식보관창고)이란 군창지가 있고 좀 더 솔숲 길을 걸으면 수혈병영지란 움집이 있다. 1m쯤 움을 파서 사방을 나무나 짚으로 벽을 친 뒤 초가지붕을 얹은 움집이다. 백제 때의 주거문화를 가늠해 볼 수가 있었다.

포도와 테뫼길을 오르락내리락 산책하기를 세 시간쯤 하면서 가족이나 연인과 산책하기 이만한 좋은 곳이 있을까? 싶은 거였. 종일 걸어도 지겹지 않을 숲속의 역사문화전당이라.

 

-수혈병형지의 움막-

 

자연에 푹 빠져 역사의 향기에 취한채 한없이 거드름피우며 한량 짓 할 수 있는, 애정이 묻어나는 부소산 이였다.

오늘 궁남지()까지의 산책을 맘먹은 터라 승용차에 올랐다. 10분도 안 돼 들어선 궁남지는 연꽃파시장이긴 했지만 어슬렁대는 커플들과 한량객들이 심심찮했다. 무왕이 선화공주를 위해 판 연꽃방죽은 상상을 불허한다.

 

-군장터-

 

8월 초순엔가 연꽃축제에, 야간축제의 휘황찬란한 그림을 접했던 나는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려놓고 있다. 오늘은 그날을 위한 사전답사다. 그나저나 무왕은 스케일이 크다. 익산미륵사지도 그의 야심작인데, 아내를 위해 이 거대한 연방죽을 만들다니~!

사랑의 위대함에 다소곳해 질 수 밖에 없다. 아내를 위한 위대한 사랑의 선물로 인도의 타지마할만 찾을 게 아니라 무왕의 궁남지속으로 빠져들어여 함이다.  사랑따라 국경을 넘은 선화공주, 그 공주를 위해 궁남지를 만들어 연꽃사랑을 수놓은 무왕의 러브스토리를 새기는 거다.

 

 

-궁남지-

 

선화공주에 대한 새로운 얘깃거리가 회자되는데 어찌됐던 공주와 서동의 러브스토리는 기막히다. 서동과 선화의 참사랑을 생각하면 당나라를 끌어들인 공주의 친정후예들이 무지하게 밉다.

전쟁은 결국엔 애먼 백성만 죽인다. 삼천궁녀들의 죽음은 신라의 지배계층의 영토탐욕 탓이었다. 고작 한수 이북의 한 뼘의 영토확장이란 이름하에 통일(?)신라를 만들겠다고 말이다.

 

-궁남지연못-

 

김정은의 탐욕에 맞장구치는 게 꼭 최선일까? 무기경쟁은 파멸이란 걸 세계사가 증명한다5천년 단일민족에 분단은 고작 반세길 넘었다. 어려울수록 서로가 상생하는 외교정치가 아쉽다. 무왕의 담대함과 외교엔 귀신이였던 이승만 전대통령의 배짱을 귀감삼아야 함이다. 

 

가랑비는 내내 흩뿌리고 있다. 하루 종일인대도 축복받는 기분이다. 그 축우가 있어 부소산에 푹 빠져들 수가 있었다. 낙엽 붉게 물들면 부소산성에 녹아든 사랑의 냄새 맡으러 갈 거다.

글고 백제에서 젤 큰강인 백마강(백제인들은 백마강을 이용하여 서해로 나가 중국,일본과 교역했다)서 유람선을 타고 낙화암과 부소산의 진경을 구경해야겠다. 

2016. 09.17

 

-궁남지-

 

-테뫼길-

 

 

-삼충사 영정-

-삼충사경내-

-반월루-

-반월루에서 본 부여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