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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물깨말 구구리길 & 봉화산

 

물깨말 구구리길 & 봉화산

 

 

엊그제 봄내(춘천)에 많은 비가 내려 물깨말(강촌) 깊은 골짝 구곡폭포는 장관을 이루고 구불구불 아홉 구비 구구리길엔 물길이 넘칠 테다.

어느 해 겨울 꽁꽁 얼어붙은 구곡폭포의 수직빙벽을 보고 반해 강수량 많은 여름에 피서 겸 물깨말구구리길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오늘 나는 좀이 쑤신 나머지 늦게 배낭을 메고 봄내2길-물깨말구구리길트레깅에 나섰다. 정오쯤 매표소를 통과한다.

-강촌역-

 

짙은 녹음 속에 구구리물길소리가 청량하다.

장마를 쫓아낸 태양이라 여간 따가웠는데 구구리숲에선 갈갈이 찢기고 부서진 햇살이 유령처럼 푸나무사이를 떠돈다. 구구리물길 노래가 메조소프라노다. 바위를 차고 달리는 하얀 물살이 줄 차게 씨부렁대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니 수수깨끼 같은 쌍기억()머리 자를 내보이며 상상의 날갯짓을 펴보란다.

 

물깨말구구리길 8.1km를 걸으며 쌍기억의 스토리텔링을 엮어본다는 발상이 멋지다.

,,,,,,,,끝자를 풀어 얘기만들다보면 일상은 까마득해 진다는 게다구구리길의 깨침에 이르는 구곡혼(九谷魂)에 든다나?  구곡정에서 구곡혼을 붙잡지만 허사였다.

-구곡정-

 

(Dream)은 희망을, (Talent)는 재능이라, 꿈과 끼를 간직한 채

지혜의 꾀(Wisdom)를 쌓아 깡(Courage)다구 있는 용기로

(Connection)의 인맥에 연연하지 말고

우아한 꼴(Attitude)맵시로 산뜻한 깔(Freshness)솜씨를 다듬어

전문가인 꾼(Expert)으로 살다가

유종의 미 - (End)을 내려놓는 삶을 살라.”

 

 

구곡폭포를 향한다. 짙은 녹음터널 속에 굉음이 우렁차다. 데크계단을 오른다. 여간 가파르다. 녹음사이로 언뜻언뜻 내미는 까만 절벽에 하얀 물기둥이 부서진다. 아니 50m물기둥을 세우기 위해 물들은 아우성치고 있었다. 놈들의 응집력은 하늘로 치솟아 물기둥이 허물어질세라 수 없이 물 폭탄세례를 퍼 붙는 거였다. 그 물기둥의 기세와 아우성에 초목이 떨고 구구리하늘도 음습해진다.

-구곡폭포앞의 필자-

 

저놈, 물기둥에 올라탈 수 있는 건 구구리하늘이 시퍼렇게 언 겨울 며칠 동안이라. 난 그때 여기 이 자리에 서있었다. 지금 물폭탄세례에 젖어 생쥐 되면서 한참을 앉아 나를 묻었다. 어쩌면 그리 초라할 수도 있는 게 사람이기도 하다.

문배마을을 향한다. 그해 겨울에 비해 길은 넓혀졌지만 가파르긴 매한가지였다. 편백나무 숲이 더 우렁차 하늘은 설자릴 잃고 새들의 노래 소리는 더 낭창한가 싶다.

 

 

구구리길 중 가장 빡셀 고갯길은 하늘과 비행기만 보며 평생을 살았던 문배마을에 들어서기 위한 통과의례다.

문배(文背)는 문폭(文瀑;구곡폭포의 옛 이름) 뒤에 있는 마을을 뜻하는데, 이소응(李昭應)은 습재집(習齋集)에서 산으로 둘러처진 분지는 배와 흡사하고 샘물이 달며 비옥하다고 했다.

6.25전쟁의 총소리도 비켜갔던 오지마을은 이젠 저마다 커다란 현수막 하나씩을 허리에 두르고 자기PR시대의 첨단을 구가하고 있다.

 

 

 

이젠 물깨말로 잇는 구구리길이 열려 자동차가 무시로 들락거리고 외지인들의 호주머니를 어찌 열개하는지를 궁리하는 게 일상이 됐다. 난 그 현수막을 일별하며 구구리길 자동차바퀴흔적을 따라 봉화산을 향했다. 울창한 푸나무 사이로 난 비포장도로는 구구리길의 민낯이다. 장맛비에 언덕이 무너지고 패인 흙길엔 물길이 열렸다.

-집집마다 현수막 두른 문배마을-

 

한 시간여를 구구리심산을 유람하는데 봉화산등산로 표지판이 안 보인다. 안 보이 건 사람그림자도 다. 임도삼거리에 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는데 도로정비공사로 산자락이 잘려나가 표지판이 없다. 시장기도 때울 겸 20분쯤 뭉그적대며 인기척을 고대했는데 자동차도 안지나갔다. 어쩌랴, 봉화산행 등산길일 것 같아 도전해보기로 하고 언덕을 올랐다.

-구곡폭포에서 문배마을가는 고갯길-

 

한 시간만 헤치다 잘못 든 길이면 되짚을 속셈이었다. 여차하면 봉화산행을 포기하고 두 시간 반을 되짚어 빠꾸하면 구곡폭포에 닿을 수 있겠다 싶어서였다.

등산로는 반질반질하고 방향도 강촌역쪽임을 얼추 짐작됐다. 녹색의 장원을 걷는 능선엔 선선한 실바람 탓에 더위를 잊는다. 반시간쯤 긴장의 시간이 흘렀다.

 

 

강촌역과 문배마을을 방향을 알리는 이정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안도의 한숨을 내뿜으며 이따금 푸나무이파릴 흔드는 바람과의 스킨십을 즐기며 능선을 밟았다. 그렇게 반시간을 적요에 파묻혔다. 밋밋한 봉화산정상이 깔린다. 산님 세분이 자릴 펴고 소주잔을 부딪치며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반갑게 인살 나눴다. 한 분이 소주잔을 내민다. 술잔 대신 강촌역을 향한 확신을 다짐했다.

-검봉산,강성봉 뒤로 희미한 삼악산능선-

 

검푸른 산정이 굽이치며 검봉산과 강선봉을 하늘금 긋고 뒤로 삼악산이 구름에 빨려들고 있다. 저 아래 골짝이 구구골이고 물깨말이란다. 고독한 산보자의 희열에 파묻힌다. 아까부터 내 눈길을 붙잡는 건 버섯꽃들이라. 울창한 숲속 음습한 부엽토에 장마가 피운 곰팡이 꽃은 천태만상이다. 이렇게 많은, 다양한 버섯이 제각각의 때깔을 뽐내며 꽃길을 만들다니~!

 

 

첨엔 그냥 즐기기만 하다가 디카에 담았다. 버섯공부를 해야 했다. 봉화산정에서 강촌역을 향하는 십리길 밋밋한 능선은 산책길로 그만이다. 울창한 숲이 땡볕에 차일치고 구구리골짝을 더듬고 온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간질거리는, ~! 불덩어리 태양을 쑤시기라도 하려는 듯한 골참나무들의 호위까지를 받는 호사라니~!

한 시간여의 초록꿈속의 숲길은 강촌역사 뒤에서 흙을 거둔다.

 

 

물깨말 구구리란 말은 한말 의병장 이소응의 습재집에 나온다. 이소응은 습재집에서 우리에게 신신당부했다.

다른 사람의 말이 나의 뜻에 거슬리면 시비를 가리지 않고 그 말을 버리기 쉽고, 다른 사람의 말이 나의 뜻에 알맞으면 시비를 안 가리고 그 말을 취하기 쉽다라고.  습재집엔 또

-구구리길 계곡-

 

진나라 왕 평공(平公)이 신하들과 술을 마시다 뜬금없이 왕이 되어 좋은 점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해도 거역하는 사람이 없다고 거드름을 피웠다. 그러자 옆에 있던 장님악사(樂士)사광(師曠)이 거문고를 번쩍 들어 왕을 내리치려하면서 아뢴다. “왕이라면 신하들의 말을 잘 들을 줄 알아야지 그런 말을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썼다.

 

솔깃한 말은 듣고 귀에 거슬리는 말은 안들으려하는 불통의 독선은 패가망신에 이르나니, 들을 말과 안 들을 말을 잘 취사선택해야 어진 왕이 된다는 것이다.

박대통령의 불행은 장님악사 사광 같은 신하가 곁에 없다는 점인지도 모른다. 아니 이소응 같은 선비가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음 지금 같은 혼탁한 정부는 안됐을 것 같다.

 

그것도 아님 사광의 거문고를 우리들 손가락에 내리치라고 해야 했다. 그런 지도자를 뽑았으니 말이다.

물깨말은 청정했다. 구구리골짝도 청량했다.

99%의 개`돼지를 배부르게만 해주면 된다는 1%의 고위불한당을 청기와골짝이 보듬고 있어 악취가 진동해서 살맛이 없을 뿐이다.

그래도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다. `돼지가 갈 곳은 내 움막뿐이기에~

2016. 07. 18

 

-강촌-

 

이소응, 팔도에 고하노라!

 

【189611(음력 1117) 이항로의 학통을 이은 유중교, 유홍석, 이소응 등 주요 유생들은 춘천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일어난 의병들은 당시 명망이 높던 이소응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였다.

 

지금 왜노(倭奴)가 창궐하고 국내에 적신(賊臣)이 그들에게 붙어 국모를 시해하고 임금의 모발을 강제로 자르기까지 하며, 만백성을 모아서 개와 양의 무리 속에 빠트리게 하며, 요순과 공자, 주자의 도를 쓸어 없애려 하니, 황천의 상제는 위에서 진노하시고 온 군대와 백성들이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로 생각한다. 무릇 나라 곳곳에서 봉기하는 충의의 장수들은 중화를 높이고 이적을 물리치며 국가를 위해 원수를 갚고 치욕을 씻는 것을 가장 큰 대의로 삼아야 한다.】

 

 

 

-연리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