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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암송의 연애질로 멋진 감악산

巖松의 연애질로 멋진 감악산

-장군봉이 아끼는 괴송-

 

동두천역에 내려 감악산행 25번버스 타는 곳을 물었지만 아는 분이 없었다. 누군가의 블로그(제법 소상하게 소개해놔서)에서 역 앞 길 건너서 25번버스를 타고 법륜사입구에서 하차-들머리하면 좋은 코스라고 해서 메모해 온 터였다.

감악산행도 첨이고 자연 동두천시에도 첫발인 나에겐 여간 황당해한 참에 40대등산객을 만나 의문이 풀리는 듯 했다. 양주역에서 내려 25번버스를 타야했는데 잘못 왔다는 게다.

-임꺽정을 향해 연심을 뿜는 바윌 뚫은 소나무-

 

여기서도 감악산을 갈 수야 있지만 버스를 두 번쯤 갈아타고 한시간반정도를 가야하는데 워낙 버스가 뜸하다는 거였다. 열시반이 지났다. 여섯 정거장을 되짚어 양주역에 내렸다. 대로건너 25번버스(법륜사행)를 탔. 50분은 족히 가야한다는 기사님께 초행길이라고 당부까지 했다.

근데 371번지방도를 한참 달리던 버스기사는 내가 안내방송을 듣고 부저를 누른 후 승강구에서 대기중(버스 탈 때도 초행이라고 부탁했었다)인데도 달리고 있었다.

-하늘문-

 

한 정거장을 더 와서 내려주는 기사님 왈, “깜박했어요, 미안합니다.” 산마루고갯길에서 내리막길 한 정거장은 엄청 먼 거리였다. 후덥지근한 고갯마루를 뚜벅뚜벅 오르자니 열불이 났다.

블로그에 엉터리 안내 글을 올린 블로거와 잡생각 하느라 엉뚱한 곳에 내려줘 골탕 먹인 버스기사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던지?

-임꺽정서벽-

 

정오가 지났다. 돈의문센트럴 집 나서길 9시였는데 여태 들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법륜사 오르는 포도는 가파른 갈지자였다. 절을 에둘러 등산로에 들었다. 신록우거진 골짝은 묵은 밭(숯가마터)까진 돌너덜길일 뿐 평탄했다. 골짝에 물이 흐른다면 금상첨화일 텐데~! 오후 한시가 지나 하산하는 바지런한산님들을 자주 마주친다.

-장군봉서 본 신암저수지-

 

육포를 꺼내 질근질근 씹으며 장군봉을 오르는데 상당한 된비알이다. 하늘이 어두워진다. 소나기를 한 차례 뿌릴 거란 예보는 들었었다. 초행에 홀로산행이라 좀 늦은 감이 들어 잡생각이 솔솔 지폈다.

만남의 숲의 바위와 소나무의 동거는 산님들에게 자랑할 만했다. 이때부터 소나무와 바위의 연애질과 혼숙에 잡생각이 사라졌다. 바위보다 소나무가 더 잘 생겼. 소나무를 멋있게 키우느라 정작 바위들은 멋을 잊은 모양이다.

 

 

경기오악(京畿五岳 - 관악산, 화악산, 감악산 운악산, 송악산)으로 감악산의 유명세는 짐짓 멋들어진 소나무와의 동거일 거란 생각을 해봤다.

      감악산(紺嶽山)의 자를 가미의 음차으로 감악을 가미[], 신령스런 산신 가미가 있는 산이라는 뜻으로, 고려시대엔 2월과8월에 왕이 향과 축문을 보내 국가적인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 있었단다.

-까치봉의 괴송, 까치집을 만들다-

    

     장군봉에 서니 선계에 든성싶다. 잔뜩 피어오른 운무가 회색하늘과 닿아있어 천계가 잡힐 듯하다. 저기 임꺽정봉에 오르면 하늘에 들것 같다. 빗방울이 툭툭 갈참나무이파리를 두드리더니 느닷없는 난타공연을 해댄다. 얼른 비옷을 꺼내입었다. 빗방울공연이 끝나지 않으면 여기서 산행을 접어야하나? 로 심난해졌다.

-통천문-

        

     임꺽정봉도 구름비옷을 걸쳤다. 경기내륙지방에 소나기 한 차례 쏟아질 거라고 예보했었다. 좀 서둘러 올라 임꺽정굴 옆에 이르렀담 대피하기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임꺽정은 양주출신으로 명종때 갓바치생활을 하면서 부패한 관료사회에 분노해 의적활동을 하다 관군에 쫓겨 여기서 은거 활동했다.

     요즘도 사회가 하 어수선해 제2의임꺽정이 출몰할지 모른단 생각을 하니 난타공연이 끝나고 있었다.

-장군봉에서-

   

    임쩍정봉을 오른다. 검푸른 골짝 운무아래에 신암저수지가 그림 같고, 맑은 날에 조망된다는 멋진 산릉들은 죄다 잿빛하늘로 빨려들었다.

    감악산정을 향한다. 소나기 목욕한 푸나무들이 한결 풋풋하고 뿜어내는 공기도 선선하다. 멱 감은 바위에 세월만큼 휘어진 소나무들의 자태가 발길과 눈길을 붙잡는다. 임꺽정굴보단 해탈문이 더 매력 넘친다.

     해탈문을 통과하면 천길벼랑이라. 벼랑아랜 속탈의 세상일까? 대담한 임꺽정도 해탈문밖으로 나가질 않았으니 저 아래세상은 아직 미궁이라.

    

 

     감악산(675m)정상에 섰다. 정상에 글자가 마모된 감악산비(紺嶽山碑, 일명 몰자비(沒字碑빗돌대왕비, 설인귀비, 파주시 향토유적 제8)가 있다. 비석에 갓을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에 여인들의 기도행위는 1960년대까지 이어졌단다.

     여긴 기호내륙 요충지여서 전란의 격전지이기도 했다. 감악산엔 토치카와 방호벽이 군데군데 남아있어 분단의 상체기를 실감케 한다.

-장군봉 암송의 동거-

 

    쉼터 팔각정자에서 주춤대다 까치봉을 향한다. 암송의 연애질과 동거생활은 품위가 있다. 난 거기에 앉아 처음으로 휴식을 취했다. 시간여유가 있고 시장길 때우러 과일을 먹기 위해서였다. 저만치에 맷돼지똥이 수북하다. 놈들이 먹이사슬 최상위일지도 모른다.

-감악산정상-

 

     그실 이곳은 조선조때 왕궁사냥터였다. 연산군은 국왕의 무예연마를 위한답시고 강무장(講武場)이라 이름 짖고 사람의 출입을 막는 금표비(禁標碑)를 세운 통에 양주란 지명도 사라졌었다. 양주목이 되살아난 건 중종반정 후였다. 그때부터 임진란과 6.25전란을 버텨냈으니 멧돼지의 생존력은 가상하다.

-임꺽정봉-

    

     법륜사에 들어 경내를 기웃거리며 서울홍재동서 왔다는 산님들을 기다렸다. 아까 어느 여산님이 넘어져 엉거주춤하기에 내가 배낭을 대신 매고 앞서가 절에서 기다리겠다고 한 땜이다. 기다리는 동안 은계폭포를 보고팠는데 갈수기라 폭포도 사라졌다.

     20m쯤 될 단애를 곤두박질칠 물폭탄을 상상만 해야 했다. 다행이 그 여산님은 많이 다치질 않았던지 조우하여 배낭을 건냈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산행. 블로그에 올린 글이 정확하지 않을 때 누군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단 걸 실감한 산행이었다.

                       2016. 03. 12

-암송의 연애질 사이로 신암저수지-

-만남의 쉼터-

-멧돼지 뒷간-

-장군봉바위-

-장군봉에서 임꺽정봉까지의 연봉-

 

 

-임꺽정봉의 암송들-

-임꺽정정상이 성큼!-

-팔각정-

-정상쯤에서 조우한 홍재동서 온 산님들과 한참을 담소했다-

-까치봉의 암송들-

-까치봉에서 잠시 햇볕 쨍~!-

-우측부터 장군, 임꺽정, 감악정상의 능선하늘금-

-쌍소나무 쉼터-

-토치카-

-묵은 밭 개복숭아군락-

-법륜사 경내-

 

-갈수의 임계폭포-

-폭포전망대-

-법륜사입구-

-잘린 소나무다리에 구절초를 심어놨다. 그 산님은 때때로 와서

불구의 다리에 꽃피길 고대하는 재미에 빠질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