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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대저생태공원의 유채꽃축제

대저생태공원의 유채꽃축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은 노래했다. 꽃샘추윌까 12.3내란 앙금일까? 4월 중순 둘째주일인데 설한강풍이 온 대지를 휩쓸고 북녘엔 폭설이 내렸단다. 새싹은 언 땅을 가르고, 푸나무뿌리는 해빙(解氷)물기를 빨아올려 꽃을 피우느라 안간힘을 쏟는다. 추억과 욕망을 버무린 4월은 아픔의 달인데 독불 몽니쟁이의 내란후유증에 움 추린 봄기운이 주춤됐다. 벚꽃이 피고, 복숭아와 라일락이 꽃망울을 터뜨리자 유채꽃이 들녘에 노란 파스텔색칠을 한다. 우리에게 유채꽃은 4월의 꽃이다.

유채꽃밭 속의 연못과 청둥오리의 휴식
냉이꽃 들녘
팬지

추억과 욕망을 뒤섞은 4월의 아픔을 느긋이 어루만져 치유하려 유채꽃은 대지를 노랗게 색칠한다. 잔인한 4월을 안아 품어 삭히라고 말이다. 수천 명이 억울하게 죽임 당했던 제주4.3사건은 유채꽃으로 아픔을 치유해야 했었다. 수십 명씩 학살당한 암매장의 처참한 정황을 감추면서 기억하고 싶어 그곳에 유채씨앗을 뿌렸다. 4월 그날에 유채꽃이 피면 유족들이 그곳을 찾아 명복을 빌면서 비극을 추념했다. 하여 제주도 산골 후미진 곳에 모둠 핀 유채꽃은 4.3희생자들의 원혼의 꽃이다. 제주도 유채꽃관광의 아픈 뿌리인 셈이다.

300여 명이 숨진 세월호 전복사고가 2014년 4월이었고, 1500여 명의 승객과 수장된 타이태닉호 침몰사고도 1912년 4월이었다. 민주주의 불길을 당긴 4.19혁명이 4월이고, 며칠 전엔 내란수괴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어 민주주의 보루를 지켜낸 4월이다. 4월은 잔인한 달 - 아픔의 달이다. 아파야 새 생명이 솟고 희망의 꽃이 핀다. 아파봐야 사람이다. 나도 4월(음)출생이다. 추억과 욕망을 버무린 잔인한 4월을 호흡하려고 낙동강 대저생태공원의 유채꽃축제장을 향했다. 좀 더디어도 봄은 기필코 온다. 넓은 들녘에 활짝 핀 유채꽃이 봄바람 타고 일렁인다.

▲유채꽃 들녘과 경계를 이루는 대나무숲은 멋들어진 대나무숲길 산책을 덤으로 선사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었다.” 라고  엘리엇을 그의 <황무지>에서 노래했다.

대저생태공원의 유채꽃축제가 장관이라. 나는 아직까지 이렇게 광대한 노랑대지 - 유채꽃밭을 보지 못했다. 부산시민들은 복이 터졌다. 낙동강은 부산시민의 어머니라. 시민들의 생명수 수원지이자 끝없는 강변들녘에 물길을 터서 농수산업과 자연생태공원을 일구어 풍요한 삶의 터를 선물해서다.

잔인한 4월에 노란 유채꽃은 사람들을 따스하게 품어 위무하면서 밝은 내일을 향한 기운을 솟구치게 한다. 유채꽃 꽃말은 쾌활이다. 드넓은 유채꽃밭에 들어서면 안정과 희망이 용솟는다. 작은 꽃들이 모여 노란바다를 일궈서 아름다움의 진수를 우리한테 선물한다. 아름답고 예쁜 것은 사람들이 선천적으로 좋아하는 공통심리다. 예쁜 꽃이 좋듯, 외모나 심성이 좋은 사람이면 친구로 삼고 싶다. 예쁜 생명들과 교류하고, 공감하며 이심전심하다 교류가 오래 지속되면 서로 뭔가 닮아간다. 아름다운 곳이 많아야 함이다.

▲보라색 유채꽃▼

아름다운 교류의 삶을 우린 기대하고 매달린다. 천국은 항상 내 곁에 있다. 예쁜 꽃을 찾아 나서는 건 나를 예뻐지게 하려는 천성이라. 유채꽃밭에서 소요하는 관광객들 모두가 해맑은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유채꽃밭 속에서 살고 싶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유채꽃밭에서 사진 찍느라 열심이다. 애써 포토`존을 찾지 않아도 되는 곳이 유채꽃 밭이다. 대저유채꽃 축제장엔 냉이 천연꽃밭도 있다. 드넓은 들판이 깨알 같은 냉이 꽃이 카페트처럼 깔렸다. 아니 햇볕을 반사하는 모래사막 풍경을 냉이 꽃이 차환했다. 냉이꽃사막 - 냉이꽃 별천지가 발길을 붙잡는다.

유채(油菜)라는 이름은 유채 씨 기름에서 연유한다. 영어 레이프(rape 유채)는 강간(强姦)과 동음이의어라 잘못 사용되기 일쑤였다. 미국에선 canola(카놀라)라고 또는 카놀라유(Canola Oil)라 하고, 유채꽃을 ‘씨앗(seed)’을 붙여 ‘rapeseed’라고 쓴다. 고급 음식점에서 사용한다는 카놀라유를 얼마 전 마트에서 세일하여 구입 사용했으나 내 입맛은 별로였다. 옥수수기름 맛에 길들임 탓인가? 그나저나 유채꽃은 기름보다는 관상용으로 더 애용되는 세상이 됐다. 유채꽃밭에서의 하루 - 잔인한 4월을 헹궜다. 더뎠지만 봄은 완연하다.               2025. 04. 17

냉이꽃 축제
돌미나리를 채취하는 아낙들, 쑥처럼 땅에 붙은 작은 미나리는 데처무친 나물맛이 그만이다
▲팜파스그라스 단지, 가을엔 별천지로 탄생할 테다▼
▲낙동강 버들새싹▼
팜파스그라스 단지의 수양버들 길
▲유채꽃단지 속의 낙동강 수로와 청둥오리떼▼
▲유채꽃축제장 뚝방의 벚꽃길▼
튤립화단
▲팬지와 흰튤립 화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