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예찬
얼마 전 산행하산(下山)길목에서 군고구마를 팔고 있는 트럭부스와 마주쳐 멈칫대다 그냥 지나치면서 새삼 고구마생각에 함몰했다. 학창시절, 추운 겨울철 골목어귀에서 폐드럼통을 개조한 연탄불에서 막 구워낸 군고구마 맛을 탐닉했던 정황이 떠올랐다. 군고구마 껍질을 벗겨 김 모락모락 피어나는 노란 살덩이를 한 입 베다 뜨거워 오두방정을 떨던 추억이 고구마의 달달한 맛처럼 뭉클 지폈다. 당시 군고구마는 겨울철의 최상의 군것질 이었으며 찐 고구마는 서민들의 한 끼의 식사대용 이였다. 내 초등학교시절의 고구마는 식량대용식품으로 집집마다 안방구석에 대나무나 수수대를 엮은 발로 둥그렇게 둥지를 만들어 겨울을 나는 고구마저장고로 사용했었다. 그 당시의 푹 찐 물고구마는 김치를 곁들어 먹는 별식이었다.
고향 마을 입구의 친구Y네는 홀어머니가 4형제를 거느리고 살고 있어 형편이 좋질 안했다. 어느 날 Y네 집에 놀러갔는데 식구들이 찐 고구마로 늦은 점심을 먹는 걸 보면서 나는 입맛께나 다셨었다. 뭣 땜인지 나한테 고구마 한쪽도 주질 않아 섭섭하고 부러웠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하다. 찐 고구마를 무김치(외무시라고 부른 기다란 무를 두 쪽으로 쪼개 이파리까지 담은)와 곁들어 먹는 모습은 환장하게 맛있어보여 부러웠다. 우리집도 어쩌다가 찐고구마로 점심끼니를 때우긴 했지만 Y네처럼 맛있게, 게걸스럽게 먹는 풍요는 우리집엔 없었다. 우리집에는 텃밭이 없어선지 맛깔 난 외무시 김치도 없었다.
선친께서 나무심기를 좋아해 우리집 텃밭은 나무그늘 탓에 채소농사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바우배기 밭을 이용하는 어머니는 늘 불만이셨다. 게다가 난 매운 음식은 비상이라 빨간 고춧가루 뒤범벅인 김치를 먹지 안했는데 Y네 식구들이 하도 맛있게 먹어 시샘이 날 정도였다. 달달하고 무른 고구마는 먹을 게 귀한 시절 훌륭한 먹거리요 양식이기도 했다. 요즘은 수종개량을 한 탓인지 종류도 많아 약간씩 다른 식감과 맛으로, 더는 다이어트식품으로,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는다. 부산에서 오피스텔 매도하려고 혼밥 챙겨먹는 나는 고구마 한 박스를 구입하여 간식으로 애용하고 있다.
3천원짜리 찜그릇에 고구마를 담아 전자레인지 버튼을 3번 터치하여 6~7분쯤 찌면 요리 끝이다. 호박고구마와 밤고구마의 식감과 당도의 차이는 오묘하다. 본의 아니게 홀로생활을 하는 나는 첨엔 모든게 어설퍼 귀가(歸嫁)할 맘이 꿀떡이었는데 이젠 홀애비 삶의 애환을 만끽하고 있다. 평생을 내 뒤치다꺼리만 한 아내의 고마움을 절감하게 됐고, 무엇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노후의 홀로 삶을 경험해야 된다는 아내의 주장에 공감해서다. 그래 아내는 남편 그림자에서 해방되는 쏠쏠한(?)재미도 맛보고 싶단다. 암튼 나는 엄두도 못 냈던 고구마요리까지 하게 됐다.
전자레인지에서 대여섯 개 쪄서 암 때나 생각나면 군것질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간식으로 애용하고 있음이다. 내 어릴적 겨울철에 애들 얼굴이 뽀얗게 보이면 고구마살 쪘다고 했다. 아궁이 불에 구워먹는 군고구마의 맛은 찐 것 보단 훨씬 맛있었다. 그 군고구마는 중`고교시절 길모퉁이 포장가게에서 겨우 내내 구수한 냄새로 유혹하는 거였다. 고구마를 건강하게 먹는 법은 아침식사 대용으로 껍질채 쪄먹는 거란다. 고구마 껍질에는 식이섬유·칼슘·안토시아닌 등 영양성분이 많고 비타민A(베타카로틴)와 비타민C가 많단다. 비타민A는 강력한 항산화성분으로 면역체계를 조절하고 질병 감염보호막을 강화해준다. 고구마 섬유질은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배출하여 변비예방에도 효과적이다.
고구마의 유산균성분인 프리바이오틱스은 우리몸의 장내환경을 활성화시키고 독소를 배출시켜 장(臟)의 건강증진에 큰 역할을 한단다. 고구마에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과 카로티노이드는 발암억제 항암효과가 좋은데 채소류 82종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자색 고구마가 다른 고구마보다 효능이 더 좋다. 고구마의 칼슘과 옥살산나트륨 성분이 결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적당량만 섭취하고, 신진대사 기능이 떨어지는 밤에는 소화와 흡수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당뇨병 환자는 익힌 고구마보다는 생고구마가 좋단다. 수확이 끝난 고구마줄기는 소(牛)먹이였다. 커다란 눈 끔벅이며 정신없이 먹어치우는 고구마줄기는 소에겐 찹쌀밥으로 버릴 게 없는 식물이다.
고구마는 감저(甘藷)에서 변음 된 덩굴식물로 덩이뿌리[塊根]다. 원산지인 열대아메리카에서 일본을 통해 전래된, 그래 일본말 고귀위마(古貴爲麻)에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운석유고(雲石遺稿)>에서는 1763년 조엄(趙曮)이 일본에 통신사로 가던 중 대마도(對馬島)에 들러 그 종자를 얻어 동래와 제주도에서 시험 삼아 심은 것이 처음인데 실패했다. 나중에 동래부사 강필리(姜必履)가 동래에서 재배시험을 하였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어 결과를 <강씨감저보(姜氏甘藷譜)>라는 책으로 펴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고구마 전문서적이다. 고구마가 백성들의 긴요한 식량일 거란 걸 통찰한 결과였다.
고구마생육기간 중의 평균온도가 22℃가 되는 여름철이고, 저장온도는 12∼13℃가 좋으며, 저장 중에 장소를 옮겨 온도의 변화를 주면 바로 썩는다. 늦은 봄 비 뿌리는 날엔 고구마순을 잘라 밭고랑 둑에 심느라 온 동네가 한바탕 전쟁(?)을 치루었다. 여름방학 땐 야밤에 친구들과 고구마서리를 했던 스릴(?)과 달콤했던 입맛은 지금도 기억 끝에 매달려있다. 누구랄 것 없이 가난했던 그 시절이 행복이었음을, 구수한 고구마 맛깔같은 향수를 음미케 한다. 생고구마엔 탄수화물이 많아 주식으로, 전·튀김·엿 등으로 조리하거나 가공해서 먹는다. 또한 알코올의 원료로 쓰이며 잎줄기는 나물무침으로 애용한다. 말린 고구마순은 명절 때 긴요한 나물이었다. 설이 며칠 후다. 푸성귀 귀한 설날에 가장 풍성한 게 고구마순 나물이었다. 그 시절이 그립다. 2025. 01. 22
# 배경은 성불사 경내를 촬영한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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