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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팜므 파탈 - 조세핀과 김건희

팜므 파탈 - 조세핀과 김건희

황제대관식에서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나폴레옹

“위대해지고 싶겠지.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아냐, 나 없이는. 말해봐.” 다소 애정 어린 투정일까 비아냥일까? 조세핀(Joséphine)의 실토 앞에서 나폴레옹은 침묵한다. 그러는 조세핀의 어투에서 데자뷰 한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다 챙겨줘야지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라고 으스댄 김건희의 실토다. 나폴레옹은 유럽대륙 절반을 점령 호령한 황제이고 조세핀은 그런 나폴레옹을 손가락 하나로 조정한 황후(영화에선 나폴레옹이 손수 조세핀에게 왕관을 씌워준다)였다. 어쩜 김건희는 조세핀 흉내를 내고 싶었을 망상(妄想)에 사로잡힌 여자인지도 모른다.

리움 미술관을 생각하며 코바나컨텐츠 미술전을 기획하고, ‘명신’을 ‘건희’로 개명(改名)하며 논문표절 가짜학위로 신분상승을 도용한다. 그녀의 부와 권력을 좇는 가면의 일생을 엿보면서 영화 <나폴레옹>의 조세핀 생각이 났다. 나의 이런 비유에 지하에 있는 조세핀이 ‘감히 그따위 천박한 여자와 나를---’이라고 격노하겠지만 말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은 1793년 1월 루이16세가, 10월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단두대에서 처형되고 브뤼메르 쿠데타로 제1집정을 맡은 나폴레옹이 파리 사교계에서 미모의 조세핀에 홀딱 반하면서 시작된다. 두 아이를 둔 이혼녀인 팜므 파탈 조세핀은 6살 연상(32살)의 여인이었다.

조세핀(바네사 커비) & 나폴레옹(호아킨 피닉스)

나폴레옹의 끈질긴 구애 끝에 1796년 결혼한다. 나폴레옹은 여러 전투에서 연승하며 “난 알렉산더 대왕과 시저 뒤를 따르는 거다”라며 1804년 35세의 나폴레옹은 마침내 황제에 등극한다. 전쟁터에선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외치며 유럽절반을 점령한 제국의 황제가 된 나폴레옹이다. 그런 위대한 남자를 가지고 놀던 유일한 사람이 조세핀이었다. “You want to be great. You are nothing without me. Say it(위대해지고 싶겠지. 하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아냐, 나 없이는. 말해봐)”라면서-. 황후 조세핀이 사용한 드레스는 900여벌, 한해에 장갑 985개와 신발 520개를 주문하는 사치 덕에 파리의 의상실과 보석상은 떼돈을 벌었다.

조세핀

김건희의 패션과 장신구도 입소문으로 회자된다. 그녀는 계엄선포 직전에도 (성형)병원에 있었다. 나폴레옹은 자기의 애를 못 낳는다는 핑계로 1810년 1월10일에 조세핀과 이혼한다. 윤석열 못잖았던 애처가였던 그였다. 장미를 무척 좋아했던 조세핀은 파리 근교의 궁전 말메종(Malmaison)에서 황후로써 여생을 살다 1814년 5월 29일 폐렴으로 죽었다. 말메종 정원에는 그녀가 심은 250종류의 장미가 ‘장미정원’의 효시가 됐다. 그녀의 유언은 “보나파르트, 로마왕, 엘바섬”이었고, 1821년 5월 5일, 나폴레옹이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기 전 유언은 “프랑스, 육군, 육군 총수, 조세핀”이었다.

죽기 전의 삶에선 나폴레옹과 조세핀의 서로를 그리워하는 애정의 연민을 공감케 한다. 조세핀은 애초엔 나폴레옹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권부를 좇아 결혼했다. 윤석열과 김건희도 진정 사랑해서 결혼했을까? 팜므 파탈 김건희는 권부를 좇는 야망으로 12살 연상의 술꾼을 꼬셨지 싶다. 하여 이들의 여생이 가늠되지 않는다. 내란범 윤석열의 여생은 ‘저 사람 완전 바보다’라고 일갈했던 김건희 하기 나름이 아닐까? ‘세계를 정복한다 해도 사랑이라는 전쟁에선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패자(敗者)다’라는 역설은 역사학자들이 공인하는 주장이다. 사랑이란 일생에서 제일 어려운 난제일 것이다. 해도 사랑을 외면해선 안 된다. 그건 인생을 포기함이어서다.      2025. 01. 16

시상식의 남녀 주인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