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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공룡타고 땅끝 가는 설국의 나들이-달마산

★공룡타고 땅끝 가는 설국의 나들이★

새벽의 누리는 백색과 회색의 혼계(混界)가 낳은 절묘한 어스름과 여명 이였다.

 

근래에 이렇게 백설이 질펀한 은세계를 만들고 거기에 빠져보긴 처음이라.  하얀 설야(雪野)는 얕은 구릉으로 선의 미감까지 수반하고, 푸른 소나무는 하나 둘 아님 떼거리로 소담한 설화(雪花)를 이고 구부정한 어께허리를 간드러지게 휘영청 하고 있다.

겨울은 소나무의 계절이다. 백계일청송(白界一靑松)이라 하질 않던가! 이 설국이 빚는 멋진 그림은 고창, 영광, 함평을 지날수록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나의 깊숙한 내면까지를 도배하고 난 거기에 취하다 미황사주차장에 닿았다.

뭔가를 중창하는 미황사 경내에 이렀다(am11;30). 웅전 앞마당서 뒤편의 달마십기암도(達磨十奇巖圖)를 훔치다 얼른 옆으로 빠져나오려니 철망이 막아선다. 뛰어넘어 산길에 접했다. 도둑의 주특긴 월담이고 성공의 야릇한 맛은 월담한 자만이 안다.

눈 녹아 질척대는 산길을 오른다. 동백, 광나무, 사스레피나무등의 상록수들이 숲을 이뤄 군데군데의 잔설만 아니면 겨울이랄 수 없겠다. 숲을 빠져 바위를 기어오른다. 반시간을 오르니 달마봉이 돌탑에 이름을 달고 맞는다.

뾰족 뾰쪽 바위순의 산릉은 동쪽엔 완도를 서편엔 해남 깊숙이 파고든 푸른 내해를 안고 있다. 바로 밑엔 백두지간이 휘둘러 넓은 분지를 만

들어서 아름다운 금빛의 절[미황사]를 품고 있다.

고백컨대 5년 전 나는 아내와 여기 정상 바로 밑에까지 왔다가 돌아섰었다. 그건 미황사 온 터에 절 뒤의 ‘달마기암도’에 미쳤는데, 아내가

등산엔 젬병이라 수단껏 꼬신 덕에 이쯤에라도 왔던 거다. 아내 비위 맞추려 돌아서긴 했으나 미황사는 그 때 답사를 했었다.

 

 

그날 내가 아내에게 미황사에 얽힌 전설을 침 튀기며 열나게 깠던 건 달마산정에 오르기 위한 낚싯밥의 일환이기도 했던 것이다.

서기749년(신라 경덕왕8년)에 이곳 바닷가 사자포구에 왠 돌배[石船] 한 척이 나타나 며칠째 접안을 안고 있었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의조화상이 두 사미승(장선.정운)과 향도 백명을 목욕재계케 하고 기도를 하니 그 때사 돌배가 포구에 닻을 내렸다.

 

배 안엔 금으로 된 사람(金人)과 금함, 팽화, 불경등이 가득

했고 검은 바위가 있어 깨뜨리니 황소 한마리가 튀어나오는게 아닌가!

그 날밤, 의조화상의 꿈에 금인이 나타나 말하길 자기는 인도의 왕으

로,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세우면 불국흥성(佛國興盛)할 거라는 선몽을 함이였다.

 

다음 날 밖에 나가보니 과연 소 한마리가 달마산 중턱을 오르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다 울며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다. 하여 의조화상은 소가 처음 넘어진 곳에 통교사를 움며 넘어진 곳에 미황사를 세웠다.

 

미황사는 꿈 속에서 들은 소의 울음소리가 기막히게 아름다웠(美)으며 금인(金人)의 빛깔에서 누를 황(黃)자를 따서 작명을 함이라. 미황사를 세운 지명도 불경을 지고가던 소가 쓰러져 죽어 묻은 곳이란 뜻의 '우분리' 인 것이다

 

도솔봉을 향한다. 능선은 바위너덜인데 거칠고 사납기가 무시할 수 없다.

거기다 얼어붙은 눈이 녹고 있어 미끄럽기도 하다.

반시간쯤 바위 능선을 얼리고 달래며 걸었으나 진척이 더디다. 이렇단 땅끝까지 완주는 포기해야 할 성싶다.

 

문득 9월 어느 날 새벽에 오두방정을 떨었던 설악산 공룡사냥 생각이 난다. 설악 공룡등걸은 탈 수가 없어 그 우람함을 보는 걸로 위안했었는데, 여기 달마산 능선의 뿔각껍질은 올라탈 수가 있다. 아직 달마는 아기공룡이어 등을 타고 있지만 그 사납고 포악한 성질이야 어찌 할 건가? 또 반시간을 탔어도 반에 반도 못 왔다. 주상절리(柱狀節理)가 금강. 설악에만 있는 게 아니다.

달마의 주상절리에 혀를 차게 된다. 그 거친 주상석순이 내가 왔던 그리고 가야할 앞에 쉼 없이 솟아있는 거다.

pm1시가 넘었다. 바위너덜에 앉아 기갈을 채웠다. 떡봉 밑 이였다.

완주를 생각하여 쉴 참 없이 일어섰다. 떡봉을 지나 웃골재쯤에서 홀로 산행을 접고 엄지인(엄지산악회원)들 뒤에 붙었다. 도솔암봉이 가

까워지자 주상석순은 기세를 더 돋는다.

 

난 여기서의 공룡등을 타는 산행이 설악공룡 산행보다 멋있고 감칠맛이 난다. 설악공룡은 등뿔 위에 올라타라고 건성인사라도 하던가? 거만하고 무시무시하기만 하잖던가! 허나 달마공룡은 거칠긴 해도 뿔등에 올라타던, 밟던 인내심을 발휘한다.

 

더구나 웬만한 건 속속들이 보여주며 양편에 거느린 다도해와 올망졸망 들락거리는 암청색 바닷물의 해안나들이도 구경시켜준다. 어디 첩첩산능에 갇힌 설악이나 금강골의 숨 막힘에 비할 텐가! 탁 트인 사위를 조망하며 공룡타고 땅끝을 간다고 생각해보라. 입질이 간질거릴 만함이다. 근데 아무래도 땅끝까진 무리일 성싶다.

도솔봉 밑의 도솔암자에 빨려든다. 주상절리 속에 갇힌, 석순기둥사이로 들어서면 바짝 붙은 암자가 옆구리를 터 우릴 맞는다.

열 평 남짓 한 터에 들어선 암자는 천길 단애 위에 몸을 가누고 주상석순들로 한 폭의 장엄한 병풍을 앞에 전시하고 있다. 여기 도솔암에서 나는 이 산을왜 달마산이라 했는지를 가늠해보게 된다. 더는 불가에서 화두(話頭)로 통하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생각했다.

 

미황사도 인도 왕이 돌배[石船]에 실어 보낸 불경과 금인(金人)에 연하여 세워진 사찰이고, 중국으로 간 달마대사가 동쪽 끝 백두지간에 닿아 머묾으로 이름 한 산이란 걸 상상해 보는 거다.

그 즐거운 상상으로 완주를 접고 도솔봉아래 갈림길에서 임도로 하산마무리를 한다.

 

동행한 산님 중에 바위에서 미끄러져 머리에 찰과상과 허리를 다쳐 해남종합병원응급실로 후송돼 치료중이란다. 하여 산행을 마치기로 집행부는 결정을 한 모양 이였다. 아쉽긴 했지만, 하여 독불장군이 돼 완주할까도 싶었지만 하산키로 했다.

버스에 올라 땅끝에 도착하니 pm4시라. 난 땅끝 탑이 있다는 사자봉 산책길에 나섰다.

사자봉 허리춤을 가로지른 산책로는 나무데크를 깔아 깔끔하게 조성했다. 바닷가에 세운 초소는 옛날의 간첩선 감시초소란다. 그 이후엔 검푸른 바다가장자린 볼 수가 없다. 산책로는 후피향과 돈나무가 비슷한 미소로 나를 안채한다. 또 인사하는 놈은 오늘 내내 안내를 맞았던 광나무와 사스레피였다.

낙엽목 속에서 겨울바다와 싸우느라 이파리가 모두 감청으로 멍들었다. 멍들다 검버섯처럼 번진 누런 잎 몇 개를 달고 우는 생강나무가 안쓰럽다. 우는 놈은 숲 아래도 있다. 검푸른 바닷물은 사자산 어디쯤을 핥는지, 누구의 소린지 철석거리는 소리에 얹혀 온다.검푸른 바다는 섬들이 가둬놓아 잔잔하다.

 

1260년 전, 문제의 돌배가 몇 일만에야 접안을 했던 사자포구가 여기어디를 말함인가? 드디어 땅끝 탑이 내 앞에 정립했다.

그는 “백두대간 혼이 마지막으로 타올라 기(氣)와 력(力)이모인 ‘땅끝 희망점’에 서 있다.”고 새기고 있다.

황혼의 노을이 기막히게 아름다운데, 감청 캔버스에 수놓인 나지들의 세필화(細筆畵)가 너무 고운데 카메라를 깜박하고 왔다.

 

아쉬움 씹으며 전망대에 오르는 가파른 지그재그 계단을 오르다 엄지인들을 만났다. 그 중에 디카를 소지한 ‘희망천사’님을 수인사 했고(그녀는 내 산행기를 읽었단다), 사진 흑심을 품고 뒤따라 되돌아 나섰다.

그녀는 나의 주문에 세필화 몇 컷을 담고 땅끝 탑 앞에선 타이타닉호 뱃머리에 나를 세워 리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대역을 했다. 희망천사를 알게 됨도 오늘이 준 선물이라.

 

pm6시에 땅끝을 뒤로 한 우린 해남병원엘 들러 응급처치한 산님을 싣고 출발한다. 회장말씀은 “다행으로 머린 약찰과상이고 12번 척추에 금이 갔다.”는 거였다. 본인의 아픔이야 말할 수 없겠지만, 집행부의 노심초사가 역력하여 멀뚱거리기 미안했다. 어둠 속을 달린다.


밤 8;20분, ‘함평천지’에서 볼일 보란다.

볼일을 보고 나오니 함평천지는 붉은 빛 반사하는 흰장막을 휘둘러 쳤

다. 장막엔 나목들이 겨울잠을 자고 있고, 거기서 보초서고 있는 수은등에 달라붙는 겨울이 빛 떨림 하고 있다.

나비도 국화축제도 파시 된지 오랜 함평천지를 뭣 땜에 장막을 쳤을까? 누가 누구를 위한 설치미술인가!

 

<함평천지 설치예술>

<나무의 겨울잠>을 생각하자는 퍼포먼스람 산님들이여 겨울산행을 참자! 나무도 겨울엔 잠을 자게 하자! 그렇담 오늘의 불상사도 없었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