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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회양골짝의 데칼코마니와룡소 - 내변산

회양골짝의 데칼코마니와룡소 - 내변산

고요한 후에야 능히 안정이 되고 생각할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참으로 맞는구나.”반계선생이 우반동산자락에 반계서당을 짓고 면학과 후학양성에 들면서 한 말이다. 23번도로에서 30번국도를 타다 우동저수지쪽으로 우회전하면 반계선생유적지가 있다.

반계정 & 반계서당

매봉기슭에 반계서당이 자리한데 반계정에서 조망하는 꽤 너른 우반들판은 우측 산자락 뒤 곰소항에 꽁무니를 대고 있으니 자연풍치가 빼어나고 물산이 풍부한 명소라. 선생은 32세에 우반동으로 이주하여 52세에 영면하기 까지 후학양성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수인 <반계수록>을 비롯한 수많은 저서를 집필했다.

대불사에서 본 굴바위

굴바위와 용각봉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반계정을 뒤로하고 우동저수지변의 대불사주차장에서 본격산행에 들었다. 앙증맞은 구름다리는 이정표도 없이 길을 쪼갠다. 구름다릴 건너야 굴바위를 찾을 수가 있다. 된비알숲길을 한참을 오르는데도 숨차질 않는다.

짙은 신록이 차양막을 치고 피톤치드를 짜내는 땜일 테다. 숲 속에서 거대한 바위산이 앞을 가로막는다. 엄청난 아가리는 들어서는 모든 걸 다 빨아들일 것 같다. 한땐 도둑들의 아지트였단 석굴은 허균이 여기서 홍길동전을 창작한 모티브의 산실로써 딱 일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굴바위, 홍길동전의 산실

요한 후에야 능히 안정이 되고 생각할 수 있다는 금언이 여기 바위굴에서 허균으로 하여금 창작에 들게 했지 싶단 생각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다시 오던 길을 되짚어 아까의 데크다릴 향했다. 와룡소를 향하는 회양골짝에 들기 위해서다.

인적 없는 숲길은 고요하기 그지없고 정적만이 흐른다. 원시 숲 분위기에 내 발자국소리가 고요를 가르고 난 데 없는 새소리가 정적을 깨뜨린다. 산길은 그래도 뚜렷이 이어져 헷갈리진 않았다. 녹색신록으로 장막을 친 숲길은 조각난 하늘만 선보일 뿐 전망을 쉽게 들어내질 않는다.

데크구름다리서부터 반시간여 후에 용각봉삼거리에 올라섰다. 우측은 옥여봉, 좌측은 용각봉, 직진 내려서는 길이 회양골이라. 내리막숲길을 이십분쯤 조신했을까? 빼곡하게 들어찬 나무들이 초록이파리들을 겹겹이 포개어 차일 친 녹색세계를 시리도록 즐긴다.

요 근래에 고요의 숲길을 이토록 무한정 걷긴 첨이라. 더구나 이 녹색의 장원을 더듬는 오솔길이 평탄하여 초록빛에 나의 오감을 열고, 상큼함에 취한 채 눈을 지그시 감고 걸어도 안도할 수 있는 거였다. 나를 방해하는 건 없다. 이따금 간 들어지게 노래하는 이름 모를 새 말고는 말이다.

오늘따라 바람도 없어 녹색장원의 공간과 시간은 정적으로 터질 것만 같다. 회양골짝 3mk남짓에서 이런 평탄한 숲길이 2km쯤 될 터이니 초록빛과 정적을 배터지게 한 시간여 포식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이 회양골짝 숲길을 아껴두고 있었다.

회양골짝으로 내민 천총산

지난 5월초순 내변산분소에서 가마소를 찾아 와룡소에 손 담그면서 바짝 마른 골짝이 얼마나 아쉬웠던지~! 골짝을 달리는 물의노래와 폭포의 오케스트라를 같이 즐기고 싶었던 나는 비 오기만을 기다린 똥창욕심을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오늘 산행에 나선 거.

천총산

회양골이란 이름은 옛날 이 골짝에 회양목이 많이 자생하고 있어 유래한 이름이란 데 눈을 부릅뜨고 봐도 없다. 부안댐을 축조하며 여기 살던 산촌민들을 소개할 때 회양목도 덩달아 뽑혀 갔는지 모르겠다. 골짝의 널찍한 분지는 산촌부락이었을 흔적이 역력히 남아있다.

산촌민들과 80여개나 된 암자의 승려들은 여기 산골에서 숯을 구워 곰소장에 내다팔며 생계를 꾸렸단다. 숯 굽던 가마흔적이 유적처럼 팻말을 달고 있다. 덩치 큰 나무가 귀한 것은 그 탓일 테다. 여기서 오늘 처음으로 조우한 사자동에 산다는 중년남매를 만났는데 그분들의 증언을 들을 수가 있었다.

여산님은 인천에 살고 있는데 회양골을 오늘 첨으로 찾았다며 감격해 했다. 그늘사초가 양탄자처럼 깔리고 울창한 초록 숲이 하늘을 가린 조붓한 산길을 한 시간 남짓 즐기는 오감의 촉수는 신선은 저리가라다. 여름에 피서처로 이만한 장소가 있겠나 싶다.

좌측 숲에 발길에 닳은 흔적이 보여 따라갔다. 거암들이 뒤엉켜있다. 에둘러 들어서자 커다란 소()가 바위벽 가운데 있잖은가! 비경이었다. 2m쯤 아래 소에 바윌 건너뛰고 내려섰다. 푸른 하늘이 나무들을 보듬고 소에 내려 앉았다.

와룡폭포 상단의 소

나의 등장에 피라미들이 놀래 사래질 하느라 파문을 일으키자 하늘과 나무들이 춤을 춘다. 덩달아 나도 춤추고 있다. 우주가 소에서 작은 물고기에 놀아나고 있다. 소 아랜 바위절벽이다. 물길이 살았다면 웅장한 굉음을 낼 폭포다. 폭포상단 바위에 앉아 골짝 끝 숲 사이로 천총산이 얼굴 내민다.

바나나를 꺼내먹다 콩알만 하게 떼어 소에 던졌다. 피라미 떼들이 일제히 수중발렐 한다. 나의 부질없는 장난에 고기들의 먹이사냥 곡예는 이어졌다. 고기가 바나나를 먹는 별식은 사람에겐 푸아그라별식이나 다름없을까? 놈들도 난생 첨 별식을 했을 테다.

난 그렇게 어린애가 되고, 무아지경에 머물고 있었다. 생명 있는 것은 나름 다 자기만의 우주가 있다. 우린 그들의 우주를 깰 아무런 권한도 없다, 자연은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다. 가만히 놔둬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질서 있게 순환한다.

좀 후에 안 일이지만 피라미의 우주인 소는 와룡소폭포상단 이였다. 피라미와 헤어져 바윌 건너뛰고 올라 산길에 들어섰다. 거암들을 에둘러 한참을 내려서니 한 달 전에 마주쳤던 와룡소삼거리 팻말 앞에 섰다.

와룡소를 향한다. 접때보단 물이 불었나 싶기도 하지만 모두 웅덩이 갇혔다. 파란하늘은 웅덩이에만 존재한다. 하늘과 수풀과 나무와 웅덩이 밑 돌멩이가 햇빛에 어울려 신비한 데칼코마니를 연출하고 있는 거였다. 자연의 경외라.

데칼코마니

물길 끊은 회양골짝의 소들이 물의노래 대신 각가지 데칼코마니신비경을 연출하여 나를 유혹하고 있다. 그 신비경은 나의 위치에 따라 천의 얼굴데칼코마니가 된다. 와룡소에 닿았다. 폭포 대신 천의 얼굴데칼코마니로 맞아주는 와룡소는 참으로 멋지다.

와룡소의 데칼코마니와 사자동남매

 

이곳 사자동이 고향이라는 인천아주머니는 친절하게 모델역도 기꺼이 응해줬다. 고향에 이리 좋은 곳이 있다고 연신 탄성을 하면서~! 난 원점회귀고 남매는 내가 한 달 전에 왔던 내변산분소가 날머리라 헤어지는 잠깐의 연이 아쉬웠다.

와룡소에서 가마소를 경유하는 2km의 골짝산길도 회양골짝과 다름없다. 빼곡한 푸른숲과 마른물길이 고요 속에 시공간의 정적을 만끽 일상을 치유하며 사유의 지평을 넓힌다. 고독한 산보자의 사유! 인구이 회자되지 않았음 싶은, 아끼고 싶은 산길이다. 

가마소삼거리

인적 뜸한 평탄한 숲길 5km가 주는 힐링 속의 선물을 금새 오감할 수 있다. 여느 산행길마냥 왁자지껄 할 수가 없는 산길 퇴계선생의 오가(吾家)의 청량산이듯 나의 숲길이길 꿈꿔 본다. 입소문날까 걱정된다. 다행인 건 회양골짝은 산불예방차원에서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통제구간으로 설정한 땜이라. 

나는 이 산행길 쓰면서 그 숲길을 걸으며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숲길과 줄곧 동행하는 하얗게 마른 개울을 생각한다. 하얀 개울의 웅덩이가 연출하는 데칼코마니의 신비경에 취해본다. 행복은 그것들을 품안에 안고 있는 시간이다.

회양골짝의 데칼코마니

비가 오면 얼른 회양골로 달려갈 테다. 물길이 트이면 데칼코마니 대신 물의 노래가 잔잔하게 울리고 폭포는 오케스트라무대를 펼칠 것이다. 자연은 즐기는 자만의 오롯한 선물이라.

2017. 06. 17

 

반계정 & 반계서당

사자동이 친정인 인천아줌마

와룡소의 데칼코마니

 

와룡소석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