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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선계(벼락) & 와룡소폭포와 굴바위 - 내변산

선계(벼락) & 와룡소폭포와 굴바위

 

오늘도 장맛비는 쏟아진단다. 중부지방은 호우경보가 발효 중인데 나는 그 장맛비속을 달리고 싶은 조바심으로 맘은 진즉 벼락폭포 앞에 있다. 세 번이나 그를 찾아 달려갔지만 여태 벼락폭폰 실체를 보여 준적이 없다. 스냅사진속의 데자뷰에 나를 가두고 상상의 날갯짓에 머물게 하고 있어서다.

어제 부안엔 150mm이상의 비가 쏟아졌다는 뉴스에 네 번째 그를 마주하려 나섰다. 이 지구상의 모든 폭포는 늘 제자리에서 그 얼굴과 폼으로 사람들을 맞지만 벼락폭포는 보고 싶다고 암 때나 볼 수 있는 폭포가 아니다. 해서 이름이 선계폭폰데 번개처럼 얼굴 내보인다 해서 벼락폭포라고도 한다.

내변산자락 보안면 우신마을북쪽1km지점에 변산 4대사찰 중 하나였다는 선계사가 있었다. 전란에 소실됐던 선계사안 분지에 장대비가 쏟아지면 물이 선계바위 위로 떨어지며 검붉은 바위단층 60m를 물 폭탄세례로 아수라장을 만든다. 아니다, 지금 내가 그 물폭탄 속에 서 있다.

 

거대한 물기둥이 잿빛하늘 뚫고 있다. 하늘을 뚫는 물기둥회오리에 물보라가 휘뿌려지고, 미친바람은 진초록 잎새들을 광란의 춤판에 몰아넣고 있다. 다만 하나 검푸르고 붉은 바위가 물보라와중에 뚜렷한 때깔을 찾았나싶고, 오케스트라는 절정을 향하고 있다.

모든 동적인 것은 광란의 회오리가 빨아들이고 정적인 것은 오케스트라화음으로 녹아드는 선계폭포는 꼭 보고 싶어 환장한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지구상의 몇 안되는 벼락폭포일 것이다. 더하여 또 하나 신기한 것은 곤두박질친 물기둥은 바위에 박살이 난 채 산산이 부서져 어딘가로 사라진다는 거다. 

그 미친 굉음마져 자지러들어 실내악선율로 변주를 하다 저 아래 수풀속에서 모습을 나타내어 우동재를 향하는 거였다. 가까스로 우동저수지가 광란의 춤판을 진정시킨다. 벼락폭폴 그림처럼 품은 선계바위군상도 우동저수지에 그림자를 담그고 있다.

우동재를 살짝 겉돌다 굴바윌 찾아들었다. 허균이 홍길동전을 산고한 바위굴은 사실은 도적떼들의 아지트였다. 산수가 빼어나게 좋고 주위에 물산이 풍요로워 내변산은 백제멸망 때부터 유민들의 은거지였단다. 암튼 홍길동전을 쓴 허균이 여기에 머물렀기에 매창도 한 번쯤은 이 굴에 왔을 테다.

우동저수지와 우동재서 조망한 선계폭포바위

서로가 몸은 섞지 안했어도(천하의 바람둥이 허균이 보듬고 딍굴진 안했다고 실토했다) 흠모하며 밤새워 술잔 나누는 절친 이였기에 말이다. 총총한 별무리들이 굴 밖으로 쏟아지는 여름날밤, 단출한 술상 마주하며 거문고 틩기며 시 한 수 읊었을 매창과 허균을 그려봤다. 벼락폭포서 물보라 쏟아지듯 굴 밖선 은하수가 쏟아지고, 굴 안에선 두 남녀의 넘을 수 없는 애틋한 정분이 거문고선율을 타고 있었을 테다.

굴바위와 굴바위입구

와룡소를 향한다. 장맛비에 초록이 물씬물씬 묻어나고 골짝엔 여치와 매미울음소리가 낭창한데 계곡물소리가 뒤질세라 재잘댄다. 온 세상은 진초록이라. 한정없이 드넓어진 초록스펙트럼을 뚫고 뉘엿거리는 여린 햇살이 성하(盛夏)를 잊게 한다. 평탄한 초록숲속 십리 길은 여지없는 치유의 길이라.

물 반 잠긴 조붓한 숲길을 자박자박 오감으로 걸으며 뭉클 느끼는 푸근함이라니~. 아~! 이런 원시내음 풍기는 숲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행복이란 음미할수록 가슴 미어진다. 한 여름 골짝 시원한 둠벙에 몸담고 흐르는 물살에 알몸맛사지하며 녹색컬러테라피에 멱 감는 옹골찬 상상도 해보면서 물의 노래에 취한다.

와룡소상단폭포 아래로는 들어갈 엄두가 안 났다. 쪽빛소가 물벼락에 놀라 기겁하며 경천동지할 굉음과 물보라만 엿보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마 내가 지금 오금절인 예후로 의사의 주의가 없었다면 폭포 아래로 기어들었을 것이다. 폭포상단 소에서 한참을 뭉그적대다가 하류 와룡소로 향했다.

골짝물이 불어나 어린애마냥 첨벙대며 물길을 거슬렀다. 타임머신타고 기억 저 편에 머물렀던 추억물길 속을 더듬다가 군산서 왔다는 중년의 산꾼 한 분을 조우했다. 오늘 아까 한 커플과 인사 후 두 번째-왼통 세 사람째다. 인적마저 뜸한 숲속의 한량~! 내 생각에도 멋있다. 원시속의 완전 자유인~!  그는 자유를 만끽하려 홀로산행을 한단다.

나도 그럴 진데, 그 누구의 시선도 없는 오롯한 나만의 시간맛이란 자연에 발 들여놓은 자만이 얻는 특권일 것이다. 와룡소에 발 담궜다. 만수위다. 바위골이 좁아 폭포가 터진다. 폭포 터지는 소리에 수풀이 놀라 발광을 턴다. 어쩌다 폭포끄트머릴 올려다봤다. 뭉퉁한 나무토막이 움직이고 있다. 물귀신이 걸레조각 들고 푸닥거리 하나?

아까 헤어졌던 사내가 한꺼풀씩 홀라당 옷을 벗고 있다. 내가 손을 들자 나뭇가지 흔들 듯 팔을 흔든다. 어느새 애둘러 올라가 알탕을 즐길 셈이다. 그것도 멋있단 생각은 얼른 안 들었다. 감히 내가 할 엄두도 못 내서만은 아니다. 어떻든 자연의 품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행복은 용기 있는 자의 몫이라 해두자.

폭포위서 사내가 홀라당-물귀신의 푸닥거린 줄 알랐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나도 여길 와서 알탕은 아니라도 반 알탕 한 번쯤 즐기고 갈 테다. 매미의 합창이 궁상맞을 정도다. 물의 노래가 녹색이파릴 흔든다. 오랜만에 여윌대로 여윈 여름햇살이 초록바다 깊숙이 와 닿는다. 소에 내려앉은 햇살이 물비늘춤을 춘다. 명경소의 데칼코마니가 다분히 몽환적이다. 

2017. 07.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