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장군,신선,까치봉에서 - 내장산
동향(東向)인 아파트는 앞뒤로 막힘이 없어 아침햇살이 앞베란다에서 뒷쪽베란다까지를 관통한다. 아침부터 초여름이 날름댄다. 하늘은 미세먼지를 거뒀다. 문득 초록숲계곡생각이 좌불안석케 한다. 열 시가 돼가는 데 차를 몰았다. 내장산을 향한다. 지난4월 인적 뜸한 연둣빛 내장산이 그리 좋았었다.
내장산은 가을에만 몸살로 동티날 지경이다. 사실 봄의 내장산이 이렇게 유혹적일 거란 걸 나도 미쳐 생각하질 못했었다. 골짝개울속의 여린 물길은 비밀얘기라도 하는 듯 개울갓길을 걷는 나의 귀를 쫑긋 세운다. 홍건히 밴 신록에서 묻어나는 향은 상큼하다. 딱다구리의 짝 찾는 울음이 고요를 깨트린다. 햇살은 초록이파릴 맛사지하느라 번들거리고~!
물 속의 월령봉 하늘 아래 월령봉
동구리다리에서 잠시 갈등, 옛전에 올랐던 장군,신선봉을 찾아가기로 했다. 빡세단 기억은 없어서다. 나무들이, 초목들이 신록으로 단장을 하고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온다. 사람얼굴 보기가 어려웠을까? 난 초록숲의 주인이 됐다. 어떤 놈이 기막히게 단장을 하고 내 앞에 나서는질 두리번 댄다. 근디 다람쥐가 훼방을 놓고~!
동구리들머리
동구리계곡이 아니랄까봐 귀목은 몸에 O문신을 했다. 어떤 놀부(?)가 돌멩일 집어넣고
거대한 놈들이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환심을 사려든다. 놈들은 몇 백년을 살면서 흉측한 얼굴을 해야만 살아 남는다는 걸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곧게 잘 빠진 놈은 채 다 성장하기도 전에 사람들한테 붙잡혀 싹뚝 잘려가곤 했었다. "못 생겨서 미안하지만 내 장수의 비결인 걸요" 라고 나의 애정어린 눈길에 고백하는 놈들을 애인만큼 사랑하고 싶은 나다.
유근치를 오르는 데 어떤 놈은 우측방향으로 착각해 미리 자빠져있고
멍청한 풋내기 동료들 탓에 속 썩힐대로 썩은 노거수의 타는 가슴은
결국은 뻥 무너져내리고야 말았다. 옛 울 엄마의 가슴마냥~
한 시간쯤 거북일 흉내내자 드뎌 유금치팻말과 서래`불출연봉이 얼굴을 내민다
장군봉에서 파란하늘 머리로 떠바친 채 네 발로 개폼 잡아보고.
이 사진을 찍어 준 산님을 기억한다.
걸어서 마주처 공감하는 만큼 마음의 양식은 늘고, 양식이 는 만큼 자족해지기에 늘 새로운 기대를 지닌 채 우린 걷는다. 걷는 건 세상을 품는 것이다. 걸어 오르고 올라 정상에 서면 광대한 미지는 또 다른 꿈으로 다가서고 그 꿈을 소유하러 또 오른다. 꿈은 꾸는 자에게만 불굴의 의지와 용기와 담대한 포용심을 선물한다.
나를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연자,신선,까치,연지, 망해연봉들이~
뒤 아스름한 능선은 순창새재와 연결 된 상황봉능선인가?
저기 부스럼딱지 같은 산야가 순창 화양리랑가?
내 발 아래 엎드렸던 장군봉
산이 아름다운 건 내 똑똑한 애인처럼 부지런히 몸단장을 해서다. 초목은 사시사철 촌음도 허투로 낭비하지 않는다. 게으름 피우다간 도태당한다. 바위는 초목의 파수꾼처럼 그들을 묵묵히 지켜준다. 해서 그들은 서로가 붙잡아주고 얽혀 죽는날까지 동거한다. 변덕쟁이 나보다, 사람의 계산된 사랑보다 감동적이다.
내가 뭘 잘못 했간디 칼바위들은 갈 길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려 발 내딛기 불편하게 했다? 어디쯤에 비밀스런 곳이 있능가?
산이 좋아 여기서 죽고 싶단디 모른 챌 할 것이지 철울타리는 뭘라 휘둘러 쳤디야?
연초록바다, 좌측 산능 속에 흰도장밥이 케이블카정유장,
그 건너편 잔잔한 바다에 벽련암이 흉터마냥이다.
암자 위 푸른 하늘로 넘실대는 흰 파도너울이 서래`불출연봉
칼바위능선은 계속 이어져 고래등을 밟는가 싶어 불안하다
나는 산을 오르며 사람들이 만든 어떤 공작물이던간에 쓸대없는 짓을 했다고 못마땅해 한다. 사람이 죽는 건 운수팔자다. 산을 좋아해 불운으로 사고사해도 어쩜 사자는 행복하다. 하고싶은 일을 하다 좋아하는 데서 죽었으니 행복한 죽음이지 싶어서다. 공작물이 없어서 못 오르면 먼데서 보면 된다. 꼭 오르고 싶은 자는 밧줄타고 오르면 될 것이다. 산을 형벌하지 말라. 자연에 흉터를 만들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울퉁불퉁, 삐쭉뾰쪽 고래등바윌 밟고 녹음을 헤치니 연자봉이라
나는 산에서 나무자태를 훔처보는 재미에 빠지곤 한다. 그들 몸에서 지난한 일생을 유추해 본다. 세월의 굴곡이 그렇게 선명하게 표시 난 생명체가 드물러서다. 사람은 삶의 역정을 감추느라 성형도 자랑인듯 하고, 자길 속이는 가면행위가 행복이라 여기는 자기최면에 취한다. 그래봤자 사람은 고작 백살을 넘겨 살지 못한다. 나도 지금 얼굴에 생긴 까만점들을 빼야하나로 고민 중이다.
서어나무형제들의 기막힌 우애의 일생,
뿔뿔이 갈라섰다가 다시 붙는 연리지사랑은 우리들더러 '사랑학' 강의를 하는성 싶고!
글곤 아가리 벌린 거암 뒤엔 옛날 신선이 놀던 자리 신선봉을 맹글었다
신선들이 따먹었던 복숭아,
야생복숭아가 좋다고 씨를 말린다는 데 산님들은 뭔가가 다르긴 다르다!
옛날에 무릉도원이 여기도 있었을깜? 760여m 고지대에 복숭아라니?
복숭아열매가 손 안타고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단니!
내 발 밑에 바짝 엎드렸던 장군,신선봉들
암송의 연애질은 명산의 아이콘. 멍텅구리 바위는 소나무를 통해 우주를 안다
화양리가 소나무사진각구틀 속으로 기어든다
까치봉에 서다. 연지, 망해, 불출은 담 기회로 넘기고 금선계곡을 향해 하산한다.
언젠간 여길 다시 밟고 순창새재를 통과해 백암산상왕봉에서 백양사로 치달리고 싶다. 여기서 상왕봉까진 5km라고 산도는 말한다.
까치봉에서 금선골 향하는 하산길엔 나무아이돌들의 춤공연장이다. 고만고만한 놈들이 별별모양으로 몸을 비틀며 사욱대질 하느라 숲이 어지럽다. 영양부족한 바위위에서 빼곡한 나무들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팩트무대가 펼처진다. 놈들 춤 구경에 정작 정신 차려야 할 일은 급살맞게 경사진 삐쭉뾰쪽한 바위길 탓이다. 결단코 좋은 걸 쉽게 얻어지긴 어렵다.
근데 이건 미칠노릇이다. 바위너덜 급경사길은 조마조마한데 옆에서 춤추는 나무들의 쇼쇼쇼는 현란하고, 내가 쇼에 눈 팔다 병신 될까봐 안절부절한 다리만 죽을 고생을 하는 데가 금선계곡이라. 그래도 산님들은 꼭 그 쇼쇼쇼를 관람해야할 곳! 더구나 공짜다.
쇼쇼쇼에 겨우살이도 한 몫 낀다. 좀채 보기 힘든 연초록혓바닥을 내밀며 신명이 났다. 저 놈들이 내장산에서 춤 출수 있는 것은 예가 국립공원이라설 것이다. 글고보니 산엔 곰취도 무성했다. 아까 신선봉의 야생복숭아도~ 여기도 허물은 있다. 몇 군데 나무계단을 만들어놨다. 특히 나무계단은 산 황폐화의 원흉이다. 부득할 경우람 돌계단으로 할 것이지~?
걸으면서 한 템포만 늦춰라
글고 초목과 눈을 맞추라
형언할 수 없는 언어로 교감하게 된다
사랑이 싹 튼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풀꽃>
물길이 끊겼고 시간도 뭣해 금선폭포와 용굴은 담으로 미뤘는데 금선계곡에서 내장산탐방지원센터까지의 골짝개울길 4km남짓은 걷기 좋은 트레킹코스로, 데이트코스로 이만한 데가 있을까 싶은 곳이다. 봄, 여름, 겨울에 와야 오롯한 힐링코스라. 가을엔 인파에 짜증날 일과 맞닥뜨릴 수 있어서다. 편안하게 자연에 동화될 수 있는 봄,여름,겨울의 연인길이 내장산골짝이라.
금선휴게소
내장산국립공원주차장에 닿은 시각은 오후5시였다. 오지게 해찰하긴 했지만 장장 6시간가까이 내장산수풀길 14km를 즐긴 셈이다. 홀로산행은 시간에 구애받질 않고 누군가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없어 꼬박 다가서는 풍광에 동화될 수가 있다. 힐링하러 산을 찾으며 동행들에게 신경써야 한다면 그것 또한 스트레스다.
내장사천왕문 뒤 분수
오늘 주등산로에선 커플끼리만의 산행을 즐기는 세 팀과 홀남을 조우했다. 그 커플들은 행복감에 도취하는 길을 아는 분들일 것 같다. 초목과 스킨십 하면서 이쁜 사랑을 배울 테다. 홀남은 나처럼 욕심쟁이일 것 같고~?
2017.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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