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주작산, 덕룡산에 빠져 길 잃고~
I와 내가 작천소령대네골에 닿은 건 오후3시 반쯤 이였다. 석문산앞 소석문다릴 건너 입산할 때가 열시반이 갓 넘은 참이니 다섯 시간정도 산행을 한 셈이다. 평소 같아선 거뜬할 참인데 나는 좀 힘들었다. 오늘 탑마루님들은 여기서 날머리 관광농원주차장을 향해 하산할 지점이였다.
오늘 아침, 버스좌석 짝꿍이 된 I는 내가 남주작산까지 완주하고싶다는 얘기에 흔쾌히 동조했다. 그런 I를 향해 내가 ‘우리도 여기서 하산하자’고 했지만 10여m 앞서 가는 그녀는 내 말을 못 들었던지 벌써 된비알길을 올라서고 있었다. 여기 작천소령서 남주작산까지는 2.3km남짓이라 두 시간정도면 완주할 거란 생각으로 탑마루김회장한테도 얘기했었다.
근디 빡센암릉길을 서둘렀던 탓인지 진이 빠진 기분이 들고 몸이 무거웠다. 여기까지의 다섯시간산행이 설악공룡능선 빰칠정도여서 여간 힘들었고 또한 힘든 만큼 내 눈과 맘을 사로잡은 알찬 시간이기도 했다. 송곳바위능선의 요철이 얼마나 심하고 가팔라 긴장의 연속선상은 스릴과 담대력을 시험들게 해 모처럼 산행의 진미를 만끽하게 하면서.
덕룡산과 주작산의 송곳칼바위능선들은 그래서 근력을 배로 소모시키나 싶었다. 하지만 남주작산을 향해 이미 된비알바위산을 오르고 있는 내가 작천소령에서 그만 하산했어야 했다고 후회한 건 한참 후라 이미 때늦었다. 바위숲을 오르니 아이스케키장사가 얼음과자를 팔고 있다.
우린 저만치서 음료와 과일로 목을 축이며 한 숨 돌렸다. 아까 잠시 동행하다가가 앞서 간 산님 한 분은 앞쪽 바위봉에 올라 손을 흔들었다. 젊음이 좋다는 건 여지없는 팩트다. I만 해도 지칠줄을 모른다. 그녀는 오늘 줄곧 10여m앞서 선행하고 있는데 내가 지지리도 못 따라오는 걸 짜증낼까 싶을 정도로 팔팔하다.
그녀의 근력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녀는 오늘 아침도 점심도 굶다(?)시피하다 할 정도였다. 깡마른 체구는 요가로 한 층 더 단련돼 알짜배기이지 싶기도 하지만 나의 추리의 한계를 초월한다. 앞서가는 I가 바위숲 뒤로 사라지면 난 그녀를 불러세우곤 한다. 쉬엄쉬엄 가라고 말이다.
그렇게 어린애마냥 칭얼대듯 좇으면서 바위계곡을 오르다 우측다리에 쥐가 났다. 얼른 앉아 허벅지를 주물렀다. 한 발작국만 더 올라 디뎠으면 어찌 됐을까? 막 도지려던 근육통의 쥐가 슬그머니 풀리고 있었다. 빤히 처다보며 불안해 하는 I를 바라보는 나는 미안코 한심했다.
나는 몇 해 전에 조계산정상에서 쥐가 나서 일행들이 응급조치를 한 경험이 있어 늘 무리한 산행을 하지 말아야 겠다는 걸 염두에 두고 산행을 한다. 하지만 산욕심이 많은 탓에 남들보다 더 헤집고 바지런 방정떠느라 늘 오버패스를 하곤 한다.
삿갓바위
다시 바위계곡을 오르랑내리랑 하며 곡예산행을 이어간다. 나는 한껏 몸 사리며 바위와 씨름 하는데 이젠 왼쪽다리에 이상이 느껴졌다. 얼른 주저앉아 허벅질 맛사지하며 애먼 I더러 천천히 가자고 주문한다. 애가 탈 그녀 못잖게 내가 불안한 건 진짜로 다리 하나라도 된통 쥐가 나면 어떻게 해야할지가 난감해 지는 거였다.
기약없이 기다려야 할 탑마루님들과 하늘만 뵈는 바위계곡에서 헬기라도 불러야 할 I의 황당함을 상상해보니 아찔한 현기증이 났다. 어쩌든간에 천천히 걷는 수 밖엔 없을 것 같았다. 바위산 하나를 점령하면 또 하나가 앞을 가로막고서자 I가 지 탓이기라도 한듯 게면쩍어 하고 그렇게 하길 세 번 쯤 했을 테다.
I가 산행도를 들고 선도를 하다 삐뚤어진 이정표가 의아해서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산님들 한테 물어 방향을 고추잡은 게 잘못 됐단 걸, 우린 까마득히 모른 채 오소재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불현듯 왠 두륜산이정표가 나타났다. 우린 왼쪽에 조감되는 저수지를 향해 하산했다. 어찌하다 관악사란 암자팻말이 나타나 위치명을 알아 위안이 됐다.
탑마루집행부와 통화가 이뤄지고 우리는 엉뚱한, 상당히 먼 곳에 있단 걸 알아챘다. 그런데도 조망되는 저수지가 날머리쪽 봉양재저수지라 여겨(사실은 장수저수지였다) 방향은 맞다싶어 안도했다. 더구나 집행부와의 통화에서 버스가 우리쪽을 향해 출발하니 기다리라고 하여 긴장이 확 풀리는 거였다.
근데 하산 이후 처음 만난 얼굴-북일육묘장손님이 승용차로 우릴 북일면사무소까지 태워다준다 해 얼마나 고마웠던지~! 북일면사무소앞에서 일행버스를 랑데뷰하기로 했다.세상은 결코 각박하지만은 않다. 여자분이 산골에서 낯선산꾼들을 태워다 준다는 게 일상이 아닌 세태 아닌가 말이다.
봉암재저수지로 착각한 장수저수지
오후 7시쯤 북일면사무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참으로 일행들께 면목 없고 미안했다. 한 시간 이상 우릴 기다렸을 산님들의 무료함을 유추해 봤다. 그래도 모두 반가히 맞아주며 위로해줬다. 누군가 뒤에서 '각자행동 삼갑시다'라는 힐책이 주작산송곳바위처럼 폐부를 찌른 것 빼곤~.
그래도 다행이었다. 뻐끈 묵적지근한 다리가 잘 견뎌줬기에 이만큼으로 산행을 마침 말이다. 모든 화는 욕삼 탓이다. 작천소령에서 하산했어야 했다. 남주작산까지 등정해야 할 하등의 이유는 과욕이였고, 그 과욕이 나의 몸을 지탱 해줄 한계점을 초과하는 미련함을 외면했던 것이다.
들머리인소석문 앞길에서 - 뒤엔 석문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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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저수지
남해바다가 땅덩일 야금야금 깊숙이 파먹은 강진만끝머리에서 시작한 만덕산,덕룡산,주작산의 송곳바위능선은 두류산과 달마산을 타고 남해바다를 메꾸며 땅끝을 만들었다.그 하얀 바위능선의 주작산은 흡사 봉황이 비상하는 듯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탑마루산님들 아까운 시간을 내가 삥땅 칠 줄을 생각이나 했을까?
근디 그 주작산과 덕룡산의 송곳바위숲이 겁나게 하는 건 그 바위산정이 촘촘한 요철처럼 얽혀서 산님들 애간장을 어지간히 태운다는 점이다. 얽혀진 연봉들이 연둣빛 옷까지 입고 우리들 시각을 훔치며 달뜨게 하는데 아니 찾을 수가 없게 한다.
동봉을 지척에 둔 탑마루님들
진달래옷 벗어던지고 연두색파스텔톤치장을 하여 산님들을 미치고 환장하게 하고있다. 좀 힘들고 신경 날서게 해서 겁나긴 하지만 위험한 만큼 우리의 찌든 일상의 떼껍을 온전히 벗겨 치유케 할 것도 같았다. 거기다 강진만의 시원한 바다바람까지 호흡해봐라. 덕룡과 주작산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가 김훈은 강진만을 품은 산야는 따스한 요니처럼 조붓하고 아늑하다고 표현했다. 저 아래 만덕산의 다산초당을 애무한 바람은 정약용의 얼과 향취를 맡아 볼 수 있게한다. 난 십여전에 덕룡산과 주작산을 등정했었는데 오늘처럼 홀딱 반하진 안했었다. 글고 그땐 어떻게 이 된비알골산을 오르랑내리랑 했는지 기억조차 가뭇하다.
덕룡산서 서봉을 향하는 용아장성
젊어서 후딱 후딱 건너뛴 탓일까? 바위숲이 촘촘히 이룬 산정을 파고들며 그 풍광에 빠져드는 풍류는 설악보다 낫다. 설악의 큰 산세는 우선 입질부터 질리게 해서다. 대여섯시간이면 즐길 덕룡`주작산의 천태만상의 바위숲의 만물상은 스릴까지 덤으로 얹혀 즐길 수 있다. 모든 가파른등로는 곡예하듯 밧줄과의 씨름이다. 자연친화적인 등산로는 주작`덕룡산의 자랑이지 싶었다. 모름지기 등산로의 귀감이라 할 것이다.
오직 밧줄과 U자 철침 계단인 덕룡`주작산은 등산로의 귀감일 만하다
용아정성처럼 오똑한 암릉을 기며 강진만이 펼친 질펀한 산야는 기막힌 산수화다. 그 넉넉하고 따뜻한 정취는 오래도록 추억창고에 간직된 채 단조로운 삶의 양념처럼 꺼내버무려 쌉싸름하고 긴장넘치는 산행추억이 될 것같다. 어쨋거나 각별한 산행이었다. 탑마루님들께 미안코 고마운 별난 산행이기도 하고~!
2017. 04. 22
오늘 젤 예뻤던 각시붓꽃
석문산에서 만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활 쏘면 안개가 걷힐까? 부질없는 푸잔~
녹차공장? 아스름한 뒤에 강진만이~
죄다 안아보고 가야할 연둣빛 골산들
시각에 따라 거북과 주먹으로 지랄떠는 바위
볼 것 많은데 태양광발전소도 끼어든다
ET바위
주작산의 엠파이어스테이트
여기서 하산했어야 한 고행의 갈림길
망부석
너머에 아이스케키가 선착순이다
남주작산도 밧줄잡고 씨름께나 해야한다
하늘문 앞에서 나도 날씬한(?) 축이란데 에둘러야 했다
용혈터(만덕산에 있다)인줄 알고 깜짝 놀랐다
처음 밟는 철재계단, 덕룡`주작산엔 이런 구조물 없이 밧줄 만이어 다행이다
너머로 두륜산삼봉이 꺄꿍한다
착각은 자유지만 그래도 이 장수저수지 덕을 봤다
물빛길이 우리가 주파한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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