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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석불과 솔춤의 쇼쇼쇼-경주남산

  석불과 솔춤의 쇼쇼쇼-경주남산

 

새벽6시에 꾸린 행장은 10시 반쯤 경주서남산 삼릉계곡에서 몸을 풀었다. 빗방울이 샐 것처럼 하늘이 찌뿌린다. 우중충한 장막 속에 소나무의 춤사위가 펼쳐졌다. 빼어난 소나무군무는 단박에 일상탈출에 들게 했다. 솔 춤 뒤로 손 떼 캐나 묻힌 훤칠한 봉분이 눈길을 붙든다.

삼릉

삼릉이다. 아래 경애왕릉이 눈에 띄었다. 경애왕이 포석정에서 제사지낸 후에 여흥을 즐기다가 견훤의 급습으로 절명한 비운의 묘다. 어쨌거나 왕들은 죽어서도 호사다. 잘 생긴 소나무들이 사시사철 춤판을 벌리고 있고, 누군가가 정성껏 돌보고 있어서다. 그 멋진 솔춤무대 속을 파고든다.

삼릉계곡엔 파괴된 불상을 시작으로 불두 없는 불상과 마애관음보살상을 비롯한 좌상과 입상들이 즐비하다. 그 불상에 눈 팔다가 마음이 급해졌다. 오늘 코스에 없는 칠불암을 탐방하려면 서둘러야해서다. 상선암은 등산객들의 쉼터였다. 된비알여독을 푸는 폼이지 싶었다.

마애석가여래상

바둑바윌 훑고 금오봉을 향한다. 소나무들은 잊을만하면 춤판을 벌리고 있다. 금오봉(金鰲峰.468m)은 빼곡한 숲에 묻혔다. 그가 내게 베푼 건 이영재를 항하는 편한 인도였다. 반시간쯤 후에 왼편 용장사계곡의 삼층석탑을 안내하는 가파른 코스를 빼면 말이다.

석조여래좌상

기단이 자연석이라는 삼층탑은 영락없는 석가탑인데 남쪽탑면의 상처가 안타깝다. 저만치서 버티고 있는 고위봉아래 용장골의 전망이 멋있다. 아래 용장사지석불들은 시간없어 건너뛰기로 했다. 다시 임도로 튀어나왔다. 밟아온 금오봉자락과 밟아야 할 고위봉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석가탑을 닮은 삼층석탑과 필자(어느 산님과 주고받은 유일한 사진이다)

특히 금오봉바위산자락은 용아장성을 방불케 한다. 봉화대능선(2km)을 타는 임도는 여간 한갓졌다. 칠불암은 우측벼랑을 왕복700m타야했다. 바위 위의 소나무석부작들이 된비알을 잊게 한다. 하긴 그깟 고행쯤 안하고 천년의 걸작을 안을 순 없으리라.

삼층석탑

사면석의 불상을 앞세운 반원형의 삼불상은 나를 한참동안 얼 차리게 했다. 문외한인 내 어설픈 심미안으로도 감탄한다. 도대체 신라인들의 삶과 행복은 어떤 경지였을까? 농경사회에서 지지리도 가난했을 백성들이 바위를 붙잡고 돈도 밥도 안 나오는 불상조각을 날마다 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칠불암

문득 히말라야 부탄인들의 행복관이 떠오른다. 물질풍요가 행복의 바로미터가 아니란 삶 말이다.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불행의 씨앗이기 십상인 것을 부탄인들과 신라인들은 천여 년을 두고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긴 널빤지에 앉아 육포로 시장기를 때우며 신라인들의 조각일상을 유추해 봤다.

정과 망치로 바위에 도전하는 작업은 행선(行禪)이었을 테다. 그들은 좌선하듯 바위에 불경을 새겼을 것이다. 바위를 다듬는 행위의 선이 행복이었기에 계곡의 바위는 불전(佛田)이었지 싶은 거다. 오늘날의 부탄은 관광객도 1년치의 수요를 딱 정해놓고 체재비용을 선불 받으며 그 인원수만큼만 허용한다.

칠불암자

 가이드를 하고파도 증원시키지 않고, 돈 싸 짊어지고 구경가고 싶어도 못가는 데가 부탄이다. 관광이 유일한 국부의 한 방법일진데 세계관광객들이 돈 싸들고 와도 사양한다. 관광지유물이 망가질까 봐서다. 국사나 석굴암 같은 보물이 망가진 건 자동차주차장이 가까워 많은 인파에 시달리게 한 탓이기도 하다.

지나온 금오봉과 이무기능선

경주를 비롯한 우리의 관광지가 훼손되는 건 관광지개발이란 핑계로 유적가까이 찻길을 낸 개발독재자들과 철부지 단체장 탓이다. 남산은 더 이상 인위적인 길을 닦지 않음 좋겠다. 유적지는 접근이 힘들어야 체재시간도 많아져 관광수입이 많아진다는 걸 지자체는 깨달아야 한다. 접근이 쉬우면 쓰레기와 먼지만 쌓인다.

고위봉을 향한다. 잘 생긴 소나무의 춤판-쇼쇼쇼는 질펀하게 펼쳐진다. 산책길마저 리드미컬해 즐기며 걷기 좋다. 몇 십 백년 된 소나무들의 군무를 한 시간여 즐기면서 자연 아닌 누가 공짜로 이 쇼쇼쇼를 보여주겠나? 싶었다. 고위봉(高位蜂.468m)에 섰다. 꽤 넓은 정상이 한가롭다.

바위에 엉덩일 걸치고 저 아래 시가지를 훔쳤다. 라벌사람들은 참 행복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이토록 좋은 자연과 유물을 갖고 있어서다. 요즘 지진탓에 신경 쬠 쓰이겠지만~? 나의 삶터인 미륵산 아래 옛 할머니선화공주도 여기 태생이었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 가 두고/ 서동의 방을/ 밤에 몰래 품으려고 간다라고 애들이 재잘거려 선화공주는 애먼 소문에 궁궐에서 쫓겨났다. 그런 공주 앞에 서동이 산쵸역할을 자임하며 나타난다.

울산서 온 숙녀들, 만나자마자 '아저씨'하고 불러 놀래켰는데~!

공주의 지색이 출중하단 소문이 백제까지 자자해서 서동이 마()장사로 변장 자작동요를 서라벌에 퍼뜨린 올가미작전 연애술이었던 거다. 그런 서동이 수려하고 똑똑한 것 같아 맘에 쏙 들은 공주도 눈 마추고 배 맞춰 손잡고 튀었다. 우여곡절 끝에 공주의 부친 진평왕은 서동과 선화커플이 맘에 들어 무왕에 등극하도록 힘쓰고 미륵사창건을 도왔다.

당시엔 백제와 신라는 싸움이 잦은 견원지간 이였는데도 물밑 소통은 했던 거다. 내가 즐겨 찾는 미륵산과 미륵사지는 선화공주와 진평왕의 유산이기도 하다. 그니까 선화공주친정 남산에 올라와 천여 년 전의 두 남녀의 기똥찬 로맨스까지 떠올려 봤다. 영리하고 이쁜여자가 태어날 만하다.

싸우면서도 물밑소통하며 상부상조했던 신라와 백제였는데 천 여 년이 흐른 지금 지역감정의 골이 깊어진 건 누구 탓일까? 권력에 부화뇌동하며 편 가르기로 출세한 김기춘아류들 탓일 것이다. 김기춘법을 만들어야 하는 소이다. 관음사를 향한다. 안부에 닿았을 때 여산님 두 분이 날 불러 세웠다. 내 배낭이 배고파 입 쩍 벌리고 있어 봉해 주는 거였다. 여자는 친절 아니, 산님들은 곱다.

관음사산신각의 풍경

신각바위의 위용과 불상은 발걸음을 한참이나 붙잡았다. 선바위얼굴을 아무리 뜯어도 아리송하다. 또 뛰었더니 춘화만개한 용장골이다. 약속한 3시에 주차장에 닿아야해서다. 1시간만 더 여유로웠으면 얼마나 맘 편하게 해찰하며 석불과 소나무가 펼치는 쇼쇼쇼를 감상할 수가 있었을 텐데? 라고 아쉬워했다.

기왕에 하루를 산에 파묻혀 즐기기로 한 산행인데, 해도 아직 중천인데 오후3시에 접어야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뭣했다. 나 홀로 말고 몇 분이 이 코스를 완주했을까? 거의 모든 분들이 빠듯할 시간 땜에 포기했을 터다. 산악회집행부는 그런 아쉬운 부문도 챙길 수 있음 싶다.

한 시간 빨리 귀가해서 뿌듯할 수 있는 산행이 모두의 바램 이라면 내 넋두리라 치자. 오늘 선화공주 아니 울 선화할머니친정에서, 서동의 처갓산에서 석불과 소나무가 벌린 쇼쇼쇼를 감상케 해 준 행복한둘레길이 고맙다.

용케도 참아줬던 하느님은 가랑 빗발을 뿌려 버스차장을 노크한다. 석불과 솔춤이 아른댄다. 봄비는 춤추느라 목마른 소나무들한테 감로수일지니~! 언제 또, 또 오고 싶다.

2017. 03. 26

남산골에선 부두없는 석불이 많다. 조선 때 배불숭유 탓인지 목 없는 불상은 부황사지우물터에서 무수히 발견됨,  

삼릉계곡의 마애석가여래상

 

 

상선암

선각마애불

설악산토왕성폭포서 첫 인사후 재회 한 잉꼬커플

눈길을 붙잡는 금오산 표지석

삼층석탑에서 나를 인증샷 시켜준 산님(오늘 나의 유일한 사진이였다)

2,3층탑이 망가졌다

웅장사 가는길

 

칠불암가는 길

칠불암

치불암에 빠진 님들

고위봉 아래 안부에서 만난 울산숙녀, 배고파 입 벌린 내 베낭을 챙기고 베낭자크    사용법도 알처젔다.

소나무의 군무는 한 시간이나 연출

관음사산신각 주위

 

엄마의 첫 산행에 동행한 첫 산행의 착한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