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차이나타운 소요(逍遙)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우리는 하루가 저무는 겨울 저녁에도 마치 아침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을 시작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신영복-

부산역 앞 초량동에 있는 차이나타운을 소요하면서 고 신영복 선생님의 명문(名文)이 생각났다. 하늘을 첫 비행하는 새, 처음으로 움을 터 땅을 밟는 새싹같이 우리들도 저녁노을을 마주보며 아침의 여명처럼, 새봄처럼, 처음처럼 새날을 시작한다. 산다는 것은 헬 수 없는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 없는 시작이다. 19세기 청나라는 초량에 조계지 청관을 오픈함으로 부산차이나타운이 새해의 여명처럼, 첫날처럼 새날을 시작했다.


당시의 조계지 길은 ‘상해거리’로 불리었는데 1993년 부산과 중국 상하이가 자매결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여 명명되었다. 이후 조선족보단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러시아계 한국인과 동유럽 주민들이 이주해 왔고, 미국인도 있었지만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구소련인과 고려인, 한중수교 이후 연변에서 넘어온 조선족과 한족, 중국대륙인으로 거의 대체되고 있단다.

지금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인들 관광객이 많아 동남아국적 요리점과 유라시아대륙의 식당이 즐비한 부산 차이나타운은 서울 이태원식의 월드 그로벌타운이 됐다. 만두전문점인 신발원(新發園)이나 일품향(一品香)에선 짜장면이 없어도 손님은 넘친다. 나는 신발원에서 물만두를 먹고 싶어 10여분 줄 서 기다리다 포기했다.


옆의 ‘신발원외집’에서 테이크아웃점에서 기다리기 지쳐 만두 먹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오후 2시인데~! 새파란 MZ세대들 틈에 늙은이가 끼어 줄서기도 여간 낯짝이 간지러웠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최민식(오대수)이 먹었던 군만두집 장성향도 그냥 지나쳤는데 늙은이가 외식할 땐 동반자가 있어야 어영부영하기도 좋다. 홀로 외식은 어째 청승맞아 난 뱃속에서 난리만 안치면 집밥을 즐긴다.



부산(釜山)이란 이름은 가마솥을 엎어놓은 모양의 뫼(산)에서 연유한다. 산, 강, 바다, 해수욕장이 있는 천혜의 축복받은 땅으로 기후가 온화하여 우리나라의 유토피아 같은 고장이란 걸 나는 지난 1년여 동안 살면서 절감했다. 하여 부산사람과의 초면 인사 때 나는 ‘부산사람들은 행운아’라고 칭송한다. 홀로 해운대 생활이 불편한 점도 있지만 ‘축복받은 땅’에서의 유유자적하는 희락(喜樂)은 모든 걸 상쇄한다.



부산차이나타운은 임오군란(1882년) 때 조선왕조의 참전요청으로 청나라 군인들 3천 명과 군수보급품 조달 상인 40여명이 군함과 상선으로 입국하여 초량에 발 디뎌 뭉개며 한국 화교의 새날 – 새해를 열었다. 그렇게 농공종사자들이 이주하면서 조선에 없던 양파와 홍당무와 토마토 등을 들여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움을 틔워서 새싹으로 땅을 밟게 한 땜이다.



청나라 이주민들은 처음처럼 새날을 시작하여 열매를 맺으면서 새해를 열었다. 살아가는 건 처음을 만드는 끊임없는 시작이다. 하여 하루를 삶에 허투루 살면 안 되는 이유다. 나의 후예들이 나의 오늘에 발 딛고 내일을 시작하는 역사의 첫날 – 새날, 새해임을 신영복 선생은 통찰했다. 임오군란 때 들어 온 화교들이 초량동에 정착 땅을 일구며 새날을 열고, 씨앗을 심어 새싹이 땅을 밟고 열매를 열게 하는 하루하루가 새날이었다.


그렇게 새날을 연 화교들의 하루하루가 쌓여 초량동의 차이나타운 역사가 됐다. 6.25전쟁 후 이승만에 이은 박정희 정부는 외국인 토지 소유 금지에 이어 음식점 명의도 불허하고 1963년 화폐개혁 때 화교들 재산을 몰수했다. 1970년대 박정희는 부족한 쌀 비축을 위해 중국집의 쌀밥 금지령을 내려 볶음밥 없는 중국집들 성행했다. 얼마전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의 중공업기술이 탐나 초청하여 조지아주에 공장을 세우더니 자국민의 일자리 뺏는다고 우리 기술자들을 범죄자로 몰아 체포한 폭정이 생각났다.



부산차이나타운에 석양빛이 깔리고 거리는 조명으로 밤의 세계를 연다. 지금은 화교뿐만이 아닌 동남아와 유라시아 사람들까지 어울려 국적이 애매한 월드타운이 됐다. 세계인들이 모여 오늘을 살아가면서 남긴 흔적은 다음 세대들이 맞이할 새해 – 새날의 터전이다. 그렇게 중단 없이 이어 온 새해-새날들이 초량의, 부산의 발전을 이뤄 온 누리 사람들이 찾아든다. 부산은 온 누리의 유토피아다. 2026. 0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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