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06
내가 머물고 있는 브라운스톤·서울은 한국경제신문과 마주하고, 옆에 바짝 붙은 건물은 종로학원, 남쪽엔 서소문공원이 조그만 숲을 이루고 건너엔 또 하나의 브라운스톤 격인 중앙일보가 위세를 부리고 있다. 내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무료한 시간을 자주 잊게 되는데 그건 이제 막 산뜻하게 위용부리며 선 동아건설이 짓고 있는 신축빌딩의 조경공사이다.
30여 층은 될 유리벽의 건물은 빛을 역광 시켜 서소문고가다리를 조사하여 우중충한 회색도심을 더 숨 막히게 하는 거였다. 그 살벌한 공간을 초록으로 숨통을 트려고 적송 수 십 그루를 이식하고 있다. 50년은 족히 살았을 소나무는 강제로 뽑혀 노예처럼 끌려와 기중기와 포크레인에 의해 며칠동안 심어지고 있다. 피붙이와 정든 이웃과 오순도순 푸른 숲을 이루며 자생한 소나무는 인간의 탐욕의 노예가 돼 강제이식 되고 있는 것이다. 팔둑과 발가락 수 십개가 싹뚝 잘려나간 채---.
기하학적인 빌딩 숲 속에서 공해를 들이키며 여생을 고단하게 살아갈 소나무의 비극의 삶이 나를 슬프게 한다. 누군가의 탐욕을 위해 그는 피 말리는 형극의 생을 거기서 마감해야 할 노예가 된 것이다. 탈출은 없다. 빌딩 숲에서의 탈출은 그가 죽어서일 뿐일 테다.
근데 언제부터 도심에 소나무를 끌어와 심었을까? 사람들은 스스로 만들어 놓은 삭막한 환경을 애꿎게도 소나무더러 책임지라고 포악 부림을 죄의식 없이 하고 있다.
인간의 포악한 이기심이란 끝이 없다. 그 이기심에 소나무는 병들어가고 있음이다. 내가 아픔으로 해서 소나무의 비극이 절절하게 다가오는 걸까.
어쨌거나 소나무가 들어서자 대리석 보도블럭 위의 으리으리한 유리벽의 건물은 전혀 다른 때깔로 태어났다.
소나무의 장수를 빌어본다.
2010. 10. 07
방사선치료 후 임도훈 교수와의 예약된 면담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라고 인사하며 의자에 앉는 나를 그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며 미소로 답하나 싶었는데,
“좋습니다.” 라고 용두사미식 화두를 던지고 있었다.
“예~?”
“혈당수치도 좋고 건강도 양호하며 엊그제 한 내시경검사도 아주 깨끗합니다.”
나는 그간 궁금했던 내시경검사결과를 얘기해 줘 반가웠다.
“결과가 좋습니까?”
“여기 사진 있잖습니까. 위 속인데 아주 깨끗합니다. 치료 잘 돼가고 있어요.”
“절제한 위 접합수술도 치유 됐습니까?”
“물론이지요. 여기 사진엔 그 부윈 없습니다만---.” 하시면서 모니터상의 네 장의 사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선홍색의 위벽은 밝은 조명의 반사로 한결 선명하고 뿌옇게 번진 흰 빛이 다소 생경케 함 이였지만 눈 뜬 봉사인 내가 뭘 식별할 수도 없잖은가 말이다.
임 교수는 사진 아래 짧게 두 줄로 쓰인 문장을 가리키며
“여기 적힌 게 소견서인데 이렇게 간단한 건 상태가 좋아 굳이 할말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의 말이 정설이란 생각에 난 밝게 웃었다. 한결 고무 됐었다.
“지금도 속이 안 좋습니까?”
“냄새 못 맡는 거와 오심증은 여전 합니다.”
“약을 처방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와의 면담은 그렇게 끝났다. 1주일 터울로 만나고 있어선지 지금 마주한 임도훈 교수는 100% 아바타란 생각이 안 들었다. 그는 어쩜 나를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아니다. 내일쯤 어디서 조우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나를 몰라볼 게 뻔하다. 아바타다.
하지만 오늘 그가 설혹 아바타였드라도 좋았다. 선하고 온후한 인상에 다소 여유가 있게 다가선 그는 어딘지 따뜻한 감정이 느껴져서 였다.
온기 있는 가슴을 대하는 느낌말이다.
2010. 10. 08
“지난 정권에서 산업적거래 빼고 대북지원금은 많았을 때가 연평균 약 5억 달러로 우리의 총소득의 0.06%였단다. 쉽게 말해서 1천만 원 받는 월급쟁이 형이 지지리도 못사는 동생에게 매월 6천원 주는 셈 이였다.” 라고 박승 전 한은총재는 <고난 속에 큰 기회 있다>에서 토로했다. 는 기사를 조선일보에서 접했다.
우리가 북을 좀 도와줘서 그들 생활이 쬠이라도 나아져 어느 날 갑자기 통일이 된다할 때 그 도움을 퍼주기라고만 폄하할 수 있을까?
지난 광복절에 통일을 대비해 통일세를 생각할 때라고 주장한 MB의 말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 통일을 걱정하면서 대북강경정책을 고수하는 이중성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까닭은 우리가 강경하게 나가면 나갈수록 북은 중국에 더욱 빌붙어 종속화 될 것이 명료해서다. 그것은 중국도 즐겨 반기는 대 북한정책이라. 북·중간의 밀월을 때놓지 않고 북한을 길들이려는 생각은 유치하고 근시안적이다.
광업진흥공사 자료에 의하면 북한엔 3,700조원에 달하는 40여종의 지하자원이 매장 돼 있고, 이중 70%는 이미 중국이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이 중국의 속국이 돼가는 마당에 어느 날 갑자기 북한이 무너진들 통일이 우리 생각대로 될 거며, 중국이 암 소리 않고 손들고 물러갈 거라고 생각하는가. 통일세가 아니라 우리를 통째로 다 준다고 해도 순순히 물러날 중국이 아닐 테니 늦기 전에 미워도 당근 줘가며 북한의 중국종속화를 막아야 함이다.
북한과 어떤 식으로든 소통하고 적절히 투자하여 통일에 대비하는 게 통일비용을 줄이는 순리인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 모르게 하라’고 성경은 말하는데 주님의 충복인 장로MB는 북이 고개 숙이지 않음 상대를 않겠다니 그 속 알머릴 알 수가 없다.
이산가족상봉도 금강산관광재개에 유연한 자세를 취함 돌파구가 생길 거 아닌가?
헤어진 피붙이의 고통은 어떤 정책으로도 외면할 순 없다. 이산가족의 아픔과 가난한 자의 고통을 나누는 길은 그들을 보듬고 같이 아파해야 함이라.
가난해 봐라. 그리고 못 견디게 아파봐라. 그때 길이 보인다.
2010. 10. 11
아침6시, 둘째를 따라 휘트니스클럽에 갔다. 사우나는 하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에 입욕과 사워만 하는 나는 클럽을 자주 찾지 않지만 따스한 탕 안에 몸을 잠시 담그고 있으면 피로가 싹 가시는 것 같아 이삼일 터울로 찾는다.
넓은 클럽은 몇 사람뿐이기 일쑤여서 좋다. 하여 아내는 둘째가 출근하고 내가 병원으로 가면 클럽을 찾아 2시간여를 즐기는 재미로 간병생활의 심난함을 던단다.
도심에서 운동을 하려면 클럽이 안성마춤일 테다. 집 앞엔 서소문공원이 있는데 노숙자들의 천국이 되다시피 해 나부터 산책하기 내키질 않는다.
거기가 그리 된 까닭은 길 건너편에 저녁식사를 무료로 공양하는 어느 천사가 있어서란다. 공원에서 얼쩡거리다저녁식사 해결하니 멀리 갈 리가 없다.
나만해도 운동하겠다고 이따금 산책 나서지만 공원 곳곳에 남루한 넝마 꼴로자리한 그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포기하곤 함이기에, 자연스레 시민들도 외면하게 됨일 거고 그래 공원은 그들만의 천국이 돼가나 싶었다.
4~50대가 주류일 것 같은 그들은 왜 공해와 소음의 도심에서 방랑하고 있을까? 노숙생활 할 바엔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시골이 훨씬 나을 텐데 말이다. 지금 농촌을 일손이 부족하여 팍팍한 노동력을 외국인들이 대신하고 있다.
거기에 이농현상으로 빈집도 많다. 노숙자들이 농촌엘 가서 대화를 해보면 환영받을 게 틀림없다. 그건 내가 농번기에 고향 친구들을 돕는다고 농활을 몇 번 했기에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도심에 노숙자가 넘치는 건 사회의 구조적인 허실과위정자들의 빈곤한 정책이 일정 부추긴 현상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노숙자들 대책에 고민해야 할 때다. G20을 구가함도 좋지만 말이다.
공해와 소음 공화국인 서울이 싫지만 휘황한 빌딩 숲 사이로 노숙자가 어슬렁거리는 비루한 인간들의 극한상황이 구역질난다. 영국 시사지 이코너미스트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로 서울을 53번째로 꼽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금년도 우리나라 부패지수(정치인과 공무원 사이의 부패)는 세계 39위로 OECD 30개국에도 들지 못한다. 시민이 느끼는 행복지수는 어떨까?
G20 회의 한다고선진국이 됨인가?
나처럼 건강이 안좋은 사람에겐서울의 대기권도지옥이다.
빨리 내 집 - 시골로 가고 싶다.
2010. 10. 12
이지연 교수와의 예약된 면담이 있었다. 간호사의 호명을 받고 그의 방으로 들어섰을 때 앞서 면담자는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서 아직 얘기 중이였다. 그 환자가 나가자 난 자리에 앉으며
“안녕하세요?” 라고 모니터를 보고 있는 이 교수에게 인사를 했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순간 나를 미소 띤 채 쳐다보며 “예”라고 대답하곤 여전히 모니터를 훑고 있었다.
번뜩 난 그녀도 아바타라고 생각을 했다. 모니터가 없음 나를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 같아서다.
환자로부터 선택된 병원의 모든 전문의교수들은 아바타를 두지 않곤 안 될 거란 생각에 동의한 난 이지적인 그의 얼굴이 나를 주시하자 밝게 웃음 지었다.
“힘드시죠. 울렁거림 어떠세요?”
“그대롭니다.”
“ 건강상태는 좋은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 항암치료를 받으셔야죠.”
“예. 근데 교수님, 다음 번 11, 12월 두 차례 남은 치료 어떻게 오심증 덜하게 주사액 할 순 없을까요?” 나는 항암주사제 조제 시 오심증세를 완화 시킬 수는 없는지를 묻고 싶었다.
“무슨 말인지 압니다. 이번이 방사선까지 병행해 가장 힘드셔서 그럽니다. 3주간 쉬고 나면 괜찮을 겁니다. 그때 가서 얘기해도 되니 너무 걱정 마세요.”
“지금 같아선 남은 치룔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굴뚝같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게 끝까지 이겨 내시곤 합니다. 가장 힘든 지금을 이겨내셨으니 잘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안심 하세요.”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가득 담은 채 나를 지긋이 쳐다보며 격려하고 있었다.
어느새 아바타란 생각이 말끔히 사라진 거였다.
2010. 10. 13
am11;20. 암센터 2층 혈액종양 외래실에서 항암주사를 맞았다. 주사 중 울렁거림이 심해 비닐봉투까지 챙겼으나 다행히 토하진 안했다.
첫날부터 구역질이 심한 건 20여 일간의 방사선치료 예후가 누적된 땜일까? 하고 자문해 봤다.
화장실에 들러 요란스런 헛구역질을 너 댓 번 하며 거시침을 뱉고나오니 속이 진정 됐다.
하지만 역한 병원냄새의 역습을 차단하러 팩·커피를 끼운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원내 공원을 찾았다.
가을은 산정부터 내려온다던데 여기 얕은 동산 나뭇잎에 내려앉은 붉은 색을 보니 가을이 깊었음을 실감케 한다.
지금 전국의 산은 울긋불긋 치장을 하느라 나무들은 서리가 내리는 밤을 꼬박 새운다. 그 무궁한 원색의 빛깔을 찾아 가는 등산객들로 해서 나무들은 낮에도 몸살을 하고 있을 테다.
그들을 얼마나 찾아다니며 괴롭히면서 탄성을 질렀던가! 홍엽만상에 지는 해가 아쉬웠던 산행이 그립다.
병은 나한테서 빼앗아가는 게 얼마나 많은가? 그게 슬프기도 하지만 두려운 것은 혹여 자신감까지 훔칠까 하는 게다. 이 가을에 병원 내 공원벤치에 앉아 짙어가는 계절을 음미하는 자신이 서글퍼졌다.
그리도 자신만만해 했던, 무모하리만치 건강에 눈 감았던 오만에 자지러들게 오열한다.
가을을 뒤집어 쓴 낙엽이 숲길을 걷는 환자들의 무거운 발아래 깔린다. 비둘기 두 쌍이 사뿐히 내려앉아 내가 앉은 벤치를 배회하며 구구구- 가을을 노래한다.
가고 싶은 곳 언제라도 갈 수 있을 그들의 자유로운 날개 짓이, 영혼이 부럽다.
11월, 12월 두 번만 버텨내자. 명년 1원말쯤엔 가을보다 더 멋진 상고대 만발한 설산을 갈 수가 있을 테니-.
2010. 10. 14
방사선치료 후 임도훈 교수를 면담했다. 이제 그와는 마지막 자리가 될 것이다. 반백의 준수한 인상의 그는 미소 지으며 격려와 훈수로 마무리함을 기뻐하는 듯 했다.
“잘 됐어요. 내일까지만 받으시면 끝이네요. 이후 항암치료 하시지요? 건강하시니 잘 하실 겁니다. 수고 하셨어요.”
자기의 환자가 탈 없이 소기의 치료를 마쳤다는 안도감, 기대치의 효과를 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나에게 다정하달만큼 따뜻한 격려를 하고 있었다.
임도훈 - 그는 이름이 말하듯 도인 같은 훈훈한 훈남 같았다.
오후 1시 반에 항암주사를 맞으며 구역질을 하고 말았다.
입에 넣은 얼음이 녹은 물을 삼키다 미식거림을 참을 수 없어 뱉어 내도 결코 토하고야 말았다.
음식물 토한 건 없어 악취가 안 나 안도 하긴 했으나 요란한 구역질 소리에 무안했다.
비닐봉투에 구역질 몇 번을 하고나니 속이 좀 시원해졌다.
내 앞 환자는 옆의 부인이 가끔 요플레를 떠먹여 주더니만 이내 커튼을 가리고 토하는 거였다. 40대쯤 되는 그는 몹시 깡말라 있었다. 그도 빨리 쾌유하길 빌었다.
그가 떠나자 침대시트를 갈아 치운다. 나 같은 경우 고작 침상에 머문 시간이 십분 정도인데도 반드시 시트를 갈아 놓고 다음 환자를 받는 거였다.
삼성병원의 청결상태란 상상을 불허한다. 어떤 땐 버리는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청결은 아무리 해대도 모자라할 병원이기에 당연지사겠지만 말이다.
2010. 10. 15
오늘은 치료가 끝나자마자 귀가할 작정으로 짐을 싸들고 아내와 동행해 나섰다. 한 달포 남짓 살다보니 챙길 짐이 꾀 돼 한 박스는 어제 택배로 이미 발송했지만 가방 두 개와 종이백 하나는 들고 나섰다. 첫째가 모시고 가겠다는 걸 만류하고, 치료마침시간에 맞춰 병원엘 와서 버스터미널까지만 배웅해 달라고 한 약조를 했었다.
오전 11시10분에 항암주사를 맞고 40분에 영양사를 찾아 조언을 들었다.
오후 2시차를 타기 위해선 1시10분쯤엔 방사선치료를 마쳐야한다. 하여 박병석님께 양핼 얻어 1시에 치룔 받기로 했었고, 그래 여유 있게 우린 터미널에 도착하여 2시차에 오를 수 있었다.
터미널을 향하는 승용차 속에선 왜 오심증세가 안 일어났을까? 한 달반 만에 귀가한다는 달뜸과 치료를 끝냈다는 후련함 땜일까? 버스를 타고 집엘 도착하기까지도 오심증을 느끼질 못했다.
그건 심리적인 현상도 다분하겠지만 오염 안된 공기 탓일 거라고 확신하고 싶었다.
집에선 신기할 만큼 아무런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한자들은 무릇 가능하면 치료는 공기 좋은 곳에서 할 일이다. 치료효과가 몰라보게 좋아질 거라고 장담하고 싶다.
3층까지의 계단은 생각보다 더러워지진 안했으나 화단엔 풀이 무성하고 분재목들은 갈수증에 시달렸던지 모두 낙엽을떨군 채 기진맥진해 있었다.
4층 송씨에게 분에 물주는 걸 부탁은 했었지만 거의 달포동안 그것도 땡볕 여름철에 짬짬이 물주기가 얼마나 신경 쓸 일이었겠는가?
죽지 않은 그만도 다행인 것이다. 이젠 분재도 어떤 식으로든 하나씩 정리를 해야 한다고 다짐 다짐했었다.
아낸 청소하느라 진땀이 솟는다. 나도 거든다고 서성대지만 팔다리 힘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땀부터 흐른다.
모든 유리창을 열고 한바탕 청솔 하곤 자리를 펴고 누우니 파김치 된 몸뚱일망정 그리 편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힘이 빠진 건 그간의 긴장과 스트레스가 일시에 몽땅 사라진 탓일런가? 하는 생각을 해보지만 까닭은 은근히 피 말리고 힘 쏙 빼는 방사선치료의 후유증일 거란 생각이다.
쌈박거리는 팔다리를 쭉 펴고 누워 심호흡을 한다. 이리도 냄새가 없을까. 편하게누워 맑은 공기속에 숨쉰다는 게 얼마나한 행복인지를 새삼 절감하며 그 나른한 행복에 빠져들었다.
편히 누워 깊게 숨쉬니 천국이다. .
움막이라도 자기네 집이 최고란 데는 사족이 필요 없다.
맑은 공기와 편안한 안락처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최우선의 조건이겠다. 편하게 머물며 맑은 공기를 숨쉬는 건 생의 원초적인 바탕이라.
그 바탕이 불량하면 삶은 질곡의 늪에서 고단해 짐이다. 서울이여 안녕.
아~!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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