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17~19
처남이 특별히 자기처가에서 주문한 청국장가루의 진덤한 영양소가 탈 이였을까? 어제 밤과 아침식사 때 그 진한 청국장을 한 그릇씩 비웠었는데 낮부터 뱃속이 불편하더니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나아지겠지 하는 낙관에 하루를 보냈는데 구토까지 수반하자 아낸 병원엘 가보라고 최촉했으나 묵살해 버렸었다.
만 이틀이 돼서야 지사제(아레스탈 정)를 복용했더니 좀 진정되기 시작했다. 전혀 뜻밖의 위암에 고생하면서도 난 약 복용을 꺼리고 있는 건 평소 매스컴을 통해 인지한 약 남용에 대한 의구심 땜 이였다. 암튼 이번 지사제는 빨리 먹었어야 했다.
4차 항암치료 마치고 1주일째라 먹는 게 부실한데 설사와 구토까지 해댔으니 몸꼴이 형편이 아니다. 수술 후 가까스로 70kg을 유지하던 몸무게가 5kg이나 더 빠졌다.
누워있거나 앉았다 일어나면 현기증이 나서 스스로 놀래곤 한다.
음식을 잘 섭취한다는 게 건강유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한다. 걱정은 입맛이 더 형편없어 음식 맛이 소태맛이라 12월2일부터의 5차 항암치료가 걱정이 된다.
체력을 보강해야 혈당수치가 좋아져 치료를 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지연교수는 12월7일자로 짜진 치료일정을 나의 간청으로 5일 앞당겨 주며 건강관리 잘 하라고 당부했었기에 걱정이 더 된다. 음식 맛이 없어서, 소화가 안돼서 걱정해 본 기억이 없는 나는 그간의 건강이 얼마나한 행운 이였던가를 절감케 한다.
위암은 내가 간과해버렸던 그 동안의 나를 건강하게 지탱시켜 주었던 모든 요소들을 반추해보며 각성케 하는 거였다.신물이 눈물이 되도먹어야 하고 운동 열심히 해야 한다.
2010. 11. 20
설사기는 좀 잡혔다. 아내와 함라산 등산에 나섰다. 해발 250m정도의 함라산은 두어 시간의 산책코스로 최적의 장소다.
몇 년 전 디스크수술을 한 아내의 산책에 동반하며 그 은근한 맛과 멋에 빠져들었던 난 이제 매일 여기서 산책을 하기로 했다. 해송이 빼곡한 숲은 참·밤·오리나무를 비롯한 낙엽수들이 틈새를 매워 갈색낙엽을 카펫으로 깔았다.
오리나무는 가을이 깊었는데도 초록이파리를 그대로 달고 엷은 가을햇살에 뒤척이고 있다. 저놈들은 어느 날 무서리 내리고 소슬바람이 불면 초록이파리를 일제히 떨쳐 시공간을 유영하다 낙화한다.
떠날 때를 알고 버릴 땐 미련 없이 버리는 나무들은 그 별리의 아름다움이 생명의 영속이며 찬란한 미래인지를 알고 있는 게다.
버려야 산다. 많이 버릴 줄 알아야 더 많은 걸 얻게 되는 건 아닐까!
나무들은 그렇게 해서 우리들보다 더 오래도록 살아가고 있는 성싶다. 놓아야 행복하다.
많은 걸 간직하려할 때 불행해진다. 욕심은 화의 단초이다. 내려놓는 공부를 하자.
환자에겐 청량한 숲길은 참으로 좋은 치유의 병원이다.
2010. 12. 02
어제 오후 큰애 집에 여장을 푼 우리내왼 오전엔 코스토코에서 가족쇼핑을 하고 오후1시 채혈, 2시40분에 예약된 이지연교수 면담을 기다리며 좀은 걱정을 했었다.
“어땠어요? 좀 안 좋아 보입니다.”
모니터에서 눈을 땐 이교수는 깡마른 얼굴에 밝지 않은 표정으로, 예의 미소를 잃지 않으려는 어색함을 어쩌질 못한 채 나를 빤히 쳐다보는 거였다.
“혈당수치가 안 좋습니까?" 난 갱키는 구석이 있어 다소 의기소침해졌다.
“혈당수치는 괜찮은데 백혈구가 모자랍니다. 시내에서 머물고 있다고 하셨죠?”
“예, 웨요? 오늘부터 치료 안 됩니까?”
“백혈구가 모자라면 주사를 맞을 수 없습니다. 며칠 후에 치료하면 싶은데---.”
“제 사정이 딱합니다. 좀 떨어져도 어떻게 해보면 안 됩니까?” 사실 난 미안했다. 그녀가 12/7일자 치료를 정해 줬는데 사정하여 5일간 앞당기며 건강관리 잘 해 갖고 오겠다고 장담했었던 걸 빤히 기억하고 있을 텐데 다시 사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해보죠. 오늘 백혈구촉진제 주사를 맞아보고 내일 채혈을 하여 수치를 보고 결정합시다.”
“그럼 가능한 겁니까?”
“그럴 겁니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송구하고 고마웠다. 곧장 외래통원치료실로 가서 촉진제주사를 맞았다.
하루 순연된 거야 괜찮았다.
2010. 12. 03
오전 11시쯤 채혈을 했다. 반시간 후에 접수를 했더니 백혈구수치가 좋아졌어도 항암치료는 오후 3시쯤에 받을 수 있다는 게다. 항암주사는 어제 백혈구주사와의 시간차를 하루정도 둬야 한단다.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거다. 역정이 솟는다.
어제 누군가는 그 얘기를 해줬어야 했다. 2시쯤에 채혈을 하라고 일러줬음 이런 심난함을 면할 수 있었을 테다. ‘환자중심의 치료’란 구호는 병원의 식언 이였다.
사먹어야 했던 점심도 꺼림직 했는데 추운 날씨 탓에 병원 내 공원산책도 뭣해 소독 냄새 물씬한 구내에서 어떻게든 시간을 죽여야만 해 부아가 났다.
서비스만큼은 삼성병원이려니 한 고정관념이 일순 무너지는 오늘 이였다. 2시 반쯤 통원치료실 12번방에서 항암주사를 맞았다. 진토제를 먼저 주사하느라 시간이 10여분 더 소요됐다.
첫날인데 속이 느물대고 오심증이 솟는 건 무슨 연고일까? 몇 시간째 기다리며 상한 기분 탓일까? 5일간 어찌 감내해 갈지 은근히 걱정이 지핀다. 몸이 약해진 탓도 있을 테다.
2010. 12. 06
그놈은 낌새도 없이 시간을 타고 바람처럼
푸줏간 진열대 선홍빛의 음습한 터널 같은
긴 구멍을 얼마나 걸려 내 안에 닿았을까
티끌도 웃어버린 그놈은
시간의 자궁 속 시뻘건 위벽에 빌붙어
포고 없는 전쟁을 벌였것다.
싸움 같지 않은, 하품 한 입에 날려버릴 짓거리
그놈은 끈질겼다. 티끌보다 큰 덩치로
나를, 공룡 같은 나를
수백만의 白血軍 앞에서도 기죽지 안했다.
이태동안 그놈은 필사의 분열을 위한
혈청과 사투했다.
그놈을 코너에 밀치려, 초토화하려
지난한 전쟁에 악발 쓰는 비루한 기개의 환희는
종언은 언제일까
오, 십년, 아무도 모른다. 시간만이 선택하고
시간은 종내 그놈의 편에 설 것이다.
그놈이 아니더라도 난 또 다른 놈과 전쟁을 치러야 할 테니
하여 시간의 진지에 전초병을 띄워야 한다.
세상을 다 안을 것 같았던
나, 시간은 내편이 아니다 - 늙은 내 편 이기엔 넘 한가하다
누군가 되밟고 싶을만한 발자국을 남기는 짧은 시간만 빼곤
그 시간도 내편이 아닐 수 있다.
2010. 12. 08
다섯 차례의 치료를 마무리하고 막내의 전송을 받으며 귀가 길에 올랐다. 눈발이 축복이라도 하는 듯 흩날리고 있다.
위암수술에 이어 항암·방사선치료에 몸 사렸던 6개 여월의 애환들이 차창에 붙는 눈발 속에 녹아 뿌연 눈물이 돼 파노라마 되고 있었다. 결코 회억하고 하고 싶질 않은 반년의 시간은 나 자신과의 싸움 이였고 자랑하기 뭣한 행운 이였다.
시간은 게으른 나를 외면하지만은 아니했고, 거기엔 아내와 가족과 친지들 그리고 병원의 의료진·간호사의 헌신적인 시간 붙잡아주기 노력이 있어 가능했으리라.
살만큼 산 내게 이제부터의 시간은 덤이 돼 생이 뭔지를 시험하게 하는 거라고 생각해봤다. 덤으로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아름답게 사느냐를 고민해야 함이다.
노나라 간신 양호가 한사코 뿌리치는 노자에게 도와달라고 애걸했던 ‘日月逝歲不我與(세월은 흐르고 시간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란 말이 떠오른다.
이제부턴 시간도 더 이상 내 편에 설만치 여유롭질 않아 붙잡아도 머물질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시간은 보다 젊고 유능한 누군가에게 더 필요하기에 말이다.
하드라도 나에게 남겨진 시간은 결코 짧지만은 아니할 것임도 잘 안다. 아름다운 일들을 하기 위해선 충분하다는 걸 새겨야 한다.
함박눈이 난무하고 있다. 순수한 무채색의 세상을 위한 雪舞속에 빨려드는 나를 의식하면서 버스 안락의자에 깊이 파묻혀 들었다.
피곤이 함박눈처럼 밀려왔다. 모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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