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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섬 & 고운 최치원

동백섬  &  고운  최치원

▲고운 최치원 선생 동상▼

 춘삼월 호시절인데 윗녘지방은 강설한파에 온 천지가 눈꽃이 만발했다고 매스컴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거니 말거니 세상이 하 심난하게 맴돌고 있어 동백꽃 숲에 마음 팔려고 오피스텔을 나섰다. 아이고, 근디 빌딩 문을 나서자마자 강풍이 내 몸뚱일 낚아챌 기세다. 마천루 숲을 포효하는 삭풍(朔風)이 눈발까지 덤터기씌워 몰아친다. 고슴도치처럼 웅크려 5분여만 버티면 동백섬에 피난들 터라 강행군했다. 해운대백사장은 희뿌연 바다가 몰고 오는 거친 파도와 맞장 두느라 물벼락신세다. 파도란 놈도 단단이 골났다.

동백섬 정상, 고운 최치원 동상과 시비와 해운정 누각이 있는 뜰

금년 겨울을 꼬박 해운대에서 뒹굴었지만 설한풍은 첨이다. 웨스턴조선 앞 동백섬산책길엔 삭풍의 포효도 자지러졌다. 동백숲속에 피신하듯 숨어든 나는 비로써 심호흡을 한다. 설한풍 땜일까? 빨간 동백꽃이 숲 바닥에 수 없이 떨어졌다. 멀쩡한 동백꽃이 송두리째 떨어지는 사연이 궁금하다. 유일한 매파 동박새를 기다리다 자진한 걸까? 아깝다. 누군가는 동백꽃송일 주워 동백나무 밑에 사랑♥을 만들어 동박새 꼬시기 울력에 들었다. 동박새야 얼른 와라. 애태울 때 보듬어야 사랑이 깊어진다. 동백꽃 수술이 노랗게 농익었다.

죽은 듯 앙상한 푸나무들이 볕과 온도의 변화로 봄기운을 알아채고 우듬지에 밝고 뽀얀 새순을 내밀며 봄을 알린지 언젠데 동박새는 오리무중인가! 푸나무들도 생체시계에 반응한데 아무리 귀한 동박새라도 넘 하지 싶다. 동백(冬栢)섬은 말 그대로 동백나무가 우거진 섬이다. 장산계곡에서 발원한 춘천(春川)이 토사를 운반해 모래사주가 발달하면서 육지로 변신했다. 동백섬의 동백나무는 겨울에서 봄 사이에 낙화된 꽃송이가 10cm남짓 쌓여서 사람과 말발굽에 밟혔다는 뻥튀기 입담도 있다.

유일무이한 해운대 동백섬엔 섬을 일주하는 산책로와 산허리 오부능선을 휘도는 환상적인 숲길이 있다. 내가 짬만 나면 소요하는 산허리숲길은 달맞이고개와 광안대교, 이기대공원과 오륙도가 조망되고 청명한 날엔 대마도도 보인다. 등대 아래 바위에는 최치원이 새긴 해운대 석각과 황옥공주의 동상(인어상)이 있고, 2005년 11월 APEC 정상회담이 개최되었던 누리마루 APEC 하우스가 있다. 산 정상에는 최치원의 동상과 기념비가 있는 해운대관광의 명품공원이라.

▲흰동백▼

이맘때의 동백섬은 짙푸른 천에 빨간 동백꽃을 섬섬옥수 수놓은 화려한 외투차림 패션쇼를 한다. 뭉텅 떨어진 꽃송이들의 처연함은 심신을 치유하는 별천지라.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908년)이 전국을 유람하다 동백섬에 발 내딛고 안주한 까닭을 유추할 수가 있다. 12살에 당나라 유학 가서 18세에 당나라과거 빈공과에 장원급제하고, 중국관직에 봉직했다. 먼 이국타향에서 17년간이란 수행의 삶을 마치고 귀국(신라)한 고운은 자타가 공인한 천재문인이었다.

유학시절인 25세(881년) 때는 황소(黃巢)가 난을 일으켜 당나라수도 장안까지 쳐들어오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이란 글을 써 중국대륙에 명성을 떨쳤다. “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여서 시체를 전시하려고 생각할 뿐만이 아니요, 땅속의 귀신들도 남몰래 죽일 의논을 이미 마쳤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격문을 읽은 황소가 혼이 빠져 평상에 내려앉았다는 일화가 전해올 정도로 명문장이었다. 귀국 후 궁예와 견훤의 봉기로 후삼국이 태동하는 사회혼란에 고운은 사직하고 전국 명승지를 유람한 뒤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며 여생을 마쳤다.

▲해운정▼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하여 국회연설에서 고운이 아름다운 자연과 신선의 세계를 노래한 한시 (漢詩)   ‘계원필경’을 차용하여 양국의 우호관계를 강조해 깜짝 놀라게 했었다. 그 후에 또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무려 세 번이나 고운의 행적을 언급하여 최치원은 한국과 중국에서 더더욱 유명한 문인으로 추앙된다. 내공 깊고 품격 높은 시들은 시혼의 정수를 공감케 해서다. 시 주석은 푸른 바다에 배를 띄우니(掛席浮滄海) 긴 바람이 만리를 통하네(長風萬里通)’라는 시를 거론하며 최치원을 한·중 교류를 상징하는 인물로 거론했다.

2015년 1월 23일 서울에서 열린 '2015 중국 방문의 해’ 개막식에서 시진핑주석은 축하 메시지로 최치원의 시 ‘동쪽 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東國花開洞, 壺中別有天)’를 빌어 한반도를 찬양했다. “한국민중은 중국문화를 깊이 이해할 수 있고, 중국민중은 한국문화의 독특한 매력을 좋아하기 때문에 양국이 관광 등 인문 교류를 확대하는 데 견고한 토대가 된다.”고 소개했다. 최치원을 중국 한류(韓流)의 원조인 셈이다. 최치원이 벼슬을 한 중국 양주(揚州)시에는 최치원 기념관이 있고 기념일과 기념거리도 있다. 진정성의 교류는 이념을 초월한다는 걸 위정자들은 명심해야 함이다.         2025. 03. 19 

동박새
고운선생의 시비

*호중별천(壺中別天, 호리병속의 별천지)*

東國花開洞 동쪽 나라의 꽃피는 마을 화개동은 / 壺中別有天 항아리 속의 별천지라네

仙人推玉枕 선인이 옥베개를 밀치고 일어나니 / 身世欻千年 몸과 세상이 훌쩍 천년이 지났다네

春來花滿地 봄이 오니 꽃이 땅에 가득하고 / 秋去葉飛天 가을이 가니 하늘에 낙엽이 날리네

至道離文字 지극한 도는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 元來是目前 원래부터 눈앞에 있었다네

擬說林泉興 자연에 흥취 있다고 말들 하지만 / 何人識此機 어느 누가 이 뜻을 알겠는가

無心見月色 무심히 달빛을 바라보며 / 默默坐忘歸 묵묵히 앉아 돌아갈 줄 모르네

密旨何勞舌 은밀한 뜻 어찌 구구하게 말하리 / 江澄月影通 강물이 맑으니 달그림자 비치고

長風生萬壑 골짜기에서 바람이 이니 / 赤葉秋山空 붉은 잎 가을산이 비워지는구나.

(최치원은 지리산 남쪽 전라도와 경상도가 경계를 이루는 쌍계사, 칠불사 골짜기에 겨울에도 칡꽃이 핀다하여 화계동천이라 하였는데, 화개동천을 일컬어 호리병 속의 별천지로 극찬했다.)

*범해(泛海, 바다를 가르며)*

掛席浮滄海 돛달아 바다에 배 띄우니 / 長風萬里通 긴 바람 만리에 나아가네

乘槎思漢使 뗏목 탔던 한나라 사신 생각나고 / 採藥憶秦童 불사약 찾던 진나라 아이들도 생각나네

日月無何外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 / 乾坤太極中 하늘과 땅은 태극 중에 있네

蓬萊看咫尺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니 / 吾且訪仙翁 나 또 신선을 찾겠네

(28세 때 당나라에서  귀국길에 지은 시)

*추야우중(秋夜雨中 가을밤 비 내리는 속에)*

秋風唯苦吟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고 있건만 / 世路少知音 세상에 알아 주는 이 적네

窓外三更雨 창 밖에는 밤 깊도록 비만 비가 오는데 / 燈前萬里心등불 앞에 마음은 만리 밖을 내닫네

*우정야우(郵亭夜雨 우정의 밤비)*

旅館窮秋雨 여관에 깊은 가을비 내리고 / 寒窓靜夜燈 차가운 창에는 고요한 밤 등불 비치네

自憐愁裏坐 내가 봐도 가련해라 시름 속에 앉은 모습 / 眞箇定中僧 이야말로 참으로 참선에 든 중과 다름없구나

*산양여향우화별 (山陽與鄕友話別 산양 땅에서 고향 친구와 작별하며)*

相逢暫樂楚山春 서로 만나 잠시 초산의 봄을 즐겼더니 

又欲分離淚滿巾 다시 헤어지려니 눈물이 수건에 가득하네

莫怪臨風偏悵望 바람 앞에 슬피 바라 봄을 괴이히 여기지 말라 

異鄕難遇故鄕人 타향에서 고향 사람 만나기 참 어려운 것을

*동풍(東風 / 봄바람)*

知爾新從海外來 봄바람 네가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것을

曉窓吟坐思難裁 새벽 창가에 앉아 읊으니 마음잡기 어렵네

堪憐時復撼書幌 때때로 다시 서실의 휘장을 흔드니

似報故園花欲開 고향 동산의 꽃 핀 소식을 알리는 듯 하구나

동배섬과 등대, 등대 밑 바위에 고운이 새긴 '석각'이 있다

*우흥(寓興 / 흥에 겨워서)*

願言?利門 아무쪼록 이욕의 문에 빗장을 걸어 / 不使損遺體 부모님이 주신 몸 손상하지 말기를

爭奈探珠者 어찌하여 진주를 캐는 사람들은 / 輕生入海底 목숨 가벼이 여겨 바다 밑으로 들어가는지

身榮塵易染 몸이 영화로우면 티끌에 물들기 쉽고 / 心垢非難洗 마음의 때는 물로도 씻기 어렵네

澹泊與誰論 담박한 우정을 누구와 논해 볼거나 / 世路嗜甘醴 세상 사람들 단 술을 즐기거니

고운 최치원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