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러스와의 전투 속을 찾아 (속리산) ★
장각계곡을 따라 가파른 오르막길을 두서너 번 호흡을 가다듬고 오르다보면 왼편에 작은 나무하나가 헐벗은 팔뚝에 걸고 있는 팻말의 경구가 발걸음을 잠시 머뭇거리게 한다.
-<일회용은 자연을 죽이고, 재활용은 자연을 살린다.>-
세속을 떠난 산에 우리들의 의식 없는 쓰레기투척 행위를 보다 못해 속리산은 어린나무에 패찰을 붙여 오는 손님(?)께 인사드리게 하고 있음 이였다.
-<입석대>-
식탐은 동물의 세계 - 열 받은 햇살의 따가움을 등지며 문장대를 향했다. 그 쪽에서 오는 등산객이 훨씬 많아 외길엔 사람과 사람의 띠로 흡사 백두대간을 달리는 병정개미떼들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병목현상으로 쉬엄쉬엄 사방을 조망하다 거대한 입석대를 저만치에서 마주한다. 저게 북한이나 중국에 있담 붉은 글씨로 어떤 구호를 음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나마 위안을 해 보았다. 하지만 속리산이 북한에 자리했다면 이처럼 인간의 화려한 옷차림으로 추한 단풍(?)으로 물들진 않고 명실상부한 속리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황송해 진다. 그런 생각에 세속의 돛대기 시장이 된 문장대에 올랐고 운 좋게(?)도 그 인파 속에서 사진 한 판도 찍었었다.
우리들이 산을 찾는 이윤 뭘까? 각자 나름의 소신이 있겠으나 난 한적한 곳의 나홀로의 산행이 더 좋다. 소인 즉, 주변 일행을 의식치 않고 멋대로 행동하며 오롯하게 나를 삭혀일상에서 일탈할 수 있어서이다.
단체가 장점이 더한다 해도 일탈 속에서 나를 찾기란 홀몸이 지름길이길 쉬우리라 생각함이다. 산을 오르는 고행 - 그리고 하늘과 햇빛과 산과 바람만의 정상에 서 본 감회는 어디에 비할 건가? 거기 고요 속의 나를 비로써 자신[自我]을 조금은 찾게 될 수도 있음이라. 그런 과정은 어쩜 우리들의 귀소본능의 일단일지도 모른다. 태초의 안락함에서 산도(産道)를 통과하는 아픔에 이은 고고(呱呱)의 역순을 등산에서 실천 체득함이 말이다.
통천문을 통과하여 물개의 영접을 받고 개코원숭이 코밑을 지나 시어동쪽으로 하산길을 더듬는다. 속리산은 이제 세속산이라 해야 할 것 같았따. 속리 - 문명을 떠나 태초로의 귀의를 실천하려 그리고 거기서 위대한 불후의 명작을 남긴 폴고갱의 만년을 난 미치도록 흠모한다. 42세의 나이에 문명의 울을 벗어나기 위해 푸른 바다에 몸을 밭긴 그는 두 달여 만의 항해 끝에 타이티에 닿았지만 거기도 이미 문명의 촉수는 뻗어있었던 것이다. 하여 다시 80여km를 행군하여 이른 마티이에라란 원시마을에 곤한 여정을 풀고 정착하게 된다. 짙푸른 녹색과 파랑, 이글거리는 붉은 태양, 때 묻지 않은 원시의 통가족에 그는 홀랑 빠져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13세의 소녀 티티와 인간의 원초적인 삶을 꾸리고 그 멋에 천착함 이였다. 그런 원시의 순수에서 탄생시킨 명작들 - 남녹색과 적색의 강렬한 색채로 빚어 낸 ‘치자꽃을 꽂은 여인(태후라의 조상)’ ‘망고 여인’ 등은 티티와 마티이에라가 준 선물 이였던 것이다.
자연의 순수함은 때론 우리에게 깊은 영감과 열정을 낳게한다. 고갱은 원시의 순수 속에서 강렬한 엑스타시를 감지하고그걸 예술로 승화시켰던 거다.
속세를 떠났다는 속리산이 무분별한 우리네들로 하여 다시 세속산이 되가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단 하루만이라도 찌든 일상의 궤에서 온전히 탈출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고갱의 만년은 상상함만으로도 가슴 벅찬 열락인 것이다.
오늘 속리산은 나에게 폴 고갱의 문명으로부터의 탈출을 더욱 흠모하게 하는 여정 이였다.
속리산이 세속산이 되지 않게 해야 할 소명이 우리에게 있음이라.
03.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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