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 갠 여름날의 옥녀봉숲길

사흘째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소나기 땜시 방콕하기 일쑤라. 13층 창가에 펼쳐지는 해운대해수욕장 풍경은 ‘걸리버 여행기’를 소환하지 않아도 소인국의 어느 여름날 풍광이다. 소인국사람들은 빗발 따라 파도처럼 밀려와 사라졌다 언제 그랬느냐 듯 백사장을 촘촘히 수놓는 거였다. 그래 나도 소인국사람 행세를 하곤 한다. 어제 밤엔 천등번개를 치며 요란을 떨더니 하늘은 잿빛구름을 쫓아내고 있다. 쫓기는 회색구름은 아직 덜 펴진 뭉게구름을 불러들여 자리바꿈 하느라 분망하다.


등산한지가 며칠 째라서 똥구녕이 근질거렸다. 오후에 소나기 소식이 있다는 기상청예보에 마음은 벌써 옥녀봉을 향하고 있다. 절편 두 개와 과일, 육포와 물을 챙겨 오피스텔을 나섰다. 장산을 향한다. 부산시민들이 금정산 다음으로 많이 찾는 장산은 아마추어 등산꾼에게 안성맞춤 산이다. 집을 나서 안부 능선에서 방향을 틀어 옥녀봉까지 4km남짓 산행은 한 시간여 걸리고, 해찰께나 할라치면 왕복 세 시간은 족히 소요된다. 꼰대 중 상꼰대인 내게 적당한 코스라 고자 처갓집가듯 한다.


빗물 젖은 숲길도 훈습(薰習)하여 이마에 땀이 몽글몽글 솟는데 초목들은 생기를 찾아 짙푸르다. 여름은 산야를 풍요롭게 하는 초목들의 세상이다. 야생화가 피고지고, 벌`나비는 똥구녕에도 불이 붙었다. 곤충들도 동료들 따라 장보러 가기 바쁘고, 지표까지 올라온 세균포자들은 기상천외한 꽃을 피운다. 습한 골짝엔 온갖 버섯들이 콘테스트를 벌리고 있다. 감탄에 빠진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놈들을 포획하려고 휴대폰을 꺼낸다. 언제 시들지 몰라 골든타임을 놓치면 낭패다.



놈들은 고약한 시엄씨 변덕부리듯 해서 몇 시간 후엔 어떤 모습일지 가늠할 수가 없다. 그 변덕이 못 마땅 해설까? 멋지고 잘 생긴 놈이 처참하게 도륙된 경우를 가끔 목도한다. 놀부 심보 등산객의 장난질(?)이다. 등산로 갓길의 야생버섯 중에 독특한 모양새나 예쁜 놈들이 박살난 경우를 가끔 본다.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한껏 뽐내고 있는 버섯에게 맬급시 해코지한 심뽀가 궁금하다. 잘난 것에 대한 시기나 어떤 콤플렉스 몽니일까?



어른들(등산객)이 잘생긴 버섯을 짓뭉개는 까닭을 모르겠다. 오늘 꽃 피우기 위해 버섯곰팡이는 일년 아니 몇 년을 땅속에서 얼마나한 변태를 거듭했을까? 버섯뿐만 아니라 자연의 생명체는 나름 최선을 다하는 사연을 품고 이웃들과 공존하는 지혜와 배려의 일생이라. 그런 공존의 위대함을 해코지 하는 가학성 심보가 내게도 존재한다. 초등시절 하교길에 서속(조)밭 갓길을 걷다가 잘 익은 서속의 모가지를 손 가라테로 쳐올려 놈의 머리통이 공중에서 맴돌다 떨어지는 것을 즐겼었다


가라테에 잘려 튕긴 서속모가지가 공중에서 노란 똥처럼 떨어질 때 혼비백산하던 또래들과의 개구쟁이 짓 하던 하굣길에 “예키 망할 새끼들, 니놈들이 이 지랄을 했구먼. 가만히 있는 서숙한테 뭔 웬수졌다고 심통아지를 부려. 죽일 놈들, 니놈들 땜새 서속농사 망쳤다고 느그 애미한테 일러 혼내야 되겠다.”라고 소리지르며 서속 밭에서 불쑥 솟아난 도산할매의 역습에 기절초풍했던, 가을날의 추억이 한편의 동화처럼 망가진 버섯 위에 겹쳐졌다. 누렇게 익어 고개를 떨군 서속모가지를 철딱서니 없는 내 또래들은 가라테 표적물로 내쳐서 공중제비놀이(?)를 했었다.


우리마을은 밭농사가 많아 가을에 수확하는 조(粟)는 서속(黍粟)이라고도 부른 겨울식량이었다. 서속은 메조와 차조가 있는데 노랗 메조밥은 보기와는 달리 엄청 까칠하고 맛도 없어 오곡밥 중에도 젤 인기 없었다. 팥을 넣어 약간 무른 차조밥은 맛있는 별식으로 먹을 만했는데 수확량이 적었던지 가뭄에 콩나듯 했다. 선친님과 나는 항상 겹상으로 쌀과 조가 반 식기였는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암튼 깔그런 메조밥 도시락을 잘도 먹던 그때 그 시절의 깨복쟁이 친구들도 기억하기 징해선지(?) 메조밥얘기는 안한다. 가라테로 서속모가지 자르다가 도산할매한테 혼줄 난 그때가 그립고, 벌써 세상 떠난 또래 S(도산할매 손자)도 보고싶다. S도 나처럼 피부가 검붉었다.


조알맹이는 깨알만하다. 조껍질은 몇 번을 벗겨야 식용좁쌀이 되는지 모르겠다. ‘조바심난다’란 말은 조타작의 어려움에서 생긴 말로 조바심은 ‘조’와 ‘바심’의 합성어다. ‘바심’은 이삭을 털어 낟알을 챙기는 ‘타작’의 옛말이다. 조알곡식을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힘겨운데다 날씨도 좋아야하니 타작하면서 수월하게 마무리될지 조급하고 초조해진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잘 되기를 걱정하는 마음을 ‘조바심난다’라고 하는 ‘조바심’의 어원이 조타작에서 생겼다.


늙은이 반열에 든 내가 땡볕 아닌 흐린 날씨지만 언제 소나기가 쏟아질지 몰라 오늘 산행이 조바심난다. 그런 조바심 탈출구가 작은 생명체에 눈 팔기다. 폭우가 훑고 간 여름철의 산야는 미생물들의 봄날이다. 특히 버섯의 만화방창은 자연의 신비경에 우리들을 초대하여 경탄케 한다. 감동은 에너지의 원천이고 의지의 활력소가 된다. 산행 중에 무단시 생기는 조바심을 잊게 하는 것도 작은 생명들의 신비다. 자연은 가까이 다가서는 만큼만 속내를 보여주며 경외케한다. 2025.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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