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이 피워낸 꽃 능소화(凌霄花)
여름꽃 능소화가 폭염에 주눅 들었나 싶었는데 한바탕 퍼부은 소나기에 생기를 찾았다. 울타리나 담장을 기세 좋게 타오르다 두툼한 붉은 꽃을 피워, 눈길 마주친 모든 생명에게 밝게 인사하는 화사한 미소가 여간 싱그럽다. 어지간해서는 태양을 외면하지 않는 능소화는 저만의 간절함을 호소하는 은근한 입술 꽃이다. 멀리있는 임에게 간절한 기도가 닿도록 능소화는 높은 곳에 매달려 바람결에 신호를 띄운다. ‘내 여기 있노라’고. 능소화는 그리움의 화신이다.
지난날 소중한 이와의 아름다웠던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 갈망과 기도는 애틋한 생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 그리움으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이 없는 삶은 사막의 방랑자와 다름아닐 것이다. 사무친 그리움은 기다림의 씨알이 되고, 기도의 에너지로 승화한다. 우리가 지난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건 아쉬움과 미련이란 기억의 끄나풀에 단단히 메어 있어서다. 능소화는 희망을 놓을 수 없는 그리움의 끄나풀에 매달린 꽃이다.
그리움이 꽃이 되고, 그 꽃이 삶의 시간이 되어 한사람의 일생이 압축된 아름다운 상징이 능소화다. 옛날, 이제 막 입궁한 앳된 소녀궁녀가 있었다. 소화(霄花)라 부르는 그녀는 심성이 곱고 예뻤지만 모든 게 낯선 궁궐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겉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궐내를 행차하던 임금과 마주쳤는데, 그날 밤 뜬금없이 임금의 부름으로 은총(恩寵)을 받아 빈궁(嬪宮)이 됐다. 빈궁 소화는 기라성 같은 후궁들의 간교로 궁궐 후미진 빈소(嬪所)에서 하루 종일 왕의 전갈만 기다리는 고적한 생활에, 담장 밖의 인기척에도 혹여 임금일까 애태우는 그리움의 나날이었다. 기다림이란 애틋한 만큼 피말리는 시간의 적이다.
딱 한 번의 은총은 이내 상사병으로 도져 소화는 시름시름 앓다가 절명한다. 이를 애석하게 여긴 궁녀들이 소화가 임금을 기다리며 서성댄 담장 밑에 꽃씨를 심었는데, 이듬해 여름에 싹이 터서 담장을 타고 올라 꽃망울을 터뜨렸다. 넝쿨줄기에 줄줄이 피운 붉은 꽃들은 모두 담장 밖을 향하고 있었다. 소화처럼~! 그 얘기를 들은 왕은 과거시험장에서 장원급제한 선비에게 능소화를 관모에 꽂아주었다. 능소화가 어사화(御史花)가 된 유래이며 전통이다.
능소화는 수명이 몇 백 년을 사는 덩굴식물로 꽃이 질 때 송이 그대로 떨어지는 품위가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듯 여겨 선비들은 '양반꽃'이라 부르면서 자기 집 대문에 심어 양반가문임을 은근히 유세했다. 하여 일반평민들은 능소화를 함부로 키우지 못했다. 내가 지방에 살 때 고향친구한테 능소화 뿌리를 선물 받아 정문화단에 심었는데 생명력이 강한 놈은 3년차에 꽃을 피우고, 5년쯤 되어선 건물벽을 타고 올라 3층 마당으로 월경하여 만발했었다. 끈기와 생명력은 능소화에 대한 또 다른 감탄이었다.
미끄러운 타일 벽에 단단히 엉겨 붙은 줄기는 새순을 뻗쳐 탐스런 꽃을 치렁치렁 매달고 하늘을 향하던 기개와 강인함에 나는 우쭐하곤 했었다. 양반꽃! 유명무실해진 진주강씨(晉州姜氏) 양반가계를 은근히 자랑(?)하는 자만도 즐기면서. 정문 앞 포도에 떨어진 아직은 생생한 능소화가 아까워 차마 쓸어낼 수 없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그리움을 추억하는 시간은 행복에 젓게 하는 긍정의 샘물이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와 영광, 그리움, 기다림이란다. 빗방울 머금은 능소화와 교우한 뿌듯한 하루였다. 2025.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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