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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월악산 품안의 신선봉★

★ 봉선화 사연(월악산 신선봉)★


정오가 다 돼서야 우린 충북 제천 청풍면 학현리 미인봉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해야 했다.

여름은 아직도 햇살 속에 묻혀 백로에게 흔쾌히 자리를 내주질 않고 있다. 등산객들의 발길이 뜸했던지 숲길은 처녀마냥 부끄럼기가 역연하다.

미인봉을 향하는 숲길은 여간 빠듯한 경사로여서 금세 땀이 솟는데, 앞선 빅토리오님이 맞은편 동산을 가리키며 내가 모르는 비밀을 하나를 알려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잘 생긴 거시기가 저기에 있다는 거다. 잘 생겼다는 건 실물에 버금가는 것일 텐데, 거물이라니 그곳을 답사하는 여성등산객들의 맘 표정이 상상이 잘 안된다. 바위도 기왕이면 잘 생기고 모양도 남근석이면 유명세를 톡톡히 타는 게다. 5~6년 전 배알(?)했다는데 잊을 수가 없어 나에게 알려준다.

궁금증이 돋는데, 또 하나 궁금했던 놈이 비시시 나를 보며 인사하고 있다. 6월에 인근 도락산엘 왔을 때 조팝(나무)꽃을 한옹큼씩 달고 인사했던 진달래나무가 이젠 파란 녹두알을 꽃 대신 달고 수염하나를 매달곤 아는 채를 한다. 내 무안해서 어쩌나.

개으르고 무식하여 여태 네 이름도 못 알았는데···. 그리 생각다보니 그놈이 나를 조롱하며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새싹에게 물었으나 그 놈 꽃을 못 봐 확답은 뒤로 미루겠단다.

비웃거나 말거나 땀 훔치며 산 등걸에 이르렀다. 사위가 첩첩 산록이다. 푸른 하늘에 구름 몇 조각, 검초록 첩산(疊山)들을 배경삼은 꼬아 베기 적송들의 곡선미가 내 눈길을 뺏고 있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푸름과 초록에 몸 씻었다.

미인봉 눈썹 밑에서 난 쑥 개떡과 복숭아넥타와 물 한 병으로 점심을 때웠다. 이윽고 미인봉(549.7m)~!

뭣 땜에 미인봉이란 이름표를 달았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허나 그걸로 고민할 게제가 아니었다. 암릉길이 장난이 아니다. 그들 암릉의 장난(?)은 680고지부터 시작하여 770고지부턴 각개전투로 맞서지 않고선 백기 들어야 할 판이다. 845고지까지 100m정도 오르는데 무려 한 시간여를 바위장난질을 피하느라 죽기 살기 용을 썼다.

산력이 일천한, 국방의무도 어물쩍한 나는 이런 암릉과의 씨름은 ‘생각’근방에도 가본 적이 없었다. 앞서서 암벽을 붙잡고 용쓰는 여성 산님들을 보면서 그 용기와 담대성에 감동했다. 암릉과의 씨름의 고비길마다 빅토리오님이 나타나 훈수를 하고 있다. 빼빼마른 그(난 그가 마라토너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는 요즘 정상의 컨디션이 아닌데도 오늘은 선도하며 리더(백제회장)의 면목을 발휘하고 있다. 그런 그를 보며 산행의 리더(회장)는 죽었다 깨나도 나는 못할 거란 생각을 했다.

암벽 오름에서의 생명선은 밧줄이라. 밧줄에 하나뿐인 생명을 건다는 어리석음(?)을 누구나 주저 않고 감행한다. 그 어리석음을 팽개칠 수 있는 것은 신뢰일 것이다. 안전하다는 믿음은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곧 자기 자신이고 자신과의 싸움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고비 고비를 돌파한다. 그래 그 믿음을 확인하는 안도의 순간이 성취감일 테다. 그 성취감의 매력에 끌려 산에 자꾸만 도전하는 산님들은 자기의 삶도, 인생의 길도 그렇게 개척해 갈 것 같다.



금방 올라왔던 벼랑을 뒤돌아보고 대견한 자신감을 확인한다. 좀 전의 사투의 고행은 말끔히 사라진다. 그럴 것은 ‘해냄’이라는 성취감과 그 성취를 환영하기라도 하듯 자연은 또 다른 세상을 펼쳐주기 땜이리라. 이곳엔 수 억년동안 눈비바람이 빚은 갖가지 바위상과 그 바위들의 파수꾼 노릇을 하느라 사·팔방을 기웃거리다 휘어져버린 소나무의관능미와 그들을 빠짐없이 담아내고 있을 청풍호반의 넉넉함이 환영하고 있는 거였다.

그것만이 아니다. 이미 죽어버린, 시목(屍木)도 썩은 피부는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회색골간(骨幹)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같이 남아 기괴한 미감을 선사한다. 거기서 난 시간을 멈춘다. 이럴 땐 항상 아쉬움으로 남곤 하지만 그 ‘시간의 붙듦’을 오래도록 계속하고 싶은 거였다. 덤터기로 끼어들어 온 산행이라 그건 또 다른 목마름으로 접곤 어쩔 수 없이 다시 시간 속으로 동행하여야 함이다.

등산초입에서 인사 받았던 구절초가 고지인 여기선 만개했다. 웃지 않는 놈이 없다. 가을의 손길이 더 가까운 모양이라. 둥글레는 벌써 까만 열매를 만들고는 이파리에 맨 먼저 가을을 그렸다. 새싹이열매를 몇 알 거둔다. 자기네 화단에 시집을 보낸다나~.

신선봉에 오르니 3시 반도 훌쩍 넘었다. 눈알 멀뚱멀뚱 굴려보지만 신선들이 놀다갈 만한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시간 많은(?) 산님들이 돌탑을 쌓아 표지석의 친구를 만들었다. 오른쪽에 잘 생긴 거시기를 숨기고 있는 동산이 어께를 올려 금수산에 걸치고 금수산은 곧장 달려 월악산 바지가랑이로 들어간다. 청풍호반이 꼬리를 길게 빼 적시고 있는 충주호가 아련히 보일까말까 한다. 어쨌거나 표지석 붙잡고 기념을 남긴다. `


하산 길은 내리막이라 보폭이 바쁘다. 이름모를 야생화가 무성한 풀 속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사태골로 접어든다. 미역덩쿨 같은 줄기식물들이 등산로를 침범했는데, 어디선가 기우는 여름이 아쉬운지 쓰르람이 한두 마리의 울음소리가 처연하다. 그들 울음에 물소리가 묻혀온다. 물소리가 가까워지자 물봉선화가 떼 지어 흐드러졌다.

“날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있는 그도 애절한 사연을 안고 있다.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 계국공주와 정략결혼을 했으나 맘은 딴 데에 있었다. 심사가 꼬인 원나라는 충선왕을 옥좌에서 물리치고 불러들인다. 어느 날 밤, 충선왕은 예쁜 소녀가 피 흘리는 손가락으로 가야금을 타고 있는 꿈을 꾼다. 다음날, 궁궐 안을 걷던 충선왕은 하얀 천으로 손가락을 동여맨 소녀를 발견하곤

“너는 어찌 손가락을 흰 천으로 동여매고 있느냐?”고 하문한다.

대답 없는 소녀를 가까이 가서 보니 장님이라. 소녀가 그제야 말문을 연다.

“예, 저는 충선왕을 섬기는 고려신하의 딸이오나, 이곳에 강제로 끌려왔습니다. 손톱을 동여맨 것은 봉선화물을 들이기 위함 이오, 빨간 손톱은 저의 아픈 맘을 달래기 위해섭니다.”

소녀의 아비는 파관 되어 쫓겨났었고, 귀국 못하는 신세를 한탄하다 눈이 멀었으며, 소녀 역시 아비의 처지를 애통해하다 눈이 먼 거였다. 소녀 아비의 파관도 충선왕 땜 이였다. 왕은 감누 했다. 그 후, 귀국한 충선왕은 소녀를 불렀으나 이미 죽은 후였기로 왕은 소녀의 갸륵한 맘을 기리려고 궁궐 안에 봉선화를 많이 심게 했다.

그 봉선화인가! 여기 사태 골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아까부터 가늘게 들리던 계곡물이 봉선화뿌리를 적시며 얼굴을 내민다.

무척 맑다. 한 모금을 입에 넣었다. 그리고 이내 배낭을 벗곤 웃통까지 벗었다. 손수건을 물에 담가 몸뚱이 염기를 닦아낸다. 소금기 묻은 손수건을 물에 넣자 청정수가 무수한 주름살을 만들고 있다.

짜고 더럽다는 얼굴이라. 난 그 악동 짓을 몇 번을 더 했다. 물의 주름살만큼 난 시원 해 짐이다. 동금대 입구 주차장에 닿았을 땐 5시 턱밑 이였다. 동석했던 새싹이 뒤 자석이 비었던지 이사가 뻗었다. 덕분에 나도 뻗었다. 나의 뻗힘을 위해서란다. 그것이 아니어도 오늘 난 새싹에게 얻은 게 많고 준 것은 성가시게 굶뿐이라 미안하다. 더구나 오늘 내게 선물한 미니 핸-북, <나무와 풀>이란 식물도감은 나의 여행가방에서 오래도록 머물며 새싹을 대신해 나를 즐겁게 해 줄 것이다.

박달재에 잔서(殘暑)를 토해내는 해님이 걸려 붉게 물들이고 있다. 어둠이 서서히 붉은 노을을 밀어내고 있다.

08. 09. 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