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생태주의 성자-더글러스 톰킨스
더글러스 톰킨스 - 위대한 생태주의자, '노스페이스'창업자
‘법은 바뀌고 인간은 죽지만 땅은 남는다(Laws change; People die; the Land remains)’는 진실을 우리에게 각성시켜준 위대한 자연주의자였으며 비전가였던 더글러스 레인스포드 톰킨스(Douglas Rainsford Tomkins)가 지난 12월8일 그토록 열애했던 자연에 귀의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접경지대인 푸말린파크(71만5,000에이커), 아르헨티나의 몬테레온(Monte Leon)파크와 에스테로스 델 이베라(Esteros del Ibera). 칠레 파타고니아의 코르코바도(Corcovado)파크 등 약 27억평을 약 2억7,500여만 달러(약 3,250억 원)에 사들여 세계최대의 야생내지 습지공원으로 만들어서 두 나라에 기증 했다.
서울이나 싱가포르의 15배에 해당하는 광활한 땅인 것이다. 그보다 우리를 더 매료시킨 건 그가 세계적인 아웃도어브랜드인 ‘노스페이스’ 창업주이고, 엄청난 유산을 슬하의 두 딸과 두 손자에겐 일절 상속하지 않겠다는 유언(인터뷰)을 남겨서다.
특히 변변한 졸업장도, 기술도, 연줄도 없었던 톰킨스가 남다른 신념과 의지로 인류를 위한 비전을 일생동안 이뤄냈다는 점은 오늘날 ‘헬 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에게, 부의 독식과 계승을 위해 혈안인 재벌들에게 신선한 각성제가 됐음 싶어서다.
17살에 학교와 집을 뛰쳐나와 유럽여행 후 20살에 귀국, 시에라네바다 산림감시원으로 지내다 히치하이킹으로 만난 수지 러셀과 결혼하여 목구멍에 풀칠하기 위해 연 가게이름이 ‘노스페이스’였다.
등산과 암벽타길 좋아했던 그가 유럽에서 익힌 아웃도어용품을 갖다 판 게 오늘날 세계적인 브랜드가 됨이다
싫은 세상을 바꾸려고 도전하던 이들과 세상이 싫어 아예 등 돌리던 젊은이들이 팽배했던 60년대 미국사회에서 그는 후자였으며 사업도 번창했다.
68년, 회사를 동업자들에게 맡긴 채 톰킨스는 친구들과 낡은 포드 밴을 타고 남미를 종단해 아르헨티나와 칠레 국경의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 등정에 나섰다. 그가 유명세를 탄 건, 그 과정을 담은 다큐영화‘Mountain of Storms’가 국제어드벤처필름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산악컬트무비의 전형이 되면서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게리 슈나이더 같은 생태`환경주의들의 다양한 에세이와 시에 매료 돼 읽었고, 노르웨이 철학자 아르네 네스(Arne Naess, 1912~2009)와의 만남, 조지 세션스(George sessions)와 빌 디벌(Bill devall)의 공저 ‘Deep Ecolocy’의 독서 체험이 자연에 대한 경외로 각성한다.
인간은 생존에 꼭 필요함만큼 외에 자연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 지구가 감당키엔 인구가 너무 많다는 각성, 자연을 살리자면 경제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 한 마디로 자본주의의 미래는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하여 톰킨스은 댐은 말할 것도 없고, 가라앉은 사료와 항생제로 물을 죽이는 양식과 과도한 방목으로 파타고니아초원을 황폐화하는 목장을 허용할 수 없었다.
46살 때 생태주의 가치관을 공유한 크리스와 재혼 뒤 도시`문명과의 결별, 사업`자본주의와의 결별한 그는 남미로 향했다.
“과도한 목축으로 계곡(Cochrane)이 황폐해졌다. 파타고니아의 25~30%는 이미 사막화했다”고 단언했다.
우리의 재벌들이 골프장을 만들고,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데 정부가 맞장구 치는 행태가 자연의 사막화를 부채질 함인 것을 깨우처야 함이다.
그는 또 두 딸과 손자들에게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겠노라고, 노년에 쓸 작은 농장과 집만 남기고 전 재산을 칠레와 아르헨티나 환경 보존을 위해 기부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돈 될 만한 땅은 모조리 사서 사유화하고, 부당하게 취득한 몇 천 억대의 주식을 꼬맹이에게 편법증여 하며, 근로자들의 무단해고와 임금착취를 일삼는 공룡재벌들이 톰킨스의 그림자라도 밟았음 싶다.
난 싱가포르여행 중에 톰킨스의 자연귀의소식을 접했다.
베테랑 카야커이기도 했던 그는 지난 8일 지인들과 함께 한 파타고니아 헤네랄카레라호 투어 도중 돌풍에 보트가 전복되면서 저체온증으로 숨졌단다.
별 볼일 없는 섬, 싱가포르를 톰킨스 못잖은 신념과 의지로 경제선진국의 비전을 세우고 매진한 독선가이자 도시녹색운동가 이기도 했던 리콴유총리도 금년 3월23일 영면했다.
두 위대한 비전가는 탐욕과 실천에 대한 의지는 여느 사업가도 따를 수 없는 독보적이고 저돌적 이였다. 다만 그렇게 해서 일군 위대한 결과를 흔쾌히 인류를 위해 기증한 탓에 장사꾼 재벌들과 차별된다 할 것이다.
톰킨스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그는 “훗날 사람들이 이 땅을 걸을 것이다. 무덤보단 이게 더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우리의 재벌들은 사유화한 땅에 철조망을 치고 지들만 걸으려 한다.
하면서 “우리만 걸으니 얼마나 좋으냐?”라고 의시 댈 것이다. 선지자이며 인류 앞에 겸손한 두 자연주의자의 숭고한 삶을 거듭 되씹는다.
2015. 12. 20
-최윤필기자의 글<더글러스 톰킨스>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