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행복한 남자>
영화 <행복한 남자>
영화 <행복한남자>는 19세기 말 기독교와 유대교의 교세가 팽배했던 덴마크사회에서 천제적인 한 공학도가 순수와 열정으로 야망을 실현하기 위한 지난한 여정에 든다. 자만심 강한 페르는 관용과 포용이 성공의 길이란 사회적함의를 외면하다 공고한 기득권사회의 냉혹함 속에서 자기발견에 이르는데-. 루터교회 목사의 아들인 페르는 엄격한 부친의 신앙가풍에서 벗어나려 공학전공을 위해 코펜하겐으로 떠난다. 완고한 아버지가 주는 시계(유산?)도 거절한 페르는 식당아르바이트 중 만난 여종업원과 동거하며 용돈까지 빌리는 가난뱅이다.
그러던 페르는 유대인 부자집 살로만 아들과 사귀고, 이어 살로만의 장녀 야코베와 사랑에 빠진다. 페르는 풍력을 이용한 전기생산과 운하를 준설하여 코펜하겐을 수상(水上) 상업도시로 만드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살로만에게 설명하여 환대를 받는다. 살로만은 그 프로젝트를 덴마크 행정담당자에게 소개시켜 지원받으려다 실패하자 그를 오스트리아로 유학시켜 전문가로부터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인정받는다. 그 무렵 페르는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도 장례식에 불참했는데 마침 야코베가 찾아와 간만의 밀회를 즐기며 결혼을 약속한다.
페르는 야코베 부친의 후원으로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려 매진한다. 그러나 사회적인 타협과 포용을 모르는 그의 프로젝트는 좌절되고 다시 자신의 순수성을 펼칠 새로운 길 찾기에 나선다. 가난뱅이 페르는 자기분야에서 천제이며 실현가능한 플랜이란 자만심으로 버티는 거였다.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 자금이 필요하단 걸 절감하면서도 알량한(?)자존심 탓에 타협하거나 양보할 줄을 모른다. 재화는 양심과 인품으로만 얻을 수 없단 사실을 뭉갠다. 절호의 찬스를, 가까스로 성사된 기회가 그렇게 무위가 되고, 후원자들마저 실망시켜 경원시 당하기도 한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페르를 어머니가 찾아와 아버지의 시계를 주면서 기독교 회귀를 간청하지만 거절하는데 그게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어머니장례에 참석한 페르는 고향의 시골교회 목사 딸 잉게르에게 청혼하고, 야코베에게 일방적으로 파혼을 선언한다. 야코베는 여태 숨겨왔던(말할 기회도 없었다)페르와의 임신을 유산시키고 부친유산을 상속받아 고아들을 위한 대안학교 자선사업에 올인한다. 잉게르와 결혼해 세 아이의 아빠가 된 페르는 암(癌)에 걸려 유틀란트 시골 움막에 은둔하고-. 가난한 시골뜨기 천제 공학도가 부잣집 딸과 결혼직전에 도망(?)쳤다. 그가 추구한 행복은 뭘까?
그의 내재적 갈등, 즉 아버지와의 대립, 종교적 대립이 해소되지 않은 채 페르는 행복할 수 없었던 거다. 그는 자기 안으로 도피하나 고독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신기루처럼 찾아온 행운이 결코 행복일 수도 없었다. 행운과 행복은 두 얼굴의 야누스일 수도 있다. 암 투병 중인 페르가 야코베에게 초청편지를 써 보낸다. 누추한 움막에서 재회한 페르와 야코베! 페르는 그간 자신이 모은 적은 돈을 자선학교에 보태겠다며 ‘풍력프로젝트’와 함께 야코베에게 준다. ‘나 땜에 상처받았느냐?’고 물으면서~.
“자네는 행운아군. 하지만 행운은 별로 매력적인 말이 아니야.” 야코베 삼촌이 페르에게 한 말이다. 페르는 종교적인 편견과 억압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기본적인 예의나 품성을 자연스레 체험하지 못했다. 사랑도 극히 이기적이었고, 주변사람들과도 손익을 따지는, 때론 충동적으로 맺은 관계에 머뭇대는 서툰 사회인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몽땅 잃어버리고 고향해서 은거한다. 암으로 죽음이 가까운 어느 날 이 세상에서 자기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진심으로 사랑해준 야코베를 불러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작별인사를 한다. 2025. 07.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