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길 - 산행기

이럴수가! 아홉산 산행기

peppuppy(깡쌤) 2025. 1. 19. 21:15

이럴수가!  아홉산 산행기

회동수원지
화마에 검정 시목이 된 소나무군락지

을씨년스런 을사년벽두가 내란수괴의 구속으로 진정이 될는지 주말날씨도 한껏 풀렸다. 배낭을 챙겨 회동수원지에서 물꼬를 튼 수영천의 동대교를 건널 땐 정오가 지났었다. 열흘 전, 회동수원지 수변둘레길 트레킹시작점인데 반대편의 아홉산등산로 입구 찾기가 헷갈린다. 몇 분한테 물어도 마이동풍이었는데 어느 등산복차림의 중년에게 묻자 입구까지 동행하잔다. 그분도 수원지 둘레길은 다녔어도 반대편의 아홉산쪽은 한번도 가보질 못해 궁금하긴 마찬가지란다. 그래서 내가 오늘 동행하자고 제안하자 비시시 웃기만 했다. 신작로에서 빠져 임도에 들어서자 비좁은 산골짝엔 낡고 삭은 울타리 속에 움막 몇 채(폐허된 버섯농가)가 을씨년스럽게 나타났다.

어쩌다 임도에 올라섰고, 절개지벼랑위의 밧줄이 나를 등산로에 진입시킨 행운지점이다
철탑사이로 희뿌연 산록들이 밀려오고~!
제1정상에서의 회동수원지 조망, 기갈을 때웠다

개울 저편 숲속에 퇴색한 산악회리본 몇 개가 매달려있어 개울을 건넜다. 낙엽에 파묻힌 등산로는 식별이 뭣해도 대충 어림잡아 산비탈을 타고오른다. 뒤따르던 그분이 느닷없이 자긴 되돌아서겠단다. “초행에 시간까지 빠듯해 지금 포기하는 게 좋겠다.”라면서였다. 싱겁게 끝난 아홉산 초입 동행길은 산악회리본도 더 이상 종적이 없고, 빡세기까지 해서 심난하고 초조감이 들었다. 허나 제1봉에 오르면 방향감각과 자신감이 잡힐 터라고 다짐한다. 어찌하여 임도에 올라서 안심이 됐다. 절개지 벼랑철조망 위로 밧줄이 내려와 등산로 지름길임을 안내한다. 벼랑위의 밧줄은 그렇게 나를 등산로에 진입시켰다.

수원지 정면의 동산이 땅뫼산, 뒤 삼각봉이 부엉이 봉으로 내가 열흘 전에 유일하게 스킨십한 반가운 얼굴(?)이다
국가지점번호; 아홉산등정 중 이따금 유일하게 마주치는 이정표(내겐 까막눈이었지만)였다

가파른 제1봉은 그럴듯하게 폼 잡는 소나무와 바위 몇 개로 나를 영접했다. 열흘 전 스킨십 했던 회동수원지도 얼굴을 내민다. 오후1시였다. 배낭을 풀고 기갈을 달랜다. 첩첩이 이어진 산 능선 어느 쪽이 내가 오늘 더듬어야할 코스인지 아리송하다. 내가 워낙 이쪽지리에 어두운 초짜라 긴장이 되지만, 아홉 개의 산능 협곡이 깊지를 않아 3~4시간이면 종주한다는 어느 산님의 산행기를 읽고 나선 행장이다. 낙엽에 묻혔지만 등산로는 이어지고 가파르질 않은 능선 오르내림에 발길은 가벼웠다. 더구나 깨 홀라당 벗은 활엽수들이라 시계(視界)도 좋다.

땅뫼산 황톳길이 닿을 듯싶었다
일난성 팔쌍둥이 소나무도 화마에 숯덩이 시목이 됐다. 참으로 애석했다
▲우아했을 소나무 군무는 영원히 되돌릴 수 없으리라▼

구름 한 점 없는 겨울하늘은 복사열 탓인지 뿌옇다. 열흘 전에 소요했던 회동수원지가 친근하게 다가와 고독한 산행을 위무한다. 황톳길을 끼고 있는 땅뫼산과 뾰쪽한 부엉이 봉이 아는 챌 해서 반갑다. 이 아홉산정을 에우른 첩첩산세 우주에서 내가 스킨십한 유일한 지명들이다. 아홉산은 금정구 회동동 회동수원지에서 기장군 철마면 장전리에 걸쳐 뻗은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젤 높은 봉우리가 361m이다. 서쪽 산록에서 웅천천이 발원하고 동쪽에서는 일광천의 지류들이 발원해 장전천으로 합류한다. 북쪽으로 함박산, 천마산, 달음산으로 이루어진 산맥이 이어져 병풍처럼 곧게 뻗어 있고 동쪽으로는 일광 해안에서 임랑 해안으로 이어진 동해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데 내겐 봉사 문고리 더듬는 셈이다.

남쪽으로는 양달산, 감단산, 구곡산, 장산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다. 아홉산은 고도는 낮지만 오밀조밀한 산세에다 금정산 주능선과 회동 수원지 전경을 감상하면서 숲길을 걷는 치유의 낭만길이다. 10㎞의 일광테마 임도 등산길엔 약수터, 화원, 정자연못, 대나무숲, 적송숲 등이 조성되어 있고, 기장 앞바다를 조망하는 전망대도 있다는데 불원간 그곳도 소요해야겠다. 그나저나 내가 몇 개의 봉우리를 통과했을까? 앙상한 나목들이 뿌연 캔버스에 박제(剝製) 됐다. 아니다, 불에 탄 검정시목(屍木)들이 지옥의 전사들처럼 무언의 시위를 벌리고 있다. 처참하다.

▲李山(이산) 표지석과 국가지점번호판이 아홉능선의 신분명찰이라 아쉽기 그지 없었다▼

화마에 휩쓸린 소나무들은 몇 십 년간 풍우를 버텨내며 가꾼 몸짱인데 넘 애석하다. 앞으로 백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원상회복(?)이 가능할까? 언제 산불이 났을꼬? 조림은 언제할 건지? 아홉산은 이왕가(李王家)의 산이었다는 李山(이산)표석이 잊을 만하면 나타났다. 장산(萇山)일대를 비롯한 부산근교 산은 조선조에 왕실소유 보호림이었다. 한껏 폼 잡고 있을 소나무들 사이로 조망할 회동수원지와 첩첩이 에워싼 산능선은 얼마나 멋들어진 풍광일까! 가파르지 않은 능선자락을 소요하며 풍경에 심취하는 트레킹의 맛깔은 산악인이 아니어도 충분할 터!

▲몇 번째 봉우리인지 궁금한 정상의 바위꽃과 시목이 피운 버섯꽃▼

아홉산능선 트레킹은 인공(人工)때가 안 묻은 자연숲 길이어 좋다. 낙엽에 파묻힌 긴가민가한 등산로를 헤치며 밟히는 낙엽의 바스락대는 소리는 내가 자연의 일부란 착각에 빠져든다. 세 시간 반쯤의 아홉산 종주를 하면서 한 사람도 조우한 적이 없을 만큼 인적이 뜸한 고적한 숲길이었다. 치유의 숲길로 안성맞춤이었다. 하여 은근이 기우(杞憂)도 도졌다. 불탄 산림복원 한답시고, 등산로 정비 한답시고, ACC방부제 데크계단 따위 설치할 생각은 범죄행위라고 지자체에 경고하고 싶다. 합성방부제 데크의 유해성분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다. 보기 좋고 값이 싸서 지자체는 전시효과를 내기위해 온 산하에 데크길 만드느라 혈안인데 무지의 소치다.

솔방울 우수수 매단 소나무 수묵화
이왕가의 산림이어서 한 땐 수목이 울창 했으리라

더구나 아홉산자락의 ACC데크 길은 회명수원지오염의 주범이 된다. 열흘 전 회동수원지 수변둘레길을 트레킹하면서 오륜마을 앞 습지에 지그재그로 조성한 데크길을 소요하면서 지자체장의 무식에 혀를 찼다. 독성화학물질에 오염 된 수원지를 식수원으로 유용할 부산시민들의 건강생각은 전시행정 앞에 맥도 못 추렸을 테다. ACC방부제는 선진국에선 사용금지 건축재다. 글고 아홉산 등산로에 꼭 필요한 건 이정표였다. 9개의 산정에서 마지막 봉우리의 ‘아홉산’이란 석물 하나가 오늘 내가 목도한 유일한 안내 표식이었다. 회동수원지 수변 데크길 조성비용을 아홉산 이정표에 썼어야 함이라.

지명을 알 수 없는 정상에소 조망한 아래 능선은 혹 아홉능선의 일부일까?
일난성 오형제 소나무, 아홉산엔 다쌍둥이 소나무가 유독 많았다

아홉산 트레킹은 사계절 내내 치유의 숲길로 최상이지 싶었다. 활엽수가 많아 앙상한 나목들은 뷰`포인트를 넓히고 중첩된 산록들은 탁 트인 능선에서 계절 따라 파스텔톤 색칠을 할 것이다. 더구나 막힘없을 시원한 바람의 유혹은 어떻게 감당할까! 아홉산 트레킹의 장점들이 입소문 날까싶었다. 네 시간 동안 마주친 동물은 활공하는 조류뿐이었다. 그래 은근히 홀로산행이 걱정도 지폈지만 말이다. 진초록 우거진 한 여름날의 아홉산 소요는 어떨까? 겹겹 산능을 넘어 호반을 애무하고 달려드는 바람의 맛깔은 얼마나 환장을 할 것인가! 오늘 오후 한나절은 오로지 나 혼자만의 우주 속에 머물렀다.            2025. 01. 18

종주해야 할 아홉산 능선
▲아마 예 일곱째 봉우리쯤 되지 싶었다▼
드뎌 아홉산정 표지석, 맨 끝머리가 아홉산정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되짚어 보면 더 높았던 봉우리도 있었다
갈참나무 낙엽 두텁게 깔린 내리막길은 여간 신경 날세웠다
경부고속도 부`울구간인가? 우측 끝 바위연봉이 달음산인 걸 나중에 알았다. 달음산도 내가 스킨십한 정상이다
좌측의 바위연봉이 금정산이란다
한올 가족묘원
산행종점의 단풍나무 우산속의 카페
산행도(붉은 선); 버스종점-동대교-동대재입구-송전탑-제9봉----제1봉(아홉산정)-전망대-밤나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