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에서 피서 삼매경(三昧境)
옥녀봉에서 피서 삼매경(三昧境)
하도 볶아대는 금년 여름철이라서 세 네 시간 소요되는 산행은 엄두가 나질 않아 장산산행도 자제했다. 간비오산을 에둘러 안부에서 옥녀봉을 오르곤 장산계곡으로 빠져 양운폭포 냇가에서 땀을 씻는 트레킹도 두어 번에 그쳤다. 오늘은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여서 옥녀봉트레킹에 나섰다. 계곡 물웅덩이에 발 담구고 닥터피시들의 마사지를 즐기는 피서산행은 여름산행의 별미다. 그렇게 해찰 부리면서 한갓진 산행해도 세 네 시간이면 족한 코스가 간비오산 ~ 옥녀봉트레킹이다. 닥터피시와의 삼매경을 꿈꾸면서다.
꾸무럭대느라 늦게 나선 산행은 옥녀봉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 달래고 계곡 물웅덩이에 닿았을 때가 정오를 훨씬 넘긴 참이었다. 내가 찾아드는 물웅덩이는 골짝 꼭대기에 있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다. 새끼폭포의 낙수소리가 꿈속의 아리아일 듯싶은 물웅덩이 속 물고기들의 슬로모션 유영이 평온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나의 인기척에 치어(穉魚)들이 부산을 떤다. 나는 배낭에서 요깃거리를 꺼내놓고 양말을 벗은 발을 웅덩이에 밀어 넣었다. 순간 비상사이렌을 작동 시켰나 웅덩이 속은 갑자기 난리 났다. 물고기들이 대피하느라 혼비백산이라.
카스테라 빵부스러기를 고스래 하듯 웅덩이에 던졌다. 놀래 숨었던 치어들이 수면의 빵부스러기에 입질을 해대자 순식간에 웅덩이는 물고기들의 오찬파티장이 됐다. 조금 큰 빵 덩이를 던지자 파티장은 전쟁터가 됐다. 큰 버들치들이 번개처럼 나타나 먹이쟁탈전으로 빵조각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웃사이더 치어들은 눈치껏 부스러기 챙겨 달아난다. 생존한다는 건 먹이전쟁에서 살아남는 거다. 인류의 전쟁도 먹 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땅따먹기 - 파이전쟁이다. 파이전쟁 하는 인간처럼 치사한 동물은 없을 것이다.
파이전쟁을 위해 인간은 온갖 이념과 종교를 명분 삼아 살육을 감행한다. 웅덩이속의 버들치들은 파이전쟁이 끝나면 아까의 평온이 찰나적으로 펼쳐진다. 트라우마 없는 세상이다. 나는 물속에 발을 담구고 아웃사이더 된 치어들의 마사지를 즐긴다. 새끼폭포의 낙수물결 파장이 조용한 수면을 얼룩지고, 푸나무들의 데칼코마니그림이 세상에서 단 한 번 그려지고 있다. 물그림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연의 걸작품이다. 반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카스테라 빵으로 물고기들의 전쟁터를 만든 폭군인 나는 물웅덩이를 빠져나왔다.
격노하여 사회정의를 풍비박산 시켜놓고 시침이 때는 철면피 보다는 내가 더 사람답다고 합리화 시키면서였다. 옥녀봉 너덜갱지대 부근의 숲속엔 유난히 야생버섯이 많다. 천차만별인 놈들의 기상천외한 모습은 보면 볼수록 신비스럽다. 예쁘고 우아한 모습은 가히 고혹적이라 눈길을 땔 수가 없다. 놈들은 무엇 땜에, 누굴 위해 멋진 폼을 과시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매파(媒婆) 없이 포자로 번식하는 놈들이 아니던가? 땅 위에 있는 곰팡이 덩이 즉 대형 균류(菌類)가 버섯이다. 음지나 부엽토, 썩은 고사목에서 포자가 모여 피우는 꽃이 버섯인 것이다.
1년 중 대부분을 땅속의 균사체로 지내다 자손을 번식시키려고 잠깐 자실체(子實體, 꽃)를 형성해 포자를 번식시킨다. 예쁘고 화려한 버섯은 대게 독버섯이라는데 갓이 새빨갛고 노란색의 대받침에 크고 화려한 달걀버섯은 식용버섯으로 네로황제가 존나게 좋아한 버섯이란다. 네로는 달걀버섯을 가져오면 그 버섯 무게만큼의 황금으로 교환해 줬다. 황금버섯인 셈이다. 우리나라엔 5천여종의 버섯이 있어 여름 ~가을철에 비 온 후 산야를 산책하면 많은 버섯을 발견 관찰하는 재미로 힐링산행이 된다.
버섯은 습지와 물웅덩이 속, 어떤 놈은 몇 미터 높이의 나무 꼭대기에서 자생하는 놈도 있다. 나는 축축한 숲속의 야릇한 냄새를 맡으며 발견하는 각종 야생버섯의 예쁜 자태와 괴이한 생김새에 현혹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예쁜 버섯을 폰카에 담아와 웹상에서 공부하는 재미나, 또는 식용버섯을 채취하여 먹는 재미까지---. 나는 작년에 생애 첨으로 노루궁뎅이 버섯을 발견하여 나물해 먹었던 쾌재를 잊을 수 없다. 식용버섯이라도 반드시 익혀먹어야 부작용이 없고 확신하지 못한 건 절대 채취하지 말자.
버섯은 각기 은은한 향과 짙은 풍미에 독특한 식감을 지니고 식이섬유와 수분이 많지만, 영양가는 거의 없고 칼로리도 낮단다. 버섯은 '숲의 청소부'로 생태계의 분해자, 공생자, 기생자로 분류할 수 있는 초목의 영양공급처다. 산책을 하면서 놈들한테 반하다보면 산행의 피로감과 일상의 찌꺼기를 잊게 하는 힐링산행의 첨병이라. 아름다움과 신비경에 취하는 시간이야말로 심신을 살찌우는 치유의 순간이요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그 희열을 맛보려 기꺼이 홀로산행을 즐긴다. 버섯과 버들치와 닥터피시를 선사한 옥녀봉 또한 사랑한다. 2024. 0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