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미도-소무의도 기행Ⅰ
1) 설흔한 명의 진혼곡 - 실미도의 파도
설레는 마음에 어제밤잠을 설쳤다. 내 고향사람들이 주축이 된 <불갑산악회>의 뜬금없는 초청을 받고, 더구나 행선지가 실미`무의도라서였다. 한 번도 참여한 적은 없지만 입소문 들어 카페에 낙서도 몇 번 올렸던 궁금한 모임이었다. 유 회장이 한참 후배라서 한 마을출신이면서도 어제 밤에 통성명한데다 실미도는 내가 평소에 가보고파 했던 곳이라 이래저래 달뜰 수밖에~!
사당 역1번 게이트에서 7;50분발차하는 버스는 인천대교를 건너 1시간쯤 후에 무의도에 들어섰다. 실미도 앞 유원지주차장을 찾아가는 동네 고샅길은 버스몸뚱이가 지나가기도 버거워 승용차와 조우하면 몸살을 앓아야 했다. 누군가가 ‘길 좀 넓히지?’라고 볼멘소릴 하자 다른 누군가가 ‘사유지가 많아서 못하고 있다’고 했다. 안 되는 일을 되게끔 하는 게 행정이고 정부일 것이다.
긴급사항도 아닌데 멀쩡한 청와대 놔두고 집무실 옮기려 몇 천억 아니 1조원 남짓 쓰게 생겼다면서 말이다. 썰물로 들어난 자갈모래 길을 밟으며 실미도 해안에 들어섰다. 밀물일 때 정말 실미도는 섬이 될까? 싶게 맹숭한 대로였다. 실미도를 처음 찾은 나는 그놈의 영화 땜에 궁금한 것이 하 많았었다. 관광객들이 엄청 찾는다는데 해안길은 없었다. 집체만한 바위와 돌무덤으로 이뤄진 해변은 인적냄새도 없었다.
흙 한 톨 안 보이는 바위 숲을 요령껏 바위건너 뛰기로 헤쳐 가는 게 실미도 트레킹 이었다. 매끄러운 바다이끼 걱정은 할 것 없어 다행이었다. 모진 파도가 맹렬히 씻어내는 통에 바위와 돌은 까칠까칠했다. 그나저나 이 크고 많은 바위`돌은 어디서부터 파도타기를 했을꼬? 바다란 놈이 얼마나 무서운 놈인지를 절감케 한다. 다행인 것은 파도란 놈들이 수억 년을 두고 빚은 천태만상의 바위얼굴과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에 잡생각이 안 난다는 거였다.
바위 얼굴 보러 바위 건너뛰기에 올인 하는 일념은 일상탈출의 행선(行禪)이요 힐링의 시간일 터였다. 내가 맨 선두인지 사람그림자도 없다. 살아 움직이는 건 초목뿐이다. 아니 이따금 바다 새가 창공을 날 긴 한다. 아니 저만치의 바위섬에 가마우지 커플이 사랑의 포퍼먼스를 즐기고 있다. 문득 저 커플이 세상에서 젤 행복한 부부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드넓은 창해와 해안의 모든 바위와 섬 산의 초목들이 지들 소유나 마찬가지 아니겠나! 연애 실컨 하다가 시장기나면 바다에 풍덩 헤엄쳐 고기를 낚는다. 저놈들도 무슨 걱정이 있을까? 무인도인 실미도가 지네들 요람인 것을~! 실미도가 한 때는 젊은 청년들의 꿈의 무대이기도 했었다. 북파 공작부대였던 대한민국 공군 684부대 대원31명이 훈련장으로 사용하면서 가난과 사회의 냉대에서 일탈할 꿈을 꿨었다.
684부대가 창설될 당시 실미도엔 부부와 아들2명의 1가구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아들 하나가 부대초소에 놀러가서 초병과 장난치다가 오발사고로 즉사한다. 군은 유가족에게 쌀 8가마를 주고 딴 곳에 이주하기로 합의 하여 3가족은 섬을 떠났다. 684부대만 남은 섬은 3년정도 존속한다. 684부대 이름은 1968년 4월 김신조 등 31명의 북괴 무장 게릴라들이 박정희 암살을 기도한 1.21사태의 '68년4월'에서 기인한다.
중앙정보부장 김형욱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키지도 안했는데 그에게 아부하느라 부하 이철희에게 김일성암살공작원을 만들 것을 사주했다. 그러자 육해공군이 충성경쟁 하듯 북파공작부대를 만들어 4개부대가 됐다. 그런 충성경쟁에 박대통령이 시큰둥하자 각 부대는 시들해져 방치되고, 가난하고 무식하고 친족도 없는 건강한 불량아들 31명을 뽑아 실미도에 북파공작부대를 창설했다.
북파공작이 성공하면 사회에 진출하여 공고한 지위와 부를 누릴 수 있다는 감언이설에 기꺼이 입소 맹훈련한 그들은 남북화해무드에 방향을 잃은 부대 운명과 함께 천덕꾸러기신세가 된다. 실의와 굶주림에 빠진 그들은 반란을 일으켜 실미도부대를 탈출 청와대를 향하다 군경의 저지에 막혀 유한양행 앞에서 수류탄 자폭하는데 4명이 살아남았다.
그 4명이 죽은 부대원들의 시신을 확인하였고, 그들 또한 군사재판으로 사형 당했다. 오호 통제라! 그 청년들은 뭣 땜에 개죽임 당했는가? 사리사욕에 빠진 고위층들의 충성경쟁이 원인이었다. 천인공노할 만행 후 반세기가 지났어도 창시 빠진 고위직들의 충성경쟁은 지금도 목하 진행 중이다. ‘X새끼’소리 들으면서도 아부하느라 머리숙인채 굽신대고, 'X새끼' '쪽팔린다'는 소릴 뱉고도 시침이 때는 자에게 용비어천가를 부른다.
냉정히 생각하면 그들을 뽑아 준 우리들 잘못이다. 누굴 ‘X새끼’라고 힐난하겠나? 해원(海原)에서 밀려온 잔잔한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며 울부짖는다. 설흔한 명의 원혼들이 절규하는 울부짖음 일수도 있겠다 싶고, 진혼곡일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실미도산허리를 넘으면서 영화에서 공작대원들이 어두컴컴한 숲길을 헤쳐 달리던 정경을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금의환향의 꿈에 부풀었었다.
그들 서른한 명의 원혼들이 지금도 실미도 어디선가 헤맬지도 모른다는 상념은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섬이었다. 근데 오늘 고향후배들이 안내를 해줬다. 거의 다 처음 뵈는 얼굴들인데 살갑고 훈훈했다. 고맙고 반가운 얼굴들 오래오래 기억 될 것이다. 영화<실미도>를 기억할라치면 오늘의 실미도 트레킹도, 후배들과의 한때도 소중한 앨범으로 남겠지. 그들의 건강과 <불갑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2022.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