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8) 밀라노 두오모에서의 사랑

peppuppy(깡쌤) 2022. 10. 11. 23:41

8) 밀라노 두오모에서의 사랑

▲두오모 전면과 후면▼

밀라노에서의 첫 밤을 숙면(熟眠)했다. 열흘 남짓의 여독 탓일까? 어제 밤 와인 맛에 살짝 현실 도피한 달뜸이었을까? 새벽트레킹도 없어 8시 반에 1층 카페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오늘은 지금껏 상상 속에서 그려봤던 두오모 대성당을 산책할 참이다. 두오모 대성당은 파크하얏트 호텔에서10여분 거리다. 호텔에서 30~40보쯤 발걸음 하여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사거리에 선다.

▲파크 하얏트 밀라노호텔 1층식당 뷔페로 간단한 아침식사▼

우측으로 난 유리천정 길 끝머리 아취 속에 죽순처럼 솟은 뾰쪽 탑들의 성당이 미니어처로 서있다. ‘두오모=성당’이니까 ‘두오모성당’은 틀린 말이다. 밀라노는 두오모 덕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두오모는 미쳐 헬 수 없을 인파를 유혹하고 또 그만한 인파를 사방팔방으로 시내에 밀어낸다. 두오모 없는 밀라노는 ‘고무줄 없는 빤쓰’행세가 될지도 모른다.

▲파크 하얏트에서 갤러리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사거리를 10분쯤 산책하면 두오모 대성당에 이른다▼

1386년 착공된 이 웅장한 고딕식 두오모는 건물외부에 창끝보다 더 날카로운 첨탑 3,159개가 하늘을 쑤실 듯싶고, 성모마리아와 12사도들의 조각상이 수호성인처럼 안치됐다. 해도 아직도 미완인지 비개를 세우고 공작이 한창인 미완의 성당인지 모른다. 스페인서 안토니 가우디가 1883년에 시작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 그가 죽었어도 지금 짓고 있듯이 말이다.

독일의 쾰른 대성당과 함께 세계 최고의 고딕 건물인 밀라노 두오모는 높이 157m, 폭 66m, 장랑의 길이가 82m 건축물로 1890년 준공됐지만 지금도 여전히 장인들의 손길에 역사를 이뤄가고 있다. 위대한 건축물은 완공이란 게 없다. 사람들의 정성과 혼의 손길로 끊임없이 다듬으며 역사를 써가는 것이다.

두오모 정면에서~! 서쪽편 정면부의 조각상건물은 나폴레옹황제의 명을 받은 명장의 솜씨라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청동기마상

두오모의 109m의 첨탑에 황금마리아 상이 있고 그 아래에 예수 그리스도의 유골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입구의 청동문의 ‘예수 태형’부조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서 기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52개의 열주가 늘어선 내부에 건축초기 작품인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화려함과 신비감을 자아낸다.

▲좀은 먼거리에서 촬영하여 유감인데 화강암벽을 장식한 헬 수 없을 명작들은 대충 일별하기만도 하루는 걸릴 테다▼

성당지붕으로 통한다는 254개의 계단 오르기는 입장권이 필요하다. 난 예매를 못해 아쉬웠다. 두오모 정면광장에 청동기마상이 있고 그 뒤에 나무그늘이 있어 땡볕을 피하면서 문득 두오모(피렌체)에 얽힌 러브스토리영화 <냉정과 열정사이>가 생각났다. 추억 속의 사랑을 놓지 않는 인생도 있다. 허무하다거나 자조적이라고 치부할 까닭은 더더욱 없다. 그래 사랑은 영원하다.

피렌체에서 유화복원 수련생인 쥰세이가 오래전의 연인 아오이가 밀라노에 있단 소식을듣고 찾아갔는데 그녀는 이미 딴 남자가 있어 냉정한 그녀를 쓰린 마음으로 안고 되돌아온다.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 온 쥰세이는 대학생일 때 열정을 태웠던 아오이의 근황을 듣고 그녀의 냉정한 변신을 안고 행복을 기원하는 마지막편지를 띄우면서 8년전의 풋풋한 약속을 생각한다.

그녀의 생일날 연인들의 성지로 회자되는 피렌체두오모에 같이 가기로 한 약속을~! 헛발길이란 걸 곱씹는 연인들이 두오모에 나타나고! 뜨겁게 포옹하고! 두오모는 영원을 약속하는 성지인가! 그렇게 오랜 세월의 헤어짐에도 두오모는 두 연인을 이심전심 이어졌었다. 멀리 떠나서 외로움을 느낄 때 생각나는 사람이 젤 사랑하는 사람이라. 때론 애틋한 방황도 청량제가 된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부왕의 뒤를 이어 입헌군주제 통치로 근대화를 이뤘다.10년 후 오스트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리발디 장군의 남이탈리아원정으로 이탈리아통일을 이뤄내 1861년 초대왕이 됐다. 1871년에 로마를 합병하여 통일을 완성 국부로 추앙 받는다

나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만나자는 약속을 하진 않았지만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누가 뭐라고 비웃어도 나는 그 풋풋한 추억을 아낀다. 천년을 버텨오는 두오모도 계속 보수하는데 내 인생에 아픈 기억쯤이야~! 저 광장의 인파속에 또 다른 쥰세이가 있고, 나와 비슷한 누군가가 서성댈지도 모른다. 아니 있을 것이다. 두오모니까! 그래서 두오모에서 기도하고 약속한다. 두오모는 지금 애틋한 연인들에게 사랑을 이어주고 있음이다.         2022. 10. 03

▲두오모는 1386~1577년에 지은 고딕양식의 대성당으로 1774년에 젤 높은 탑에 성모마리아 금동상을 세워 밀라노의 상징이 됐다▼
입장권 구매 줄서기, 나는 오후 딴 일정 탓에 옥상답사를 포기했다
▲두오모는 세계인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을 밀라노의 에너지원으로 차환시켜 주나 싶었다▼

인파가 우굴거리는 두오모광장에 느닷없이 군중들이 몰려달리며 함성이 울리고 경찰의 호르라기소리가 요란하여 데모를 하는 줄 알았다. 허나 그건 축구펜들의 경기 전의 응원떼몰이란 거였다. 그걸 축제란 듯 경찰은 길을 터주며 응원(?)하나 싶어 아이러니했다. 이탈리안인들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익히 아는 바지만 시내 번화가에서 경기 전에 세몰이 하는 건 상상이외였다. 

이 광적인 펜들의 군중심리를 보면서 세계2차대전 때 무솔리니의 파쇼정권에 대한 광기를 생각케 했다. 히틀러의 꼭두각시노릇 하다시피한 그를 추종하다 패색이 짙어지자 그와 정부 클라라 페타치를 체포하여 거리에서 처형 육시한 비극이 떠올랐다, 이탈리언들의 광적인 열정과 군중심리의 함수관계를 목도한 두오모광장 이었다. 

바늘 같은 털과 부드러운 털로 무장한 멧돼지의 반모(半毛)에서 밀라노란 이름의 기원이 됐단다. 털옷을 상품화하여 패션도시 밀라노가 유명세를  타게 한 브랜드로 아르마니, 돌체 & 가바나, 프라다, 베르사체, 발렌티노, 룩소티카 등 1만 2,000여 개의 기업이 번화가에 900개의 쇼룸과 6000여 판매점을 운영한단다. 밀라노가 세계패션의 메카가 된 소이다.

밀라노의 비아 몬테 나폴레온(Via Monte Napoleone)은 유럽에서 가장 비싼 거리로 평가된다. GDP면에서 런던과 파리에 이어 유럽연합 도시들 중 3위다.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젤 많이 눈에 띄는 건 담벼락의 그래피티였다. 피카소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봤다. 허나 낙서 같은 저마다의 표현들이 앙상블을 이뤄 형언할 수 없을 그래피티문화를 형성 유럽의 뒷골목과 후미진 담벼락을 대화의 창으로 차환시킨 발상이 문화의 한 장르로 숨쉬고 있다
밀라노 여순경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필자가 사진을 찍자 사진 찍어주겠다는 친절에 그만 잠시 데이트(?)를 하게 됐다 내 일생에 이방인 여성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한 컷의 기념사진을 남긴다는 거 획기적인 쾌거였다
▲파크 하얏트 밀라노1f 카페에서 티타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