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과의 동거 - 3주째
2010. 07. 20 화 - 첫 주째.
나의 지난 1주일은 삼성병원이란 어머니의 젖줄에서 갓 떨어진 어린애였다 할 것이다. 아내는 이유식 준비하기에 많은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 했고, 간질 맛이 없는 무미한 음식을 먹는 나는 어린애처럼 뭉그적대며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아내를 애타게 하는 거였다. 식단은 퇴원 시 병원에서 준 걸 참고하여 전복죽으로 극소량의 반찬을 곁들며 영양식을 한다고 고심한다지만 입맛까지 없어 먹는 즐거움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갓난애와 다른 점은 입맛이 없어도 그 무미한 음식들을 조금씩이나마 스스로 먹어치웠다는 점이다. 생뚱맞게 2/3를 잃은 위란 놈은 몇 숟갈의 음식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려는지 편치를 않고 아내의 권에 못 이겨 두어 수저 억지로 더 먹음 명치끝을 찌르는 거였다.
병원에서 준 내복약(소화제;베스자임, 역류성식도염;호이판정, 3주간치)의 효력인지 설사를 자주하고, 먹은 건 빈약한데 방귀는 독하며 잦고 변 색깔도 푸른빛 도는 노랑이라 애들의 똥과 별로 다르지 않다. 허나 (간식으로 먹는 유제품과는 상관없는지) 설사는 점점 줄다 무른 변을 하루에 한두 번으로 돌아서 안도를 한다. 나의 일과란 게 어린애가 먹고 놀다 울 듯, 2시간 터울로 요것저것 먹고 책 펴들고(잡생각에 정독도 안 됨) 놀다 운동을 한답시고 반시간 남짓 걷기연습(?) 하는 게다.
어떤 영양식도 쌈박한 밑반찬이 따르지 않곤 100%효험을 기대하지 말아야 함인가? 간질이 안 된 음식은 기대한 만큼 먹지를 못한다. 수술 후 첨으로 나왔던 계란찜과 생선도 맛있었는데 이젠 식상했다. 시원한 동치미국물맛과 우렁이된장국 맛에 그나마 먹었는데 이젠 먹는 량이 몇 숟갈 더해도 아무렇지도 않다. 일주간의 나의 생활은 이제 막 젖 떼려는 갓난애와 다를 바 없는, 먹기 싫어도 스스로 알아서 먹어치우는 가상함(?)이 애늙은이답다 할 수 있으리라. 서너 번씩 하던 설사도 자지러들어 엊그제부턴 한 번꼴로 자리 잡혀간다.
퇴원한 담날부턴 막내네 아파트단지를 반시간정도 걷다가 귀가해선 W대 캠퍼스를 한 시간가량 산책을 한다. 산책이 주는 가벼움이란 얼마나 상쾌한지 새삼 절감한다.
식사 때의 두어 숟갈의 불편한 포만감과 소화불량에 대한 걱정, 무더위의 불쾌지수, 불현듯 엄습하는 시름들을 산책은 털어주곤 했다. 무리하지 않는 산책은 몸도 마음도 가볍게 해줘 무거운 일상의 돌파구가 됐다. 산책후의 입맛도 기분도 새롭다.
2010. 07. 27 화 - 둘째 주.
생수 섞인 간장에 찍어먹는 대친 야채와 찐 생선들은 신물이 난다. 된장국, 고기장조림, 동침이 국물 등이 변덕스런 입맛을 그나마 붙들어주고 있다. 간질이 되지 않은 음식 먹기가 그리 고역인지를 전엔 미처 몰랐고, 그래 ‘맛없는 놈’이란 욕지걸이가 엄청 된욕일거란 생각도 해봤다.
‘사람이 맛이 갔다’는 소린 ‘사람답지를 않다’는 소리고 따라서 별 볼일 없다는 말이겠다.
사람취급도 못 받는 자가 목숨 붙어있다 해서 어디에 쓰겠는가? 하여 ‘맛’이란 단어는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삶을 품격 있게 해주는 활력소가 아니겠는가!
‘맛없는 놈’은 뇌사자와 다른 배 없으리라.
맛은 소금이다. 물 없이 못 살 듯이 소금 없이 살 수 있는 동물은 지구상에 없을 것이다. 인류에게 소금은 가장 고귀한 보물 이였고 생명 있는 모든 동물의 삶의 여정도 소금과 물을 찾는 데서 시작 됐다할 것이다. 그 소금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게 위암이다.
먹는 건만 빼곤 일상은 거의 수술 전으로 회귀 되가는가 싶다.
한 시간여의 걷기운동에 집안청소도 무리감이 들지 않는다. 죽도 진밥에 가깝고 반 공기이상을 든다.
퇴원환자의 식단은 병원에서 준 교과서 보단 환자자신의 식욕과 세심한 관찰이다. 어떤 새로운 걸 조금 먹고 이상이 없음 상식을, 다만 무리하지 않고 골고루 잘 씹기만 하면 훌륭한 식단일 것 같다.
유제품도 과하게 섭취안함 설사에 이르지 않는다. 무엇이든 조금씩 잘 씹어 먹어 불쾌감이 없다면 가릴 음식이 없다하겠다.
개복수술자위가 아물러가나 막 돋은 생살은 넘 연해 걸친 옷(부드러운)과 마찰을 일으키면 신경이 날 선다. 그 까칠한 느낌을 면하려 붕대를 덧대고 운동을 하게 되는데 문제는 집안에 있을 때도 웃통을 벗고 사는 맛에 빠져들었다는 게다. 그 생살이 며칠 새에 굳은살이 될 거란 어림이 없어 올 여름은 배에 빛나는 훈장(?)을 새긴 걸 자랑하며 반 나신으로 살아야 할 판이다.
673호실의 환우 - 베토벤선생, 이 장로님과 통화를 했다. 나보다 얼추 며칠 늦은 주말에 퇴원했다는데 두 분 다 기운이 없단 감이 들고, 베토벤샘은 입맛이 없어 죽을 맛이란다.
이제 서서히 입맛이 생길 거라고 나의 경험칙을 송화기에 실어 보냈는데 이 장로님의 쇠한 목소리가 여간 맘에 걸린다. 상태가 그리 좋은 느낌이 들질 안해서다. 그도 11일에 병원엘 간다니 그때 만나볼 수 있겠다 싶었다.
교감샘의 밝고 활기찬 음성이 반가움에 이어 날 기쁘게 했다. 가끔은 만나기 쉬운 가까운 곳에서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분들의 고매한 인격이 눈에 밟힌다.
아침에 하는 집안청소, 한 시간여의 걷기운동은 이제 거뜬하다. 운동(산책)후의 가벼운 몸 상태는 일과 중 최고로 자족한다. 서가에서 <한국단편문학선집>을 꺼내 다시 읽는다. 분량이 적어서 택했지만 고전(?)을 다시 대하는 맛은 넘 고소하다. 읽다가 낄낄대면 아낸 ‘뭐가 그리 재밋냐?’고 시큰둥할 때가 여러 번이였다.
장마 같지 않은 장마철 여름은 가뭄까지 모태 염천은 지글지글 끓는다. 올 나의 피서는 독서밖엔 뾰쪽 수가 없나보다. 집사람이 나의 이유식(?)마련과 때 때맞춰 챙겨주느라 이 혹서에 염장을 태운다. 암 중에서도 음식 잘 못 먹는 위암은 간병인을 더 힘들게 한다. 하여 아침에 만들어 놓으면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놀러갔다 오라고 채근을 해 면피를 해본다.
집사람 친구들은 누구하나 내가 위암투병중이란 사실을 모르기에 전화질이 간간하다. 나의 지인들도 마찬가지지만 알 때 알더라도 입 밖에 내지 말자고 우린 입단속 했었다.
주위에서 ‘건강해서 좋겠다.’고 시새움만 받다가 이게 무슨 남세스런 일이냐고 아낸 구시렁댄다. 건강이란 건 자만할 건 못된다. 제 몸을 세심하게 돌보고 지키는 자만이 건강을 챙길 수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2010. 08. 03 화.- 셋째 주.
맨밥, 쑥갯떡, 찰떡, 총각김치, 편육도 먹었으나 거부감이 없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씹고 적당하게 먹었느냐다.
하여 이젠 밥을 먹겠다고 주문하지만 아낸 전복을 비롯한 죽 재료가 아직 이라고, 여러 가지 재료를 버무린 죽이 더 영양이 있다고 며칠간 더 죽을 먹으란다.
죽은 쉽게 질리지만 밥은 평생을 두고 왜 질리지를 않는가?
집사람과 함라산엘 갔다. 한 달여 만인가 싶다. 산은 언제 찾아도 싱그럽다.
땡볕 내려쬐는 여름철엔 그 신선함을 뭐라 표현하랴! 짙푸른 녹색장원은 숲 터널을 만들고 터널 속을 삐집어 뚫는 햇살은 보석처럼 빛난다. 그 부신 보석을 안고 청량한 공기를 가르면서 심호흡을 해봐라.
녹색이파리에 뜯긴 하늘은 푸른 호수가 되어 근심일랑 모두 빨아드린다. 소나무 침엽이 뱉는 피톤치드에 샤워를 하며 숲의 고요를 탐닉해 봐라. 세상은 나 혼자뿐이다. 모든 걸 치유한다. 그 때만은 충일이다.
함라산은 그저 두서너 시간의 산책코스로 최적인 산이기에 지금의 내겐 안성맞춤이라 여겼다. 봉수대 아래서 되돌아섰다. 한 시간 반은 소요됐다. 무릎이 좀 시근둥 해진다. 환자이긴 한 모양이다.
매미가 열창을 한다. 5~8년간 내공들인 소린 청음이다. 그들 매미의 합창에 여름은 녹아들고 숲은 더 청량해진다.
벤치에 앉아서 이 순간을 만끽한다. 숲, 소나무, 햇빛보석, 하늘호수, 피톤치드, 매미의 청음, 한줄기 시선한 바람이 낭자한 이 여름을---.
날마다는 아니지만 이틀간격으론 찾으리라. 자연은 훌륭한 의사이다. 치유의 초보는 자연사랑에서 비롯됨일 거란 생각을 한다. 심신의 평안은, 건전한 충만은 암이란 친구를 극복해가는 제일의 조건일 테다.
내게 암세포가 있담 그놈은 지금 어디서얼마나한 똬리를 틀고 뭉그적대고 있을까?
여기서휴전하여 웅크리고 관망하자는 건가 세를 키우기 위한잠정적인 휴면기를 가자는 건가?
정말 암세포란 놈이 내 몸둥이 어디에 존잰 하고 있다는 걸까? 조족지혈에 새발의 피도 안되는,도대체 식별도 안되는 그놈은 73kg이나 되는 거대한 세포조직 덩어리를 노심초사하게 하고 있으니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난 퇴원시의 몸무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밥도 먹긴 한데 좀만 과하다싶으면 거부반응인지 구토증이 날것 같고 역겹다. 솔직히 밥맛이 없는 편이다. 시원한 동치미국물에 한 숟갈 말아먹음 싶은데 소화불량(많은 수분)될까봐 자제한다. 여름탓도 있다고 아낸 에둘러대니 꼭 암 때문만은 아니라고 자위한다.
어쩠던 암은 떨처버릴 수없는 인간의 동반자라 했다지~!더 이상 확전만 하지말고 오손도손 공존하자.
널 내 몸에 빌붙어 기생하게 하는 은혜를 저버려선 완되지! 그지? 제발 다소곳하게 지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