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 방사선치료 25일 [1]
2010. 08. 30.
pm2시에 예약한 임도훈교수와의 면담시간에 대기위해 9시반발 고속버스를 탔다.
면담 후 곧장 귀가할 요랑이였던 난 의외의 상황에 하룻밤을 묵어야만 했다. 9월7일부터 있을 방사선 치료를 위한 시물레이션을 하기위한 채혈과 CT촬영을 위해 엊밤9시 이후 금식을 했어야 했는데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로 내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나의 항의에, 까닭은 순전히 나의 편의를 도모하다보니 돌발상황이 된 거란다.
소인 즉 시물레이션은 통상 방사선치료 시작 3일 전에 실시함인데 원거리 지방에 살고 있는 내가 며칠 후 다시 오는 것보단 내일 중에 하기를 원한 땜이였다. 시물레이션[CT촬영]이란게 1시간여의 시간이 필요함에 병원스케줄을 살펴 시간을 활당받아야 하는 간단치 않은 문제여서 나의 막무가내식의 투정부림이 무척 송구했다.
내일 CT촬영시간도 오후2시20분에 가능하단다. 무안했다. 오늘의 소득이라면 며칠 후 다시 래원해야할 원거리 나들이를 내일로 앞당겼다는 점이다. 죽전 막내네 집으로 향했다.
2010. 08. 31.
오후 2시20분에 채혈과 예정된 CT촬영을 했다.
방사선치료를 위한 시물레이션이란 게 나의 복부에 점문신을 하고 그 점을 잇는 선을 그으니 밭田자의 그림이 그려졌다.
문제는 그 이후 간호사의 주의사항이 나를 당황스럽게 했다. 9월7일까지 목욕을 삼가하고 샤워를 하드라도 복부의 선이 지워지지 않도록 복부엔 물기가 닿지를 안해야 된다는 거다.
유별난 이 여름에 샤워를 1주간이나 하지않고 어찌 하란 말인가?
허나 내 스스로 원해서 오늘 시물레이션을 한 게니 어쩔순 없는 노릇이겠다. 궁리를 할 밖엔---.
엊밤부터 굶은 창잔 더 요란스레 오심증에 거시침까지 역류시킨다. 입맛은 소태맛이지만 주린 창자는 식성을 탐하는 멍충한 장기일 뿐인가?
아침에 마트에서 산 김밥을 꺼내 시장기를 달랬다. 그 김밥을 사면서 내 머리통도 멍충이 짓을 했었다.
시간이 촉박하여 e-마트에서 김밥과 찰떡 한 접시를 사고 우유(500mg)를 하나 산다는 게 서둘다보니 생크림을 집었던 게다. 계산대에서 결재를 하는 데 우유값이 3,990원이라. 놀래 항의를 했더니 우유가 아닌 생크림이란 게다.
반품교환을 하려니 이미 계산이 끝나 반품처리를 하고 재 구매를 해야 한다는 거여서 시간 없어 그대로 싸들고 왔였다.
이런 실수와 건망증은 비단 오늘뿐이 아닌 가끔 하는 난 어쩜 치매끼가 왔나 하고 스스로 놀래 당황하고 나이 먹었음에 자조한다.
고속버스에 올라 귀가하면서 남았던 김밥과 떡을 먹으며 요즘들어 이런 나의 잦은 실수가 투병에 이은 심신의 나약에 기인함일까 하고 생각해 봤다.
늙고 병든다는 건 인간의 필연코스겠지만 슬프고 비참한 현상이라! 그걸 어떻게해서 피하고 죽음에 이르는 길에 들건지는 평상의 수양에도 적잖이 영향받을 거란생각을 해 봤다.
2010. 09. 07
오늘 정오에 있을 채혈을 위해 엊밤 9시부터 금식을 했었는데 오후 2시 이지연교수 면담시 백혈구수치가 떨어져 항암치료 및 방사선치료를 이틀 연기하여 9일에 하자는 거다. 난 약간 당황스러웠다.
1차항암치료 이후 3주간의 공백기간 말쯤엔 음식도 잘 먹었고 운동도 열심하여 건강이 아주 좋아졌다고 스스로 자족하고 있었는데 부족한 혈액에 백혈구가 모자란다니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했다. 허나 어쩔건가?
의사의 지엄하신 진찰결과인 것을~.
집사람은 육류고기를 기피한 내 탓이라고 핀잔을 주고 애들은 어떻게 해서든 고기종류를 섭취하게 했어야 했다고 지 엄마를 탓한다.
더는 항암치료 중엔 굳이 단식을 하지않고 채혈을 해도 되는 것을 어제밤부터 쫄쫄 굶어 빈혈현상이 더한 거라고, 그걸 고지해 주지 않은 병원측을 원망하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허약해 짐일까? 다소 맥 풀렸다.
모든 치료는 자연 9/9일자로 순연시켰다.
오늘의 소득이라면 내가 1차항암치료 후유증, 이를테면 구강이 헐고 발가락까지 물집이 생기는 데다 음식먹기 역겨움 이전에 냄새 맡을 때부터 오심증이 도진다는, 그래서 항암치료 주사액의 농도(?)를 좀 더 어찌 할 수 없느냐?는 고통을 호소한 점이라면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2010. 09. 09.
정오쯤 채혈과 가슴X-선 촬영을 하고 오후 2시10분 외래진료실에서 항암주사를 맞은 후 2시간을 뜸들인 뒤 4시 반에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항암주사 후 2~4시간의 간격을 둠은 치료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란다.
방사선치료실은 6번방 이였는데 상의를 벗고 백색의 선형가속기(LINAC) 앞 좁고 긴 선반에 누워서 방사선의 집중조사를 받는 게 치료인가 싶었다.
물론 방사선치료는 방사선 담당선생들의 주밀한 도움 속에 진행되었지만 눈을 감고 있던 나는 5분여의 시간에 음악이 흘렀다는 것 외에 무엇도 느끼질 못했다.
어쩜 싱겁다면 싱거운 치료시간 이였다 하겠다. 방사선에 대한 두려운 선입관은 치료중이거나 치료 후의 예후가 부작용이 나서 였을테다.
좀 싱겁고 허방스러웠던 점은 내 복부의 점문신을 이은 '田자'의 선이 지워지지 않게 하려고 조심했던 샤워, 지워진 선을 다시 매직팬으로 그때마다 그었던 노심초사가 그렇게 애면글먼하지 않다도 될뻔 했다는 거였다.
복부에 새긴 점문신만 살아있음 됐고, 그 문신이란 게 쉽게 지워지질 않는 땜에 선의 중요성은 별로 였다는 점이다.
선은 없어도 됐을테다. 따라서 샤워를 하며 선 지워질까 고심 않아도 될 성싶었다.
8월말일에 촬영한 CT가 있고 점문신이 있으니 말이다.
오늘부터 4번의 항암치료가 오후 2시이후에 있고 방사선치료가 최소한 2시간이상 뜸들인 이후에 실시되기에 오후 한나절은 병원에 머물게 되겠다. 방사선치료는 25회 받아야 하니 한 달 이상 머물게 되고, 해서 솔로인 둘째집에 머물기로 했다.
서소문근방 브라운스톤에 살고있는 둘째집은 막내아파트 보다는 비좁고, 도심지대여서 소음과 공기가 불량하겠지만 아내가 편하게 지낼 수가 있어 선택함이다. 출가외인인 막내보단 솔로인 둘째가 편하다는 게다.
둘째네 근처엔 아침시장이 염천교부근에 상시 열리고 있어 좋고, 롯데마트도 5분거리며, 무엇보다도 둘째가 회원으로 있는 K-호텔 휘트니스클럽을 이용할 수 있다는 메리트에 아내가 홀딱한 탓이라.
둘째집에 단촐한 여장을 풀었다.
#. 10월14일 오전11시 이지연교수 면담예약 (면담 2시간 전에 혈액검사 및 폐기능검사를 한다)
#. 항암치료 일정 : 10일 오후2시30분. 13일 오후 2시. 14일 오후2시
#.방사선치료는 항암치료 후 2시간이 지나서 한다.
#.약 처방전
*헥사메탄액(구강청결제)6병, *조푸란정 8mg 2일분. *아레스탈정(지사제)1mg 5일분 30정.
*멕페란정(오신완화제)5mg 7일분 42정.
2010. 09. 13.
항암`방사선치료를 병행해선지 1차 항암치료 때보다 냄새 맡기와 오심증이 빨리 돋고 심하다. 1차 땐 4일째 되던 날부터 후유증이 왔는데 겨우 2일째 치료하고 오심구토증이 심해 죽을 맛이다.
오늘은 오후2시 항암주사를 맞으며 끝내 구토를 하고 말았다.
집안에서 음식요리 냄새는 물론 전철이용시 후덥메시꺼운 훈기가 정차할 때마다 출입구가 열리면 쓰나미처럼 밀려들어 속을 휘집어 놓다가 병원엘 들어서면 병원 특유의 소독냄새가 다시 폐와 창자를 뒤집었다.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주사실에 입실하여 얼음을 입에 넣고 진정을 시켜 보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간호사가 낌새를 알고 미리 비닐봉지를 챙겨줘 다행이었다. 구토라 해야 먹은 게 부실하여 토하는 건 쓴 위액과 거시침 이였다.
나만이 추잡을 떨고 있는가 싶어 미안하고 남새스러웠다. 허나 간호사 말인 즉 여기서 토하는 분들이 많다는 게다.
견디다 못해 치료 못 받겠다고 연기하는 분이 있고 때론 치료를 아예 단념하는 분도 있다는 게다. 어쩔 수가 없는 후유증이니 참고 이겨내야만 한다는 게다.
몇 번이면 마칠 수 있는 고통인데 조금도 심난해 하며 의기소침 한다거나 미안해 할 일이 아니란 게다. 친절하고 냉철한 간호사의 격려와 호의가 직업의식 이전의 따뜻한 인정일 것 같아 맘 찧했다.
2시간 후 6번 방사선치료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나의 치료실은 6번실로 정해졌다.
치료 전 접수창구에서 치료비 정산을 해야하는 데 1회 치료비가 56,660원이다. 방사선진료비(선택진료비12,750원 + 방사선치료비121,147원) 133,897원 중 본인 부담금인 것이다. 25일 방사선 치료비가 앞 서 위암 개복수술비에 맞먹을 것 같다.
치료 후 간호사께 나의 심한 오심증을 호소했고 간호사는 주치의 면담을 주선하여 고통을 털어놨다.
주치의는 모니터를 일별하다 나의 피도 대단히 맑고 건강상태도 양호하다며 지난 번 처방약보단 효과가 좋다는 오심증 약을 처방해 주겠단다.
하루 한 알씩 두 번 복용하라는 카이트릴 정1mg을 5일분치 10정을 처방 해줬는데 약국에서 약을 받아들고 약값에 놀랐다.
10정에 값이 141,480원이였다. 물론 내가 부담한 금액은 7,000원 이였지만 말이다. 평소에 약을 모르고 살아온 내게 좁쌀보다 약간 큰 흰 정제 하나가 14,000원을 호가하니 특효약 하나 개발하면 노다지가 생긴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것이다. 암환자들이 투병 중에 가장 힘들어 하는 건 역한 냄새와 오심증일 것 같다.
사실 그것만 아니라면 치료시의 어려움은 전혀 느끼질 못한 편이고 방사선치료 후의 피곤함 정도는 견딜 만한 것이라. 서울의 대기권이 오염 돼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투병 중인 내가 실감하는 서울의 공기는 썩었다고 감이 폭언을 하고 싶다.
내가 머물고 있는 서소문일대는 도심 중에 도심이어선지 맘껏 숨 쉴 틈바구니도 없다. 마지못해 숨 쉬어야 살 수가있어 참고 있을 뿐이다. 그실은 나도 건강했을 땐 그 역한 매연냄새를 모르고 활보했었다.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공기가 썩었는 데도 땅값이 비싼 것은 어리석은 인간의 아이러니다. 간혹 서울을 탈출하여 시골에 정착하는 사람들을 메스컴에서 접하게 되는 데 그들이 진정 삶을 즐기며 향유하는 사람이란 생각에 각성한다.
우선 둘째가 불쌍하게 여겨졌다. 도심에 거주하는 사람들 대게가 그럴테지만 목구멍(직장) 풀칠 땜일 거다. 그렇지않은 사람들은 미친, 아님 정신나간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빈둥대는 서울 사람들아!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탈서울하라! 상큼한 자연이 당신을 품을 것이다.
행정수도 이전을 단행했던 노짱은 그곳으로 이사하는 공무원들에게 천사노릇 함이다. 암소리 말고 빨리 보따리 쌀지어다.
2010. 09. 14.
나흘간의 항암치료가 끝났다. 이젠 줄창 20여회의 방사선치료를 위해 지옥(지하)철을 타고 2시간 동안 병원을 왕복하여야 한다.
마스크 속에 구멍 낸 커피펙을 포개서 집을 나서지만 지옥철 정차시 역한 메스꺼운 공기의 역습을 피할 순 없다.
심지어 천정에서 쏟는 에어컨의 찬공기 마져 열기에 휩싸여 구역질 날것 같아 싫다.
평소엔 맞지 못했던 냄새를 암이란 놈은 기가 막히게 감별 하나보다. 난 요리할 땐 아예 집을 나선다. 매연덩이 서소문공기가 그래도 집안 음식냄새 보단 낫다. 집사람은 임산부의 고통이 바로 그걸 거라고 했다.
해서 난 아내가 33년 전 둘째의 뇌막염으로 해서 파티마병원에서 한 달간 간병생활 했던 기억을 더듬다가 그때의 고통을 다시 얘기해 보라고 청했다.
둘째는 뇌막염으로 돐을 병원에서 맞았다. 24시간 주사바늘을 꽂고 있는 갓난애를 지키기 위해선 아내는 화장실도 참아야 했었다는 데 설상가상으로 임신이 시작 돼 입덧이 한창 이였단다.
속알머리 없던 난 돈 벌어 온다고 하루 걸러(병원과 집은 20여km 거리였다)밤에 문병하듯 코빼기만 살짝 내밀곤했으니 아내의 고통을 알 턱이 없었다.
그땐 가난했던 시기라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참아야 했을 터고, 아니더라도 병원비 걱정에 먹고 싶은 걸 사오라고 주문할 잘난(?) 아내도 아니다. 숟제 굶다시피 하며 한달동안 잠 설치고 더는 역한 병원공기 숨 쉬며 살았을 인고의 쓰라린 시간을 다시 듣다 난 목이 메였다.
아내는 위대하다. 아니, 이땅의 어머니는 모두가 위대하다.
남자더러 입덧과 산고고통의 열달을 살아내라면 고개 절래절래 흔들고 도망치려 할지 모른다. 어떤 냄새도 속을 뒤집혀대는 입덧은 겪은자만이 알 수 있을 테다.
그 아내가 지금 나의 간병인 노릇 하느라 노심초사다. 그래 난 행복하다. 하여 33년 전 아내의 고통을 눈치도 못 챘던 둔치멍충이였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지금의 나의 고통은 그때의 아내의 고통에 비하면 사치일 것 같다.
모든 경험은 훌륭한 스승이다.
2010. 09. 15.
방사선치료 후 임도훈교수와의 면담이 있었다. 치료상태가 아주 좋단다. 건강도 양호하고-.
냄새 맡기와 오심증에 대한 고통을 호소하자 약 처방을 다시 해 주면 어떻겠느냐?고 묻기에 엊그제 주치의께서 카이트릴정을 처방해줘 복용 중인데 별 신통함을 못느낀다며 약 복용을 안하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었다.
"그럼 그 약을 남겨 기념으로 보관하시게요?" 임교수는 시덥잖은 나의 시건방이 다소 가소롭다는 듯 쏘아댄다.
"아닙니다. 그나 치료경과는 좋습니까?" 나는 게면쩍음을 모면하려고 화제를 바꾸려다
"경과라니요. 어떤 경과말입니가?"라고 역습을 당했다.
"일테면 암세포가 거의 소멸 됐다던지---" 라고 자신 없는 얼머부림에
"암세포는 없습니다. 있는 건 수술로 이미 다 제거 됐지요. 지금 치료하는 건 만에 하나 재발할까봐 예방적 차원의 치료를 하는 거지요." 임교수는 자신있게 나의 의구심을 뭉게고 있었다.
이렇게라도 치료를 하는 게 안하는 것보단 재발확률이 높아서지만 백프로 완치는 아직이라는 게다. 운 나쁘면 치료를 했다도 재발병할 수도 있다는 거였다. 몇 프로라는 건 통계수치일 뿐이라는 게다. 그 수치를 줄이기 위해 모두가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임교수는 설명을 하고 있었다.
임교순 인상이 수려한만큼 친절 자상했다. 그는 매주 목요일 면담시간을 갖을 테니 어려운 점은 기탄없이 얘기하란다.
완치를 기 할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 목매달고 이 고통을 감수해야 함은 어쩜 억울하단 생각이 지폈다. 허나 진짜 억울한 것은 치료를 완벽하게 받았는데도 재수 없게시리 재발병하는 사람일 게다.
운명은 재천이란 말로 그 억울함을 감내할 수 밖엔 없는 걸까?
의사들의 책무가 막중한 이유다. 진짜 히포크라데스의 후예들로 나서야 함일 것이다.
2010.09. 16.
방사선치료를 받기위해 대기실에 머물다 창원이 집이라는 41세의 윤**라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나보다 3일정도 후배인 셈인데 나의 병세와 거의 비슷했다. 다만 수술시 위를 완전 제거했다는 점을 빼곤 -.
투병 하느라 빼빼말랐는지, 아님 본시 깡마른 체구였던지 모르겠으나 너무 갸날퍼 보였고, 핼쓱한 얼굴에 삭발로 모자를 쓰고 있어 동병상린하는 나의 마음을 애처럽게 했다.
그런 암환자가 비단 그녀뿐이 아니겠지만 오늘 그녀로부터 들어 귀담아 두고 싶은 건 서울에 마땅한 숙식처가 없는 지방출신 환자들에겐 그녀의 임시 숙박처가 괜찮겠다는 생각을 함이였다.
그녀의 숙식처는 병원이라는 간판을 달고 환자치료가 아닌 환자들을 숙박시키며 치료병원까지 출퇴근 시켜주는 역할만 한단다.
하루 숙박비가 4만원이니 비싼 것도 아니어 좋고, 더는 숙박객 모두가(암)환자들이어 정보교환에 동료의식까지 돈독해져 어떤 소외감도 느끼질 않아 좋다는 거였다. 더구나 승합차로 교통편의까지 제공하고 있다니 지방출신의 환자들에겐 고민하나 덜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간식은 별도로 각자 해결 하든지 맘에 맞는 사람끼리 거출하여 공동구매로 해결한다고 했다. 참 별난 병원-숙박처가 있다. 서울은 서울인가 싶었다. 환자들 편의를 도모하며 병원에 모셔가서 치료받게 하고 있으니 병원은 병원인 것이다.
암병동에서 수소문 하면 그 병원에 대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어 찾을 수가 있단다.
병원에 기생하여 먹고사는 병원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호명받고 치료하고 나오니 그녀가 없어 기다릴까 하다가 그냥 귀가했다. 담에 만나면 동행하여 방문해 보고 싶다.
2010. 09. 17.
다음 주 월요일(20) 치료 이후 추석연휴로 쉬는 공백이 많아 휴무인 토요일에 치료를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추석 때 3일을 쉬고 금`토(24.25)요일에 치료를 하자고 하여 난 얼시구나 응했다. 우선 하루라도 잎당겨 치료를 끝낼 수있어서 좋았다.
항암치료 끝난지가 3일짼데 오심과 냄새 거부반응은 여전하다. 시원한 콩나물국과 계란찜, 동치미국물이 소태맛인 음식을 그나마 목구멍을 넘기게 한다. 유제품은 설사를 동반하여 판이다.
누군가는 그랬다. '토하드래도 먹어라'고.
토하고 설사를 하드라도 억지껏 음식을 목구명에 집어넣어야 한단다.
먹어야 이겨낼 수 있음은 진리다. 체력의 뒷바침 없인 어떤 일도 해낼 수가 없겠다.
추석땐 여기서 나기로 했다. 덩치 큰 집이 어떤 꼴일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병은 일순간에 삶의 패턴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린다. 착잡하다. 아낸 어떤 내색도 않겠다는 낌새다.
미안하다.
2010. 09. 21.
종일 억세게 비가 내리고 있다. 서울 서북지역과 인천근방엔 집중폭우가 쏟아져 물난리가 났다고 메스컴은 아우성이다.
추석빔을 해야할 텐데 수마의 위협에 속수무책일 수해지구의 사람들 모습이 안타깝다.
서소문일댄 아침부터 10시경까진 빗발이 내리질 않했다. 아침일찍 아내와 둘째를 따라 휘트니스크럽에 들어 샤워를 하고 수영을 하느라, 한 시간여를 지체한 아내와 둘째를 기다리느라, 난 인내심을 길러야 했다.
아내가 이렇게 만용을 부린 건 모처럼 극히 간소하게 추석차례를 지내도 된다는, 명절증후군에서의 해방 됐음을 즐기는 셈일 테다. 과일과 나물 두어가지에 송편 몇 십개를 빚어 차례를 지내자고 입을 맞춘 우리 세 식구였다.
하여 크럽에서 나와 커피 한잔의 낭만을 맛보자고 스타벅스를 찾아 들었다. 각기 다른 커피를 시켜 음미하면서 모처럼 한가한 명절 전날을 보내는 아내의 표정은 여간 기분좋아 보였다.
잿빛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지겹던 여름을 쫓아내려는듯 어둠까지 동반하고 있다.
쫓겨나는 폭염이 초록이파리를 훑으며 울고 있고 구름은 이내 빗발로 여름이 떠난 자릴 훔치고 있다. 포도를 씻어 흐르는 빗물은 어디로 갈까? 우린 그걸, 계절의 사잇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미션에 몰입하고 있었던가?
그때사 아낸 걱정 한 마딜 푸념처럼 뱉고 있었다. 나물거리 시장을 봐야 한다고~!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기다리는 장소로 텅 빈 스타벅스 안의 안락의자는 안성마춤 이였다.
비가 그치질 않기를 바랬던 나의 기다림은 어떤 거 였을까!
그렇게나 바빳을까. 누군가는 신문지 한장을 머리에 얹고 빗속을 띔질한다. 계절의 사잇길을 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