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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여정

나를 찾아가는 여정

페루 무지개산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반추해보는 시간은 고귀하다. 그 시간의 연장선상에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짐짓 아름답다 할 것이다. 집을 떠나 미지를 향하는 온몸여행 말고도, 메스컴을 통한 간접여행에서 나를 반추하는 여정의 시간은 널려있다. 나는 정치인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신문을 들면 정치면부터 훑는 이중성에 씁쓸해한다.

 

그럴 것은 정치란 게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상상외로 커서일 테다. 정치인을 경원하면서도 투표엔 꼬박꼬박 참여하는 건 이번엔 뭔가 좀 변화하지 않을까하는 기대 탓이다. 나는 요즘 연일 매스컴을 도배질하는 조국교수를 존경한다. 법무장관청문회에 앞선 각종매스컴의 조교수신상 털기에 접하면서 일희일비를 떠나 측은지심에 회의까지 솟구친다.

 

그가 분통하리만치 난도질당하면서도 사퇴압력에 굴하지 않는 건 법무환경을 일신해 보겠다는 신념 땜이란다. 사실 나는 조교수가 경도 된 우리의 검경문화를 혁신할 적임자라고 믿어 더더욱 사랑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딸애로 해서 들어나는 의혹을 접하면서, 온갖 사생활까지 들쑤셔 알몸이 되면서도 법무장관에 취임하여 소신을 펼 수 있을까?여서다.

새로티나벚나무의 버찌

그게 성공한단들 상처 입은 가족의 마음치유는 어떻게 할 것인가? 대의를 위한 가족의 상처쯤은 감내할 만하다고 배짱부리는 걸까? 라는 회의적인 시선으로 쪼잔한 나를 반추해 보는 거였다. 사실 나는 집사람의 지적처럼 협량이어서 애당초 공인될 위인도 아니기에 입바른 소리로 사생활이니 행복론이니 하며 조잘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떻든 간에 그럴 소지도, 걱정도 없는 지금의 나의 삶이 행복하다. 그토록 선망하던 조교수의 민낯(?)을 목도하면서 내가 얼마나 편안하고 걱정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를 절감하고 있음이다. 행복이란 건 단순한 삶일수록 향유하기 쉬운 열락이다. 욕심 하나, 소유물 하나를 내려놓을 때 행복도 그 버리는 만큼 얻을 수 있다는 알아챌 수 있었다.

 

요새 연일 가을장마가 계속된다. 커다란 건물을 소유하며 관리한다는 게 얼마나한 고민덩이였던가? 애들이 서울서 학교엘 다닐 때 우리부부는 상경하여 명절을 맞던 어느 해 추석당일, 뜬금없이 세든 식당주인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 천정에서 물이 새어 떨어지고 있다는 거였다. 추석연휴라 수리해 줄 업자도 없으니 건물주가 해결해줘야 한다는 거였다.

 

맞는 말이다. 허나 낸들 뾰쪽한 수가 있을 리 없다. 근다고 그냥 뭉갤 일도 아니어서 곧바로 귀가했다. 현장에서 떨어지는 누수라도 받아내는 일을 거들어야 도리일 것 같아서였다. 추석을 그렇게 착잡하게 보냈던, 남 보기엔 부러웠을 빌딩주인 이였다. 어디 그것뿐이었나. 세놓고, 수리하고 등등 삼십년을 건물의 노예처럼 살았다. 덩치 큰 건물이나 집 소유한 부자가 부럽기보단 심난스러워 보인다. 

 

돈 땜이었다? 허나 꼭 그것만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욕심과 주위를 바라보는 비교우위의 망상이 불행의 원인이었다. 며칠 있으면 추석이다. 추석엔 그때의 식당주인얼굴이 떠오르곤 한다. 둘째가 금년추석을 대만에서 맞자고 예약해 놨다. '여행을 떠나고 나서야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도 시작된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언제 어느 때나 떠날 수 있다는 몸가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행운아다.

 

글고 그 여행에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 시간도 있었다면 행복한 여행이리라. 홀가분한 삶이 주는 행복! 생전의 법정스님은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난화분이 외출 시에 맘에 걸려 자유스럽지 못했다고 했다. 집착거리가 없는 삶 - 무소유의 삶에서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향유할 수 있음이렸다. 2019. 09

#사진은 안산숲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