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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트레킹의 요람 옥산저수지와 청암산

트레킹의 요람 옥산저수지와 청암산

겨울갈대도 깨를 벗는가? 아니 갈대밭이 삭발을 했다고 해야 옳다. 비쩍 마른 몸을 헤지고 누런 가사로 겨울을 나느라 머리까지 하얘 진, 한파에 백발 흩날리는 겨울갈대가 깨를 벗다니? 놈들의 시적인 서정이, 정한이 얼마나 울들의 맘을 붙잡는데 중머리 삭발을 시켰을꼬?

-옥산저수지-

봄날에 튼실한 새순의 갈대 싹을 기대함인지는 모르겠으나 옥산저수지보의 갈대밭은 무참히도 대머리가 됐다. 보기 안 좋고 짠하단 생각은 무성한 갈대의 다음세대를 위한 거라면 삭혀야만 한다. 저수지물도 가뭄 탓인지 젖가슴께 까지 알몸을 들어내 놨다.

-옥산저수지보 우측이 대머리된 갈대밭-

옥산저수지수변길은 작년여름에 더듬어 본 타러 오늘은 저수지를 품에 안고 있는 청암산트레킹에 나섰다. 옥산저수지보 우측 수변로 입구에 곧장 산으로 오르는 좁은 계단을 밟는다. 몇십년 된 육송들이 산재한 완만한 경사길은 이내 능선에 올라타 탁 터진 사위를 조망케 한다.

파아란하늘은 새털구름 한 점도 없고 지평선은 안개로 버무린 체 태양빛살은 대지를 달궈 아지랑이에 가두고 있다. 아지랑이 지피우고 있는 저기가 회현면일대일까? 트레킹하기 참으로 좋은 날씨다. 좌측에 푸른 옥산호수가 그림 같. 옥산(玉山)의 한자 '구슬'''을 한글로 풀어쓴 '구슬을 꿰놓은, 엮어 놓은듯하다'는 뜻이라 한다.

그 푸른 구슬산이 '청암(靑岩)산이다. 푸른 구슬을 꿰맨 산자락에 물을 가둬 호수를 만든 게 1939년이고 1963년부턴 상수원보호구역이 돼 사람의 접근을 막았기에 원시에 근접한 청정지역이 됐다. 푸른 옥산저수지가 파란하늘을 안아 더 새초롬하게 짙푸르다. 솔밭구릉 길은 걷는만큼 사위의 알싸한 풍경들과 숨바꼭질 하게 한다.

아지랑이 속에 질펀하게 펼처진 들녘은 기름진 옥구들판일 것이다. 거기서 좀 남쪽으론 동진강이 몸을 푸는 서해바다일진데~? 하얀 각설탕을 포개놓은 듯한 시가지 한 구석이 들녘 끝에 아른댄다. 구릉 속에 오뚝한 청암산정 정자에 올랐다. 이정표엔 아까 저수지입구까지가 2.5km란다. 옥구평야와 만경강하류, 금성산릉이 아슴하다.

옥산저수지와 청암산 생태계는 2008년 출입제한 빗장을 풀기까지 45년간 원시를 향했기에 다양한 식생들이 공존하여 멋진 치유의 숲을 이뤘다. 청암산능선을 산행하다보면 군데군데서 수변로와 구불길과 엮인다. 능선산행길이 단조롭다고 여길 땐 구불길로, 구불길이 지겹다고 느낄 땐 수변로에 들어 드넓은 호수에 가슴 확 벌릴 수가 있다.

트레일러 맘 꼴리는 대로, 미친개처럼 까불고 나대도 청암산과 옥산저수질 뱅뱅 돈다는, 깊은 산속에서의 미아신세될 걱정 안해도, 기껏 군산시외각 청암야산에 있단 점이다. 9시반 넘어 시작한 청암산능선트레킹은 정오를 갓 넘어 들머리인 저수지보에 닿았다. 빡센 트레킹이 아닌 탓인지 친구가 미적미적댔다.

이번엔 우리 수변로트레킹을 하자는 거였다. 끼니는 수변로에서 때우자는 게다. 난 흔쾌히 앞장섰다. 수변로트레킹은 아까완 반대편 수문보에서 시작했다. 파아란하늘 탓일까? 호수는 청옥빛이다. 남청색에 초록빛을 안은 호수엔 햇살이 넘실대며 은비늘 옷을 입고 있다. 싸한 바람이 은비늘을 스칠때면 파장은 잔잔한 여울이 된다. 먼 산의 그림자가 춤을 춘다.

마지막 남은 낙엽이 앙상한 가지에서 바르르 떨고 있다. 조붓한 수변길은 꼬불꼬불 그 풍정을 따라가고 있는 거였다. 오후 1시가 훨씬 넘었다. 구불구불길을 벗어나 호수면 모래사장으로 튀어나왔다. 한 떼의 갈대가 후미진 곳에 터를 잡았는데 우린 무뢰한이 되어 그들을 깔아뭉개며 휴식을 취했다. 시장기를 때운다. 싸한 바람 한 절이 갈대머릴 간지럽힌다.

사스락대는 갈대가 하얀머릴 풀어 파란하늘무대에 소굿춤향연을 벌리고 있다. 나는 갈대를 침구인 듯 깔고 누워 파란하늘무대의 갈대춤사윌 구경하고 있다. 얼마나 흐뭇한 찰나의 연속이냐~! 그 정한은 두고두고 오랫동안 내 추억창고에서 나를 살찌울 것이다. 오늘 이 트레킹을 제안한 친구를 그 추억창고에 끼워 넣는다.

호수바람이 일렁인다. 물비늘이 밀려와 한껏 제잘거린 거품을 모래밭에 내려놓곤 소멸한다. 거품엔 무슨 사연이 있을까? 모래밭 들어내기 전의 만수위일적의 풍요를 회억하는 그리움일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봤다. 수변로를 삼킬 듯이 넘실댄 호수는 왕버들나무를 품어 환장하게 멋진 그림을 그리고, 연푸른 마름군락아래에 온갖 생물들의 천국을 마련했었다. 그 푸르른 낙원에서 원앙과 말똥가리가 짝을 지으며 고라니와 너구리가 눈싸움을 하던 유토피아얘기 말이다.

난 지난여름 호숫가 여기 수변로를 어슬렁거리며 그런 정경들을 엿보았던 것이다. 우린 일어섰다. 숨털까지 죄다 들어난 왕버들 뿌리의 인고가 안쓰러운, 말라버린 누우런가을이 박제마냥 붙어있는 겨울나무숲에 싸한 한파만이 맴도는 호숫가의 텅 빈 벤치가 우릴 마중 나와있다. 그런 한갓진 수변로를 온갖 한량노릇 하며 즐기는 거였다.

대나무숲바람에 마음을 다잡고 앉아 해질녘까지 뭉그적대고 싶은, 낙조는 호수에 어떤 얘길 쏟아부을지를 보고싶기도 했다. 호수가 찰랑찰랑 넘실대는 여름날의 석양에 대나무숲의 속삭임까지 들어야지~! 아까 대머리 갈대밭 옥산보에 회귀했다

청암산행길12km, 수변로를14km남짓 걸었을 테다. 벌써 오후3시반이 지났다. 군산시민은 행복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만한 트레킹코스를, 힐링처를 가까이 두고 살아간다는 건 아무 도회인이나 거느릴 순 없어서다. 하긴 나도 반시간쯤이면 올 수 있는 청암산이라.

2017. 02. 18

-박제된 가을-

-옥산저수지(군산호수)수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