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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눈밭의 깨 벗은 겨울태백산

눈밭의 깨 벗은 겨울태백산의 정한 

토욜(11)태백산은 영하10, 체감온도는20쯤 될 거라고 예보했다. 내 머릿속엔 상고대아트페어가 파노라마 쳤다. 10시 넘어서 유일사주차장 눈밭에 내렸는데 하얀눈밭을 산님들이 울긋불긋 도배질 했다.

산릉을 기웃대는 햇빛이 밤새 한파에 멍든 시푸른 하늘얼룩을 씻어 냈나보다. 깨 홀랑 벗은 삼나무숲이 푸른 하늘을 치받고 있다. 깨 벗은 초목들 사이로 요란스레 차린 산님들의 행군은 몬도가네식 파격이다. 여덟 살짜리 꼬마도 아빨 따라 그 기이한 풍정에 끼였다. 유일사쉼터에선 화방재에서 오는 산님들과 합세가 되어 내 앞엔 나무보다 산님들이 더 많다.

-아빠를 따르는 8살꼬마, "산 좋아하시는 아빨 둬 넌 좋겠다?"라고 말을 건냈는데 묵묵부답인 꼬맹이의 시무룩한 표정에 안절부절했다. 그래도 아빤 내게 미솔 건내줬다. 

장군봉 오르는 길목은 사람이 만든 비단구렁이다. 비단이무기도 이렇게 느려선 승천하긴 애초 글러먹었지 싶다. 눈밭의 외길을 독차지한 비단구렁이 탓에 옴짝달싹 못하고 뱀 몸통불리기하다 마중 나온 주목 따라붙어 탈피했다.   상고대도 시원찮다. 눈꽃은커녕 뼈대만 앙상한 고사한 놈이 부지기수다. 쨍한 햇살과 시퍼런 하늘이 고뇌하는 주목의 몸살을 엿보게 한다. 주목은 몸부림친다.

지구온난화 땜이다(울나라 고산지대 주목의 사인(死因)을 조사한 산림청보고). 겨울엔 많은 적설로 뿌릴 보호하고 그 눈이 봄엔 녹아 충분한 해갈을 해야 함인데 갈수록 적설량이 적어서란. 설상가상으로 산님들마저 이맘땐 극성을 부려 주목을 몸살 나게 하는 거란다. 이젠 저기 천제단에서 기설제(祈雪祭)라도 지내며 눈 많이 내려달라고 제사를 지내야 할 판이지 싶다.

풍진 세상에 순응하려 홀라당 깨 벗는 나무들 가운데 의연히 버티고 서서 매서운 한파에 몸 비틀고, 무거운 눈발 보듬느라 꼬부라지고 훼훼 휘면서 천년을 사는 주목은 특별나다. 놈은 숨이 끊어져야 비로써 깨 벗는다. 가죽 한 꺼풀씩 벗어 세월을 낚으면서 형형한 뼈대로 다시 천년을 산다. 우리가 놈의 삶에 홀딱 반하는 이유다. 산님들이 주목과 사진 찍느라 별 포퍼먼스 짓을 다한다. 놈을 성가시게 하고있단 걸 알아야 한다.

장군봉과 천제단은 인산인해다. 하늘에서 보면 울긋불긋 겨울꽃이 이렇게 만발한 곳이 있을까? 싶을 테다. 오후1, 천제단 저만치서 육포로 끼닐 때우며 20여분남짓 문수봉동행 할 L, 탑마루님 누구 한 분이라도 마주치길 바랬는데 눈에 띄질 안했다. 오늘도 여지없는 홀로산행이 맘에 걸리긴 했지만 문수봉을 향했다.

-천제단에서 인증샷하러 줄 서 있는 산님들-

맛보기상고대에 배고픈 나는 문수봉이라도 찾아 문수보살족적이라도 밟아보고 싶었다. 부쇠봉을 향한다. 저만치 아래엔 단종비각과 망경사가 있다. 왕위를 삼촌한테 빼앗기고 산릉 넘어 영월 청령포(淸怜浦)에서 열여섯 살에 죽은 단종의 고혼이 간헐적으로 우는 바람소리 같다. 바람소리가 관목을 맴돌며 지는 상고대를 눈물짓게 한다.

-천제단에서 조망한 부쇠, 문수봉능선, 그 많던 산님들은 사라지고 호젓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 관목들의 자태는 하나하나가 그림이다. 화선지위에 앙상한 겨울나무의 민낯은 민망하리만치 아름답다. 깨 벗은 놈들의 나체시위를 나 홀로 완상하는 재민 여간 쏠쏠하다. 문수보살도 이 재미에 빠져 이 능선을 밟았을지 모른다. 글고 자장율사는 그런 문수보살의 행장을 알현하고픈 꿈에 부풀어 저기 우듬지에서 몇날며칠을 눈 부릅뜨고 기다리고 있었을 테다.

-뉘 눈치 안보고도 카타르시즘 만끽할 수 있는 문수봉을 향한 호젓한 관목숲의 눈길-

완만한 고개를 오르니 느닷없는 바위덩이들이 무작위로 깔렸다. 거지행색을 한 문수보살은 삼태기에 개새끼 한 마리를 넣어 성큼성큼 바윗돌징검다릴 밟고 있었다. 자장율사는 이 험산에 거지가 쫌 괴이하긴 했지만 그냥 못 본첼 했다. 올 때가 됐는데? 아니 어쩜 지나쳤음직도 한데? 거지를 본지 한참 후에 자장율사는 무릎을 치며 대성통곡한다. 다시 되돌아 오시려나,  이놈 생각해서라도 오시겠지?

-산님 한 분이 자장율사마냥 부쇠봉을 주시하고 있다-

 달포가 지나도 소식이 없자 돌 몇 개를 쌓아놓고 하산하여 함백산정암사에 머물렀는데 꿈에 문수보살이 다시 여기에 나타나자 저 아래에 암자를 짓고 기다렸으니 망경사라. 리고 돌멩이 쌓아놓은 우듬지가 문수봉(1517m)이다. 문수봉에 올라서서 툭 터진 사위를 조망한다. 문수보살은 탑 어느 쪽 바윗덩일 밟고 갔을까? 자장율사가 대성통곡하며 주저앉은 바위덩인 어느 것일까?

당골로 하산한다. 적설량이 많다. 주목과 거제수와 가문비나무의 위용에 압도당하는 골짝이다. 가문비나무에 걸린 파란하늘이 마음 아릴만큼 청명하다. 열여섯 살에 원통하게 죽은 단종의 순수함이 녹았지 싶다. 구천을 헤매던 단종의 고혼은 망경사 박묵암스님에 의해 이 골짝 사당에 안주하게 된다. 탄허스님이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라고 쓴 비각을 세워 제(;9/3)를 올리고 있다.

열한 살에 보위에 오르자마자 단종은 열대여섯 살짜리 숫처녀총각 여섯 명의 목숨을 살려냈다. 궁중에서 심부름하는 궁녀 3명과 어린별감 3명이 그룹미팅을 하려다 의금부에 발각돼 부대시(不待時)참형에 처해질 판인데, 단종의 1등급감형이란 특명에 의해 목숨을 부지하였던 것이다. 궁녀는 왕과 세자이외의 남자와 연애질을 하면 남녀모두 사형이란 서슬퍼런 국법이 있었다.

열대여섯 살의 또래들을 살려준 단종은 왕위까지 삼촌한테 양위하고 열여섯 살에 삼촌 손에 죽임 당했다. 애먼 두 사람이 죽고, 열여덟 명이 감옥 갔어도 자기는 떳떳하다고 버티는 박근혜도 있다. 아무 잘 못 없는 열여섯 살짜리 단종도 버리는 왕위를, 회갑 넘긴 여자가, 어차피 열달 후엔 내 놓을 자릴 빼앗길까봐 - 탐욕의 극치다.

지 탐욕이 나라를 위해서라고 괴변을 늘어놓는 박근혜가 태백산을 올라 천제단에서 진정한 애국행위가 뭔지를 깨우쳐야한다. 골짝을 빠져나올 쯤 땅을 향해 가로로 뻗는 주목이 새로로 하늘을 치닫는 삼나무에 파란하늘과 기름진 땅을 내 주고 있다. 나무도 제 설 자릴 다 알고 있는데 미련한 우린 고집투성이다. 정말로 미치고 환장할 일은 똑똑하고 부자란 사람들이 염치가 없단 거다.

더는 이 사실이 지속될지 모른단 불안이 우릴 슬프게 한다. 탑마루가 깨 벗은 겨울태백산에, 문수봉에 나를 서게 해줘 고마웠다. 한가지 갱킨 건 나 땜에 나선 상고대산행이 맛보기로 끝난 일행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젠 상고대산행은 마무리할 시점일까? 밤의 한기가 많이 누구러진 귀로였다.                                    2017. 02. 11

-화방재산님들과 합세하는 유일사쉼터, 예서부턴 비단뱀신세를 면치 못한다-

-주목뒤로 아스라이 함백산이지 싶다-

 

-장군봉에서 본 멀리 강원랜드 하이원스키장?-

-스키장을 품은 백운산, 백두대간위용이 인상적이다-

-부쇠봉능선길의 맛뵈기 상고대-

 

-아까 눈밭에 족적을 남긴 장군봉, 천재단,무쇠봉능선이 장엄하다- 

 

-분비나무군락에 잠시 맘 뺏기고-

-울창한 주목들 호위를 받으며-

-우람한 거제수에 혀를 내두루다가~ -

-그림자 속의 나를 봤다. 햇빛과 나목과 그림자와 나 -

-가로의 주목이 새로의 편백에게 설자릴 넘겼다-

-단군성전-

-석탄박물관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