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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귀촌일기

열지 않는 마음엔 꿈도 없다.

열지 않는 마음엔 꿈도 없다.

                   <불갑저수지 수변공원>

나이가 들수록 산다는 게 두려워진다. 담금질하며 살아온 만큼 달관된 삶을 살아야함인데 의기소침해지고 자신감마저 결여됨을 느낀다. 까닭은 누구랄 것 없이 서로가 원활한 소통 없이 빗장 건 생활에서 기인함인데, 그 불통의 관계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불행한 절망의 삶이 된다.

지난 4월 귀촌하려 고향에 집터를 닦을 때만 해도 꿈을 좇는 행복에 젖어있었다. 노후를 고향의 자연 속에서 친족, 지우들과 교우하며 살고, 암수술로 접었던 ‘영광불빛길’에 대한 불소시지를 살려 제1코스만이라도 다듬어볼까 하는 꿈이 있어서였다.

하지만 나의 부덕의 소치와 (먼 곳에서 살고 있다는 핑계로)소통에 대한 안일한 생각으로 많은 부작용이 야기돼 이웃과의 불협화음으로 상처만 낳고, 시작 안함보다 못한 작금에 처한 꼴이 됐다. 모든 잘못 됨은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했던 나의 경솔함에서 기인함일 테지만,

내가 가장 염려했고 노심초사했던 옆집 옥식이네의 비협조와 훼방에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한 게 화근이 됐다. 그들의 이율배반 언행은 내게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오해와 불신의 누적은 그들이 더욱 마음의 빗장을 단단히 걸고 음해하게 된 것이다.

대화는 서로가 마음을 열고 낮은 자세로 다가설 때 소통이 되고 밝은 내일을 기약할 수 있게 된다. 자기방어의 담을 높이 쌓고 폐쇄적으로 나갈 땐 아무것도 기대할 수없는 불행만 초래한다. 외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수성하기에만 신경 쓴다면 그 집안과 사회는 발전도 꿈도 없다. 내 고향 방마리 주민 몇 분이 그런 고답적인 자만에 취한 삶에 안주하려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 것도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잘났든 못났든 사람은 인격체이고, 그가 살아온 만큼의 세력(世歷)은 훌륭한 삶의 전범(典範)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우리가 얻는 귀감거리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그래 누군가를 입적시켜 공생의 터울을 닦는 건 마을과 사회의 유익한 행운인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마을에서 노인 한 분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고 설파했다. 한 사람은 그 사회의 훌륭한 자원이고 그의 삶의 경륜은 우리에게 좋은 양서이기도 한 것이다. 해서 될 수만 있담 공존의 터를 넓혀야 하고, 더불어 가는 삶이  부강한 사회를 만들기에 역사는 인구늘리기와 영토확장을 위한 부단한 여정이었던 것이다. 

더불어 살아갈 사람 없는 사회는 존립할 수가 없다.

영광군 지자체의 ‘인구늘리기’ 행정지표도 밝고 꿈이 있는 내일을 도모키 위한 선정이 아니겠나. 그런 선정이 알차게 결실하기 위해선 주민들의 열린 마음과 겸손한 자세에서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이다. 난 귀촌을 꿈꾸면서 고향의 그 점이 한 없이 아쉬웠다.

기득권을 가진 자가 열린 마음일 때 외래인은 감복한다. 양보의 미덕은 행복의 바로미터이다. 무분별한 민원(民願)이 피민원인에게 민원(民怨)이 돼선 안된다. 지자체는 그 점을 간과해선 선정이 구두선이 될수도 있다는 걸 명심할 일이다.

이번 일엔 내 부덕과 소홀한 정성 탓이 훨씬 더 크겠지만-.

2013.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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