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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박서방에게

박 서방에게


즐거운 휴일을 보내고 있을 줄 믿네. 모두에 박 서방이라고 호칭하고 하댓말을 하게 됨을 양해를 구하고 용납해 주리라 미쁘네.

자못 자네에게 이렇게 멜이란 형식을 빌려 글을 쓰게 됨을 여간 기쁘게 생각하면서 나의 일단의 흉금을 털 수 있다는 사실에 자네에게 감사하는 마음일세.

내가 박 서방, 자네에게 내심을 털어놓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엊그제 자네와의 상견 시에 인지했던 자네에 대한 신뢰감과 인품에서 오는 포용력이 튼실할 것 같았고, 형님 댁(자네의 처가)의 중대사에 상당한 파워로 결정적인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으리라는 예단이 있어서이네. 그리고 또 하나는 형님네 누구에게도 흉금을 털고 상담할 수 있는 사람이 선뜩 떠오르지 않는 터여서 수인사한지 일천한데도 자네에게 이렇게 글 씀이 혹여 결례는 아니 될까하는 의구심도 떨굴 수는 없음이네. 하드래도 쓰기로 했고 자네에게 다소 마뜩잖은 말을 하드래도 관용으로 해찰하여 주게나.

엊그제 이후 지금까지 나는 우숩게도 한 가지 전갈이 오기를 못내 기다렸다네. 자네의 장모님, 경, 성, 옥이 그 누구로부터라도 전화 한 통이나 휴대폰 메시지를 말일세.

그런 혹시나 하는 기다림이 역시나로 자리매김 되는 을씨년한 자괴심에 슬퍼졌었네.

그제 난 귀가하여 아내와 한 참을 언쟁을 했다네. 왜냐구? 결론을 말하자면 아내 말인즉,

“이젠 그 통하지 않는 벽을 향해 자그만치 몸 사리며 애태우지 말고 훌쩍 뛰어 넘으세요”였네. 그 ‘벽’이 무얼 의미함이겠나? “욕심’을 말함이네. 쉽게 말하자면 형님네의 끝없는 욕심 앞에 속 태우지 말고 냉정하게 잘라버리자는 말일세.

자네에겐 이해가 안 되고 거북스런 말이겠으나 30여년 이상을 형님네를 지켜보며 살아온 우리부부가 애석하게도 얻은 결론은, 우리에게 한 없이 바라기만 하는 형님네란 고정관념이 되 버린 점이라네. 그런 고정관념이 다소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으나 배품 없이 챙기기만 하려드는 형님네에 대하여 쌓인 실망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나일세.

멜 상에 그 실망들을 다 쓰기란 어려워 접기로 하겠네(필히 듣고 싶어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 준다면 기꺼이 응하여 얘기함세).

나는 형님의 비통한 성장과정을 듣고 직접 목도 하였기로, 그런 형님께서 우리집에 계셔서 온갖 일들을 해주셨기에(그런 삶이 형님께서 생존하기 위한 일상이었겠지만) 내가 편안하게 공부하며 자랐다고 생각하였고, 그 점은 곧 나에겐 형님은 나의 은인이라는 명제가 되어 우리부부가 형님의 뜻을 좇아 해 드릴 수 있는 일은 힘껏 노력했음을 주저하지 않고 말할 수 있네. 짐짓 우리내왼 형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여 적잖이 실천했음도 자부함일세.

하나만 예를 들자면, 내가 가진 총재산보다도 더 많은 돈을 빚내어 드린 적도 있었네.

(믿기지 않으면 자네 장모님께 확인해 보게나). 그렇게 했던 것은 오직 형님에 대한 은혜갚음의 일단이라고 여겼기에 가능했던 거였네.

‘형님은 나의 은인’이란 점을 멍애처럼 여겼던 그 분이 지금 임종의문 앞에 계시네. 그 임종의 면전에서 난 허무함과 일말의 경원심과 분노를 삭히느라 속앓이를 하고 있다네. 엊그제 자네와 헛간 앞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경이가 왔다갔었지 않았나? 난 하 오랜만이어서 그 애를 몰라보았다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애가 경이였고, 그 앤 나를 힐끗힐끗 보기만 하곤 사라졌었네. 인사 한마디 없이 말일세. 경이에 대해서 한 가지만 얘기하겠네. 그 애가 서울에서 직장엘 다니다 발병하여 병원에 입원치료를 하게 되였고, 입원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경이어머님은 서울에서 내가 살고 있던 진해까지 내려오셨 더랬네. 당시 서울엔 경이외삼촌들이 몇 분이 살고 있었으나 경이어머님은 굳이 진해까지 오셨고 우리내왼 기꺼이 치료비를 마련하여 드렸었네. 성이에 관한 얘기 하나도 엊그제 했었지. 그런 식으로도 우리내왼 애들에게 베풀었지 결코 신세 진 적 없었네. 그 애들은 나의 선친과 나의 은혜를 알고도 모른 체 하는지 아님 전혀 모르는 멍텅구리인지 헷갈리는 요즘일세. 나의선친이 안계셨다면 형님은 이 세상에 살아남기 어려웠을 거고(자세한 얘긴 접세), 목숨 건져 키워 결혼시켜 분가시켜서 자기들 낳게 했으며, 나의 선친이 준 땅에서(나중엔 나의 땅에서)발 딛고 성장하며 선친과 내(미미하지만)가 마련해준 토지에서 농사지어 밥 먹고 자랐다는 사실 아니 지금도 그렇고 있다는 현실을 까뭉게버리는 행태에 분노보다는 슬픔을 느낌일세.

그 애들이 철이 좀만 들었다면 행여 내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이라도 내야할 몸뚱아리 일진데 힐끗힐끗 쳐다보며 아는 체도 않고 또 한다는 소리가 탐욕스런 요구나 하고 있으니 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천만번 어여삐 여겨 봐준다 해도 나에겐 몰라도 나의 선친에겐 그런 은혜를 알고 성묘라도 한 번쯤은 했어야 도리이거늘 내 여태 그 애들이 성묘했다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으니 오호통제라!

모쪼록 사람이면 仁心을 지녀야 하거늘 獸心에 가까운 심보라면 그의 앞날이 뻔할 것 아니겠나. 해서 인구에 회자되어 오는 “사람 잘 못 거두면 후회만 남지만 짐승은 죽어서라도 肉皮를 남겨 보답 한다”는 말이 불현듯 떠오름은 내가 너무 격해졌고 리힐리즘에 빠져들고 있음일까? 내가 너무 심했다면 용서해 주게나.

그 맹탕한 애들이 가엽서서 그제 오후, 나는 경이어머님께 내 평생 처음으로 “애들 교육을 똑바로 시켰어야 지요”라고 힐난 했었고, 그래서 은근히 누구한테서 전화 걸어오지는 않을까하고 기대했던 참 이였다네. 그 기대도 역시나가 됐다는 속쓰림으로 남았음이네.

이제 겨우 인사만 나눴을 뿐인 자네에게 몹쓸 말들을 하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하네. 하지만 내 모두에서 말했듯이 자네한테 호감을 느꼈고 어쩜 너그러이 이해 해 줄 거라고 미쁜 땜일세. 참 내친김에 자네에게 하나 더 용서를 구하고 싶네.

그제 자네 앞에서 얘기 했던 말(분할측정 시 주안점)이 식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아려주고 싶네. 그리고 이 글은 형님네 누구라도 읽게 해 줘도 상관치 않네. 아니 그렇게 해 주게나. 이미 알고 있겠지만 10/4일에 분할측정이 있다네.

우리 좋은 인간관계를 꾸려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자네에게 있게 되기를 기원하네.

07.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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