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섬과 나이아가라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가르는 5대호 중 온타리오호 북서쪽 센트·로렌스 강을 향해 81번 고속도로를 따라 워터타운(Water Town)이란 소도시를 관통하여 한 시간쯤 달리면 알랙산드리아만(Alexandria Bay)에 닿는다. 이른바 천여 개의 섬들에 호화별장을 지어 그림 같은 풍광을 센트·로렌스 강(st.Lawrence River)에 띄웠는데 유람선으로 그 환상적인 풍경을 즐기는 기착지인 곳이다. 이름하여 ‘사우전드 아일랜드’란 별천지 관광의 나들목이다.


유람선(Uncle Sam Boat)을 타고 Wellesley, Grindstone같은 제법 큰 섬을 비롯해 오밀조밀1860여 개의 섬과 원시림 속에 요염하게 들어선 호화별장을 보노라면 감탄사와 함께 카메라 셔터 누르기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내가 유람하던 날은 가랑비가 내리고 있어서 신록이 한껏 싱그러웠고 드문드문 안개구름까지 내려앉아 동화속의 그림 - 이곳이 파라다이스일까 싶었다.


숲 속에 낀 별장들이 티 없이 맑은 쪽빛 강물위에 녹아 흘러가는 파노라마를 어찌 내 둔필로 표기할 수 있으랴. 온타리오호수로 흐르는 로렌스강은 흡사 바다 같았고, 강 속에 떠 있는 섬(별장)들은 억만장자들이 사유지화 하여 그림같이 꾸몄으매 괜스레 그네들의 면면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들의 별장이란 것도 강이 안고 있는 섬의 모양과 수목에 잘 조화된 건축물들이기에 자연친화적이어서 한 폭의 그림 이였다.

강의 중간을 가로지르는 국경으로 섬들도 자연스레 미국과 캐나다가 절반씩 소유한 셈인데, 그 동화 속 같은 섬들 중에 뉴욕 아스토리아호텔과 기업경영의 거부 볼트가 아내 루이제를 위해 성을 쌓다(1900년)만 하트·섬(heart island)이 있다.


성을 쌓던 중 아내가 죽자(1904년) 공사를 중단한 볼트는 다른 재벌에 섬을 팔았고, 70여년 후 그 재벌의 손으로 성은 완성됐단다. 볼트가 섬을 팔지 않고 성을 완성했다면 ‘로렌스강의 타지마할’이 될 뻔 했는데 아내를 잃은 상심이 너무 컸던 것일까?

유람선은 캐니다쪽 Rockport를 경유하는 두 시간여의 수상관광인데, 점심을 곁들이는 런치쿠르즈(Luncheon Cruse)와 황혼속의 석식으로 디너(Dinner)쿠르즈를 운영한다지만 돈과 시간절약을 위해 입맛가심과 낭만은 고이 접기로 했다.

미국에서 내노라하는 자들의 별장지대이니 깨끗함이야 당연지사겠지만 관광객들이 붐비는 선착장에도 부유물 한점 없는 청정함이 강 속 깊이 투명하고 있었다.

억만장자들이 그들의 돈과 정성으로 가꾸어 놓은 별천지를 공짜($10은 지불했다)구경 한번 잘 했다고 억지 거만을 떨면서, $10에 덤으로 방귀 한방까지 날려 보내고 나니 자조감에 한숨만 났던 속알머리가 다소 시원스러웠다. 못난 놈의 시샘 짙은 배앓이를 그렇게라도 해서 카타르시스에 취하고 싶었던 것이다.


81번 고속도로를 역주하다가 시라쿠스(Syracuse)에서 90번 도로로 뻐져 나이아가라 시티에 도착하니 밤 9시가 지나고 있었다.

스타파이어(Starfire)호텔에 체크인 하자마자 뛰쳐나왔다. 멀지 않는 곳에 폭포가 있음인지 ‘웅웅---’하는 굉음이 낮게 드리운 밤공기에 묻혀 귓전을 맴돌며 우리네 가슴을 솜방망이질 해대고 있었다.

폭포를 향해 거칠게 물비늘을 일구며 흐르는 나이아가라강물을 따라 발 빠르게 서둘러 웅혼한 불협화음의 진원지에 닿았을 때, 멀리서 비춰주는 오색 서치라이트에 물안개만 자욱할 뿐 폭포는 흰 너울자락 몇 가닥만 보여주고 있었다.

물보라가 서치라이트에 반사되어 발산하는 일루미네이션의 황홀경에 도취된 난 멍하니 한참을 서 있어야 했다.

웅웅우--들려오는 폭포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머리를 후비며 얼을 빼놓는다. 어두운 불협화음의 광기 속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있어 비비고 들어 셔터 누르기도 옹색스러웠지만 그래도 몇 번을 찰각 했고, 신이 난 나는 두 딸에게 캐나다 쪽을 가자고 채근을 했겠다. 헌데 피곤에 찌들었던지 얘들이 내일로 미루잔다.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내일 떠나게 되면 캐나다쪽 폭포(말발굽폭포=Horseshoe Fall)를 밤에 관망할 수 있는 기회가 영원히 오지 않을지도 모르잖은가?

못이긴 척 따르는 애들을 선도하여 곶섬(Gost Island)을 잊는 다리를 건너가고 있었다.

곶섬 양 켠-동쪽엔 미국폭포(American Fall. 높이51m,폭320m)), 서쪽엔 캐나다폭포(높이48m,폭900m)가 자리한다.

곶섬에서 관망하는 미국폭포도 더 가까운 지근에서 볼 수 있었고, 말발굽폭포(U자형)는 미국폭포에 비해 규모가 더 장대했으며 수량도 풍부하여 낙차에서 뿜기는 물보라와 불빛으로 웅대한 실체는 보여주질 않고 있었다.


지축을 흔드는 폭풍음(‘나이아가라는 천둥소리를 내는 물’이라는 인디언 말에서 연유)과 물보라가 오색조명에 춤추며 현란한 일루미네이션 쇼를 연출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형언키 어려운 장관에 넋을 잃고 있기를 얼마였을까?

문득 서치라이트가 일순간에 사라지고, 어둠은 폭포를 삼키기라도 할 듯 물보라와 천둥소리와 한판 싸움을 하고 있었다.

자정엔 폭포를 비추는 조명을 거두어들임 이였다. 어둠 속 멀리서 가느다랗게 이어지는 희미한 빛 속에 뿌연 물안개가 또 다른 폭포의 실체를 조금 전보다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지를 않는가? 어느새 관광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버린 곶섬을 뒤로하고 숙소를 향하면서 “밤에 오길 잘 했네요.”라고 감탄하는 딸들의 말에 일말의 피곤도 사라지고 있었다.


am7:00. 콜보이의 모닝벨소리가 결코 싫지만은 아니했다. 아침에 안개속의 숙녀호(Maid of the Mist.=폭포를 신성시했던 원주민들이 예쁜 처녀를 바쳤던 의식에서 유래한 이름)을 타고 폭포 밑까지 구경하기로 스캐줄을 짰기에 말이다.

씻는둥 마는둥 허겁지겁 유람선 선착장이 있는 New yok stats Observation Tower로 달렸다. 티켓($10)을 구입할 땐 벌써 줄선 사람들의 꽁무니는 보이질 안았다. 조망탑에서는 간밤에 보았던 폭포는 차고 무거운 밤공기가 물안개를 감싸 안고 낮게 배회하며 안무 뒤쪽에 숨기곤 굉음만 더 요란을 떨고 있다.


5층 높이의 조망탑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 나이아가라강가 선착장에서 주는 비닐비옷을

입고 ‘안개속의 숙녀호’에 탑승했으나, 이미 1,2층 갑판을 빽빽이 들어선 관광객들로 영낙없이 콩나물신세가 되어야 했다.

어쨌거나 비닐로 싼 몸뚱이들을 서로 부비고 악쓰며 숨쉬기조차 힘든 숙녀호는 폭포를 향해 항진을 하고 있었다.

아뿔사, 미국폭포에 이르기도 전에 폭풍우 속에서 호흡곤란에 눈 뜰 수도 없는, 아니 뜬들 무얼 어찌 할 수나 있을까?

하기야 그건 내 사정일 따름이었다. 연신 쏟아 부어대는 물폭탄 세례에 얼굴 훔치기도 정신없었고, 구경 가는지 죽으러 가는지가 몽롱해지는 혼쭐남은 캐나다 쪽 말발굽 속으로 휘젓고 들어갈 때 절정을 이루었다.

누구랄 것 없이 죄다 물귀신이 되어 아우성치지만 폭포소리에 빨려들어 무슨 발광인지? 아수라장이란 다른 곳이 아니었다. 미쳐서 환장했기에 아깐 돈 쓰고 물귀신 되어 ‘천국의 지옥(?)’을 맛보겠다고 새벽부터 줄서 기다렸던가!? 그래도 그걸 추억한답시고 여기저기서 후레쉬 터뜨리는 불빛이 핑핑--. 그 경황에 나도 빠질 수는 없다는 듯 딸과 교대로 수선을 떨었겠다.

(후에 사진을 보니 물귀신 되려 아수라장에 용쓰고 덤볐던 초라한 나의 몸꼴이 가관 이였다면, 딸애는 그 틈새에도 썬그라스까지 걸쳐 한껏 멋있는 스냅사진으로 성공-.)


아무튼 나이아가라 물세례는 톡톡히 받은 셈이어서 미국인들의 물장사에 한 모금 먹어보지도 못한 물 값만 지불한 꼴이 됐다.

폭포는 캐나다쪽이 장관이로되 ‘숙녀호’ 띄워놓고 물장사로 이윤 챙기기는 미국이 훨씬 더 재미를 보고 있으니 그들의 상업적인 귀재를 새삼 실감케 하였다. 전혀 포근하지 못한 ‘숙녀품에서 빠져나와 알량한 비옷 헌납(?)하고 미국쪽 동굴전시장 옆 계단을 올라 폭포 밑(지금도 겨울에 얼었던 얼음덩이가 흰 바위덩이처럼 있었다) 바로 앞에서의 관망이 실감 났다.

여기 폭포 밑과 숙녀호 타고 물폭탄 세례를 받는 어드벤처 관광이 나이아가라를 체험하는 하이라이트라. 물 폭탄세례, 굉음, 진동에 정신을 잃게 되는 천당의 지옥(?)맛 말이다.

폭포전방에 아취형으로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무지개다리(Rainbow Bridge:일명 허니문 다리는 여권만 소지하면 내왕이 자유로운 국경 같지 않은 국경)의 교만함과 캐나다의 Rossi Glassu와 Skylon Tower의 위용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아침이 서서히 물러나면서 폭포의 윤곽도 점점 실체를 내보이기 시작하고 있어 너무 일찍 왔음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어쩌랴. 다음 스케줄이 빵빵한데---.

우린 다시 어제 밤에 답사했던 코스를 다시 찾아 밝은 낮의 위용을 관망키로 했다.


이리호에서 흘러오는 물줄기가 온타리오호에 이르기까지가 나이아가라강이고, 그 강 중간에 빙하기의 침식작용으로 인해 폭포가 생성됨이란다.

강 가운데 제법 큰 곶섬(Gost Island)이 깨끗한 공원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그 곶섬 양편으로 미국폭포와 말발굽폭포가 웅좌하고 있었다.

나이아가라 지반은 검은 퇴적암반으로 형성되어 강바닥은 매끈한 바위였고, 매년 10mm정도 폭포수에 깎여나가 폭포의 본래위치는 현재보다 훨씬 북(아래)쪽100m 앞에 있었단다.

1678년 프랑스 선교사 루이 헤네팬 신부가 발견한 이래 미국의 관광개발로 해서 세계3대 폭포 중 가장 규모가 작아도 관광객유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관광의 메카로 발전시켰다. 해서 나이아가라 하면 미국을 연상하게 한다. 실은 캐나다의 말발굽폭포가 더 웅장한데도 말이다.

천혜의 자연조건과 풍부한 자원의 미국이라지만 그네들은 그것을 일찍이 개발하고 상업화하여 선용하는 지혜와 용기를 발휘했던 것이다.

미국이 부국이 된 까닭은 그런 프런티어정신과 합리적인 사고의 집약을 과감히 실천하는 불굴의 의지와 사업성에 기인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네들은 잘 살 수 있는 자격이 충분히 있다할 것이다. 대한민국촌놈이 그들이 만들어 놓은 소위 유토피아(?)란 볼거리에 홀려 쌈짓돈 얼마나 쏟아 부어야 할는지 감이 잡히질 안는다. 그래도 아쉬움 없는 흥분과 후련함에 정신은 살찌고 있었다.

초등시절부터 줄곧 얼마나 많은 사진으로 접했고 영화로 동경해마지않던 곳이던가!

밤낮으로 센트로렌스 강과 나이아가라에 달러 쏟아가며 물귀신이 되었고 그 물 한 모금 먹진 못했지만 거기에 투자한 돈은 결코 아깝지가 안했다. 천혜의 나이아가라를 미국인들은 3차원의 예술로 승화시켜 알찬 비즈니스를 즐기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나이아가라 - ‘천둥소리 내는 물’ 벼락을 온 몸으로 실컷 맞았다고 자위한다.

벼락도 그런 벼락은 맞을 만했다.

03.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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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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