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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원시림속의 요세미티

원시림속의 요세미티

쎈프란시스코의 Lnn Holleyday를 떠나 3시간 반 남짓 달렸을까 우린 Yosemite(‘곰’을 이르는 인디언 말로 실제 곰이 많이 서식함)입구 Mariposa Gorve란 경관 좋은 산동네에서 중국식 정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울창한 숲과 검푸른 물살이 빠르게 흐르는 S.Nerced River 줄기를 따라 갈수록 아름드리 침엽수며 아메리카 참나무(Oak)와 이름모를 관목 등이 무성해져 가고 있었고, 띄엄띄엄 숲 사이로 백골의 잔해들을 들어내 보이는 시목(屍木)들도 자연의 미를 더하고 있었다.

여행 내내 느낀바 이지만 그네들은 자연을 참으로 잘도 보전 가꾸고 있었다. 우리는 Pastal Road를 따라 요세미티Valley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빽빽한 원시림, 군청색 류속(流速)이 내는 계곡의 물소리, 느닷없이 돌출하는 깎아 세운 듯 한 절벽들이 차창을 훔치다 지나치기를 수십 번-드디어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안착 했었다.

요세미티는 3억년 전 빙하기에 바다였던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융기 되면서 일부분이 침식 떨어져나가 분지를 남기고 있는데, 그 기름진 분지와 주변의 깎아 세운 듯한 장엄한 바위산(8000피트의 절벽)들과 9개의 폭포가 위용을 자랑하는 미국이 3대공원 중 하나란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환경보전 운동가였던 존 뮤어(John Muir:1838~1914)의 자연사랑에서 비롯된다. 위스콘신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하다 말고 인디에나폴리스에서 산업기사로 일하던 중 쇠줄에 눈을 다친 그가, 1869년 2050마리의 양떼를 몰고 시에라 산맥의 기슭을 찾아들어 보낸 3개월간의 일기<나의 첫 여름>에 그가 왜 자연사랑에 천착할 수밖에 없었나를 말해 주고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갖는 위력은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 경외감에 젖어 바라보면서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형태와 바위, 동·식물, 그리고 멋진 기후를 만들어 낸 힘이 무엇인지를 추적하는 것이 나에게는 끝없이 즐거운 일일 것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뮤어는 당시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를 초청해 이틀간 야영을 같이 한다. 아이젠하워는 백악관으로 돌아가 이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선포(1890년)하게 된다. <나의 첫 여름>은 오늘날 생태문학의 고전으로 애독되며 그는 국립공원의 아버지란 칭송까지 듣게 됨이라.

멀리 보이는 하프롬(Half Dome:여름엔 바위표면 온도가 100°c나 된다나)은 빙하로 인해 산의 절반이 지붕만 남긴 체 깎아내려 둥근 바가지를 반으로 잘라 엎어놓은 것 같은 기이한 암벽으로, 엘.케피탄(El Capitans:‘대장’‘우두머리’란 스페인어에서 유래된 말로 높이1095m. 신생대 백악기에 생성된 지구상에서 가장 큰 바위)의 거대한 수직절벽과 함께 암벽등반가(허가를 받고 등반)들의 동경의 대상임에 그 위용을 보노라면 넋을 추스르기 어려울 지경 이였다.

요세미티는 고도의 차가 심하여 온도와 강우량이 국부적으로 달라서 변화무쌍한 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단다. 좀 전에 목도했던 웨딩폭포(Beidaiveal Fall)의 장관에 감탄하다 보니 막상 요세미티폭포 앞에선 어안이 얼어붙을 수밖에···.

천길 벼랑 위에까지 뻗은 물기둥은 자욱한 물안개와 요란한 낙루(落漏)의 굉음만 아니면 폭포(좀 멀리서 본다면)라 할 수 없음이다. 마치 하얀 화강암이 벼랑 속에 기다랗게 묻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보이는 거대한 절벽을 가른 하얀 띠였다.

공원광장이 표고 600m이고 수직절벽 꼭지점이 최고 3960여m나 된다니 벼랑의 높이를 상상할 만하다.

요세미티폭포는 낙차가 740m나 되고 3단계로 된 폭포의 전체길이2425m(상1430m.중675m,하320m)에서 떨어지는 류속이 내는 폭풍과 굉음은 인간이 가까이 접근함을 절대 용납하지 않음이라.

폭포근처에서 잠시만 얼쩡거려도 비 맞은 촌닭의 초라한 모습되기 십상이라.


폭포는 겨울엔 얼어 빙하의 계곡을 만든다는데 일년 내내 산마루는 만년설 이불 밑에 잠들어 있었고, 그 얼음이 녹아 내려 장대한 여러개의 폭포를 생성(세계에서 가장 긴 폭포 10개중 5개가 이곳에 있다)함이요, 그 물이 공원 구석구석을 흘러 300여개의 내(川)와 소(沼)를 만들고 있었다. 공원을 이룬 광대한 분지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나무들과 1.400여종의 식물이 군락을(Grizzly Giant라 부르는 Sequoia숲엔 높이64m,지름11m,수령2700여 년의 세계 최고의 나무가 있다) 이루었고, 이름모를 수많은 난초과의 풀들, 230종이 넘는다는 야생조류와 곰을 비롯한 75종류의 포유류가 서식하고 있어 지구상에 가장 원시림의 파라다이스가 여기 말고 또 있겠나 싶었다.

1849년 금광을 찾아 나선 광부들에 발견 된 요세미티는 이미 8천년부터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다는데, 1905년 미군은 여기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토벌하고 내쫓았으니 당시 인디언들의 절망과 저주의 혈토는 폭포수보다 더 했으리라. 뮤어는 말한다.

“금 채광에 혈안이 된 백인들은 자연을 마구 헤쳐 파괴하지만, 인디언들은 철저히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고. 어쩌면 누구의 접근도 불허하는 성난 폭포수와 울부짖는 듯한 굉음은 인디언들의 절규에 찬 호곡(號哭)소리고 통한의 피눈물인지도 모른다.

조상대대로 낙원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던 그네들은 어느 날 갑자기 백인들의 총.포화에 살상 되였고, 내쫓김에 그 한이 천추에 응결되어 분노한 폭포수로 분누(憤淚)하면서 요세미티 하늘을 포효 하는 것만 같았다.


인디언들은 인근 깊숙한 오지(보호구역)에서 100년 전의 한을 씹으며 살고 있단다.

그네들의 천국 요세미티폭포는 분노와 함성으로 얼룩져 백인들에게 관광상품으로 둔갑하여 백인들의 호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면서 약간의 수익금을 인디언들을 위해 선심 쓰듯 사용함은 아닐는지?

역사는 강자의 편이던가?

무자비했던 미군(백인)은 잘도 살고 인디언들은 오지에서 근근이 종족보전에도 힘겹게 살고 있음에 정의의 아이러니를 엿보게 된다. 그래도 미국인은 한 줌의 양심은 남아 있었다고 해야 할까!?

당시의 기록을 왜곡시키지 않고 푯말로 세워 관광객들에게 알려주고 있음에서다.

요세미티폭포 물보라에 몸을 흠뻑 젖은 나는 두 딸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폭포 아래로 내려가서 미친 듯 곤두박질하는 급류에 손발을 잠시 담궈 봤다. 아니 오욕과 허영을 순수에 씻기고 싶었으나 어찌 차가운지 곧장 손발을 빼야했다.

욕심 같아선 1주일 정도 캠핑을 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하는 생각에 아쉬워하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차창 속으로 집어넣어야 했다.

요세미티를 멋지게 드라이브 할 코스는 동서를 관통하는 해발 3000m 높이의 타이오가로드(Tioga Rord)라는데 시간 없음에 언감생심뿐이었고, 남쪽을 향하는 와로나 길(Wawona Rord)를 달릴 수밖에 없었다. 와로나 길로 접어들어 산허리를 끼고 오르길 한참 만에 1km의 절벽 꼭대기에 올랐었는데 거기가 요세미티 공원대부분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그레이셔 포인트(Glacier Point)였다. 하늘밑 만년설에서부터 바위를 하얗게 가르며 꿈틀대는 요세미티폭포, 커다란 옥돌바가지를 쪼개 엎어 놓은 하프-돔, 수직의 장엄한 엘 캐피탄과 푸른 원시림 사이를 흐르는 천은 흡사 백사(白蛇)의 부신 유영 같았다.

그 태고의 여운을 흠뻑 묻혀 오는 시원한 바람을 실컷 마시며 귀로에 올랐다.

요세미티여! 인디언들이여 영원 하라! 03. 5.


#. 요세미티공원을 오가는 꾸불꾸불한 편도1차선 산길을 달리는 버스는 뒤 따르는 승용차가 있게 되면, 적당한 갓길에 차를 세우고 길을 비껴주는 양보와 배품의 여유를 목도한다. 선진국이란 상대에 대한 양보와 배려가 일상화 된 사회이고 그런 정신이 다민족 미국의 오늘이 있게 함일 것 같았다. 우리네의 조급하고 각박한 운전 메너를 되새김 해 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