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선암호수 찾아가는 타임머신

peppuppy(깡쌤) 2025. 5. 29. 22:22

선암호수  찾아가는  타임머신(time machine) 

신선정
보리똥

1주여 일 전 울산대공원 장미축제장을 한 바퀴 산책하고 정문 쪽의 숲속오솔길을 걷다가 ‘솔마루길’ 이정표를 발견했다. 선암호수공원까지 4.5km이던가? 울창한 소나무숲속의 흙길은 나를 단박에 사로잡았다. 게다가 도심(都心)의 야산이지 싶어 늦은 시각이긴 했지만 본격 트레킹에 들었다. 트레킹하기 딱 좋은 자연 산길이었다. 게다가 마주친 선암호수공원은 나를 미치게 만드는 매력적인 풍경이었다. 시간이 없어 경보경주 하듯 2km남짓의 호수 둘레길을 일주했다. 문제는 태화강역으로 가는 버스정류장을 찾기가 난망이었다는 점.

개운포역사
오디 ; 어릴 때 오디따먹는 건 금기시 됐었다. 누에의 주식인 뽕잎성장을 방해한데서 였다. 당시 누에치기는 가정의 부업이라 저절로 떨어진 오디만 주어먹어야 했다. 오디 따먹다 들키면 엄마한테 '너 번데기는 다 먹었다'라고 공갈(?)도 들었다. 누에가 잘 커야 명주실도,번데기도 풍년이었다

오후6시를 넘겼다. 묻고 또 묻고 버스환승을 하여 태화강역 닿았을 땐 어둠이 베어들고 있었다. 열차 속에서 다시 와야겠다는 다짐을 했던거다. 오늘은 태화강역 직전의 개운포역을 들`날머리로 정했다. 인터넷서핑을 열심히 해봤지만 개운포역과 선암호수공원의 지도상의 공인된 통로는 없었다. 거리상으론 동해선역들 중 젤 가까운 유명관광지인데 설마 멧돼지통로라도 있겠지 싶어 용단을 냈다. 정오에 개운포역에 내렸는데 딱 두 사람이었다. 화장실 보고오니 역사는 휑했다. 사무실에서 남녀직원 두 분에게 선암호수공원길을 물었다.

아그배 ; 열매도 작은데다 맛도 별로인 아그배는 먹거리 귀한 시절에 애들의 입가심으로 인기였다.
매실 ; 한 때는 대규모 매실농장이 성황했었는데,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다. 매실나무 밑에 떨어진 잘 익은 놈도 그대로 방치 썩어 버린다. 인건비도 안 된다는 이유다. 내 어릴 적에 우리동네엔 우리집에 한 그루 말고 뉘네집에 있었는지 기억이 없던 귀목이었다.
풋 복숭아 ; 허름한 스레트집 앞길에 복숭아나무가 탐스런 열매를 주렁주렁~! 주인할머니께서 익을 때 와서 따 먹으라고 했다

고개를 갸우뚱대다 역사 뒤 주차장에서 비포장도로을 따라 가면 될(?) 거라면서 자기들도 한 번도 가 보질 안 해서 미안하다고 미소작전을 폈다. 꽤 넓은 비포장신작로엔 우측은 수풀우거진 하천이고 좌측은 공장부지 아님 (빈)창고건물이 비포장도로만큼 누추하다. 사람 기침소리도 그림자도 없다. 5월의 따뜻한 햇살이 여과 없이 침입한다. 글다가 우측 수풀 속에서 매실나무가 아직 털보송한 푸른 열매를 내 보였다. 반가워 들여다보니 떼거리다. 양지쪽 놈은 누런빛도 감돈다. 한땐 돈벌이 과실로 신주 모시듯 한 매실나무다. 한 개를 따서 베어 맛본다.

창포 ; 여인들의 머릿기름으로 인기였다. 에피소드도 심심찮은데~!
익모초 ; 옛날 시골에서 단방약초로 각광을 받았는데 이 놈도 세월의 변덕에 신세한탄만 늘어놓는다
금계국
비너스의 피로 물들여진 장미

시큼하고 떨떠름한 수액이 입안을 소독(?)했다. 어릴 적 울`집 텃밭에 매실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갓 결혼한 형수님이 “도련님, 나 매실 하나 따다주면 안돼요?”라며 웃었다. 냅다 달려가 간짓대로 세 개를 따다드렸던 기억이 새롭다. 형수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갔었다. 지금 생각하면 입덧하던 참이었던가? 저 세상에 계셔서 아련한 기억일 뿐이다. 한 발짝 떨어져 오디나무가 까맣게 익은 놈을 앞세워 인살 한다. 팔을 내밀어 손에 닿자마자 내 입안으로 들어간다. 달달 떠름한 기묘한 맛의 즙이 초등시절로 타임머신열차에 승차시켰다.

▲하얀 접시꽃 당신이 바로 옆에 빨간 접시꽃 당신과 동반하여 5월의 태양과 바람을 맞으며 성혼식을 하고 있었다. 잔치상은 꿀벌의 차지고 나는 눈요기 타임머신여행에 푹 빠져들었다 ▼
선암호수 뒤 호수공원

달짝지근한 오디의 감칠맛은 까맣게 잊은 추억을 소환했다. 한 알씩이 성에 안차 손안에 모아서 입볼 터지게 밀어 넣었다. 선혈 같은 오디즙이 손가락을 아픈 상처(?)로 물든다. 오디나무가 여기저기 띄엄띄엄 산재했는데 숲속의 하천 둑 가장자리 벼랑이라 발 내디딜 곳이 없다. 모처럼 횡재가 빛 좋은 개살구가 된 판이다. 더구나 동면에서 깨어났을 뱀 생각에 오싹해졌다. 암튼 뽕나무 가질 잡아당겨 오디서리에 망중한인데 자동차가 굉음을 내며 나타났다. 집채만 한 덤프트럭이 거북이처럼 다가와 내 곁에 바짝 달라붙었다.

선암호수 뒤 신선산
호수공원 숲속 쉼터의 초미니 도서관, 딱 한 사람이 들어갈 자리가 있다

“뭐 하시오?” 고갤 들어 쳐다보니 운전석의 기사님이 웃고 있다. “오디 따먹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손바닥의 오디를 보여줬다. “보약 자시는구먼. 거기에 뽕나무가 있었네요.” 그러고는 거북이는 먼지를 뽀얗게 일구며 싱겁게 기어갔다. 앗차, 처음 마주친 사람이었는데 ‘선암저수지 길’을 묻지 안했다. 먼지 속으로 쫓아갈까 하다가 오디에 더 미련이 남았다. 입술도 빨간 루즈칠 범벅이 됐을까? 거울이 없다. 매실나무가 이따금 나타나 시샘시늉을 하고 있다. 매실은 어느 날 갑자기 매력을 잃었다. 우수수 땅에 떨어진 매실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현실이다.

▲인공암벽장(스포츠클라이밍장 21m×10m×17m), 요즘은 여성클라이머들의 레포츠로 각광이다▼
게이트볼장

하긴 아내도 매실주 담는 것조차 잊었지 싶다. 십여 분을 그렇게 오디에 빠졌을 테다. 수풀 속에 빨갛고 노랗고 파란 알맹이를 무수히 달린 관목이 이파리를 흔든다. 초록보자기에 섬섬옥수 자수(刺繡)를 놓았다. 곰곰이 생각하니 보리똥(보리수열매)이라. 가까스로 팔을 넣어 몇 알을 따 입에 넣어 씹는다. 씹는 게 아니라 이빨로 씨를 발라낸다. 한주먹을 입에 넣어도 씨 뱉어버리면 과육은 간에 기별도 안 간다. 게다가 맛도 달`떠름해 뒷맛도 개운 찮다. 내 어릴 적의 보리똥은 최상의 입가심거리였다. 놈은 대게 무주공산(?)인 산야에 있어 편하게 따먹는 열매였다. 오디나 매실은 따먹다 들키면 치도곤을 당하지만 보리똥은 감시(監視) 밖이었지 싶다.

안민사 ; 내부에 불상, 목탁, 불경책, 향초, 촛불이 비치되어 있어 기도를 드릴 수 있다
호수교회 ; 세상에서 가장 작은 호수교회는 09:00~21:00까지 실내에서 예배를 볼 수 있다
성 베드로 기도방 ; 가톨릭의 상징인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의 미니어쳐로 기도방 내부에는 예수상, 마리아 상, 성경 책등이 비치되어 있다
기도의 전당은 울창한 소나무 숲속에 있다. 곳곳에 벤치가 있어 힐링쉼터로 그만이다

근디 보리똥나무가 장난이 아니다 싶게 수풀 속에 군락을 이뤘다. 아직 완숙하진 안했어도 비닐봉지 하나 채우긴 일도 아니지 싶었다. 맛이 별로여서 너는 행복하겠다? 무지막지한 사람의 횡포는 안 해도 될터라. 하천은 상개저수지로 웹상 지도에 표기 됐는데 실상은 늪지대다. 인적 끊긴 늪에서 강태공 한 분이 세월 낚느라 삼매경이다. 내 딴엔 반가워 인사말을 하며 길을 묻는데 마이동풍이다. 입질하는 물고기가 말소리에 달아나는가? 햇살이 늪을 덮은 수초 잎에서 빛깔놀이를 한다. 야생꽃송이들이 여름기운에 풀죽어가고, 짙어지는 녹음 속에 열매도 변태를 거듭한다. 제법 큰 감나무가 무성한 잎 속에 새끼 감을 숨기고 있다. 새끼감이 떨어뜨린 감꽃(감똑)도 내 어릴 적엔 입가심거리였다.

▲붓꽃; 붓꽃은 꽃잎사이로 암수 수술을 감춰 꽃가루가 비바람에 손실되는 걸 방지하다 곤충이 찾아오면 잽싸게 잎을 벌려 수술을 내보인다. 벌이 꿀을 먹으려 기어들어 암술 꽃가루를 머리에 묻혀 옮겨서 꽃가루받이가 된다. 신성하고 신비한 프리섹스 향연의 자연의 신비를 붓꽃에서 감동받는다.▼

새끼감이 덩치를 키우다 제풀에 떨어지자마자 주어다가 따뜻한 물동이에 이틀쯤 우려먹던 정황이 겹쳐졌다. 우린감은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열매 굵은 감나무가 있는 집이 부러웠던 그때 울`집은 접시감나무 네댓 그루가 집안에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감 줍느라 선잠을 깼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허름한 슬레이트집 갓길에 씨알이 굵은 복숭아나무가 있어 사진`포인트 찾느라 기웃대는데 할머니가 불쑥 나타나 “뭣 찍소?”하는 통에 기겁을 했다. “예 복숭아가 탐스러워서요.” “익을라먼 멀었는디 찍어서 뭐하게?” 내가 웃자 할머니도 웃었다.

베르베르스 툰베리
꽃망울 터뜨리기 시작한 수련

복숭아가 익으면 엄청 크고 맛있겠다고 부러워하자 할머니 왈,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부산서 왔는데 참 선암호수공원 가는 길 아세요?”라고 묻자 “저 다리 밑 지나면 선암저수진디 거기가요?”라는 대답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할머니 얘긴 즉 쬠 공갈 보태자면 누우면 코 닿을 위치였다. “6월중순경엔 다 익어요?”라고 내가 묻는다. “글지, 그때 와서 따먹으면 될턴디~”라고 할머니가 안됐단 듯싶어 내가 또 참견했다. “그냥 따먹고 가면 도둑놈 되게요?”라며 웃자 “괜찮어, 이 집에 사니께 날 찾아~”라며 뒤쪽의 낡은 스레트집을 가리킨다.

▲꽃양귀비▼

고맙다고, 6월에 오면 꼭 그러겠다고 인사를 하고 고가다리를 향했다. 옛날 내 엄니 같은 구부정한 할머니를 되돌아보며 타임머신여행에 한껏 빠져들었다. 허물어져가는 블록담장을 월담하는 빨간 장미가 5월의 정열을 불사른다. 하얀 접시꽃 당신 옆에 진홍의 접시꽃이 결혼식 하는 냥 환하게 웃고 있다. 색색의 꽃이 수줍게 고개를 들고 푸른 잎 사이로 햇살이 번지는 풍경을 그렸다. 언젠가, 그 햇살 아래 기억이 피어나길 바라고픈 순간이었다. 변덕 심한 봄을 새 생명들은 용케도 잘 버텨내며 꿈을 실현한다. 그런 조용한 변화를 엿볼 수 있는 게 때 묻지 않은 자연 속으로의 여행인 타임머신 넘나들기다.

플레이 플록스
▲샤스타 데이지꽃 ; 계란후라이는 거의 공짜다시피 제공한다. 시장기 들걸랑 후딱 달려오라고 유혹한다▼
연방죽

오래전 내가 초등학교 오가던 시골의 신작로가 오버랩 됐다. 철마다 풍경색이 변하던 그 흙길엔 오직 햇살과 바람과 먼지가 신작로를 차지했다. 길가의 모든 돌멩이와 나무들을 기억하고, 논밭두렁의 풀냄새와 도랑물의 치어들이 지금도 내 기억 한 귀퉁이를 자리 잡고 있다. 함께 걷던 깨복쟁이 친구들의 수다소리, 시원한 5월의 부드러운 바람결, 따스한 봄볕이 깨우는 감각의 촉수가 선암호수로 가는 신작로에서 겹쳐진다. 관광여행의 행복은 멋지고 예쁜 곳에서 얻는 황홀한 감동이겠지만, 허접한 시골 신작로 흙길에서의 타임머신 감격도 뭉클하다.

샤스타 데이지꽃밭의 보라색버베나
실버마운드 쑥 ; 6월7일 탄생화로 '아침안개풀'이라 부르기도 한다. 꽃말은 '사모하는 마음'. 실버마운드 쑥은 '악마의 술' '요정의 술'이라 불리는 압생트(Absinthe)의 주원료로 쓰인다
분홍색 달맞이꽃

그 길이 내 안으로 이어지면 그리워지는 것들이 하 많다. 고가도로 아래를 통과하니까 바로 앙증맞게 작은 쉼터가 선암호수와 손잡고 있다. 워낙 해찰을 많이 해서 뭣하지만 반시간쯤이면 호수에 닿아 떡을 치고도 남을 시간이다. 근디 이 신작로를 외면(?)한다? 자가용이 웬수여서다. 요즘 젊은이들은 100m길도 걷기를 꺼린다. 길 위에 역사가 존재함을 망각한다. 드뎌 선암호수둘레길 소요에 들었다. 두 번째라 낯익은 놈들이 아는 챌 한다. 삶은 기억이고, 그 기억은 여행이 주는 선물로 채워진다. 오늘 선암호수공원에서 기억 한 귀퉁일 채울 거다. 걷는 건 그런 귀퉁이 평수를 넓히는 탐험이기도 하다. 아기자기하고 멋들어진 선암호수공원은 베일 한 자락을 더 풀어 헤치고 있다.            2025. 05. 29

▲왕버들나무▼
분수연지
왕버들나무의 옹두라지. 옹두라지는 나무의 상처가 아물면서 생긴 혹인데 한방약재로 애용된다
▲선암호수와 왕버들▼
▲장미터널, 잡초재거하는 아주머니들▼
보현사 경내의 왕벚나무
약사여래불
수컷공작새, 홀애비여서 짝을 지어주라는 나의 청에 스님은 웃었다. 수도승과 수컷공작의 일생을 오해(?)하는 성 싶어 나도 웃었다
삼성각은 신선산정의 벼랑바위 아래에 좌정했다.
칼랑코에
보현사 높은 돌담을 휘돌면 신선산입구다
▲시선산정 바위 옹두라지▼
신선산 신선정에 오르느 등산로는 잘 정비돼 있다.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정상에 서면 선암호수일대가 조망된다
▲신선정에서 조망한 선암호수일대▼
신선정에 올라서 사방을 조망하고 싶은데 여산님이 좌선에 들었던지 요지부동이라 단염해야 했다
▲선암호수 방언둑길과 저수관리소▼
▲선암호수의 데칼코마니 감상은 무아경으로 초대한다▼
▲나는 어디든지 물 웅덩이만 있으면, 심지어 아스팔트에 고인 빗물속에서도 물그림자의 감상을 즐기곤한다▼
인적 끊긴 상개저수지 늪지대에서 혼자 강태공의 멋과 맛을 만끽하고 있었다
말이 저수지지 늪지대로 외면받는 듯한 이곳은 온갖 푸나무들의 유토피아였다. 보리똥나무가 군데군데서 열매를 익히느라 땀 뻘뻘 흘리고~!
돼지풀?
찔레꽃
인동꽃 ; 금빛과 은빛의 꽃이 함께 어우러진다고 금은화(金銀花)라고도 부르는데 순백단아 하면서 향기 좋고 꿀이 많아 벌들한테 인기다. 꽃은 흰색인데 꽃가루받이를 마친 꽃은 노란색을 띤다. 수정을 마친 노란색 꽃은 꿀을 찾는 벌들의 헛수고를 덜어주면서 흰꽃의 수정을 늘리는 고도의 전략이라. 추운겨울을 이겨내고 초여름에 피는 인동꽃은 고진감래의 의미를 새기게 한다.
써프라이즈 장미
토끼꽃
붉은 장미는 비너스의 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