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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기로전설(棄老傳說)을 새롭게 생각할 때다?

기로전설(棄老傳說)을 새롭게 생각할 때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히말라야고산지대의 한겨울이맘땐 멸종위기의 전설 같은 동물이 짝짓기 하느라 세상에 모습을 나타낼 때가 많다. ‘설표(雪豹·눈표범)’. 험준한 고산지대에서 철저히 독신생활을 하는 놈들은 먹잇감이 적어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데다 개체수가 적은 탓에 좀처럼 눈에 띄질 않는다.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놈들은 나무나 바위에 몸을 비벼대 분비물(페르몬)과 똥오줌으로 영역표시를 하는데 냄새가 고약하기 이를 데 없단다. 1~3월 발정기암컷의 분비물 냄새는 짙고 강해 먼 곳의 수컷들을 유혹하기 딱이라. 어렵사리 찾아 온 숫놈은 짝짓기를 하루에 12~36번 정도 할 만큼 정력적인 사랑을 하는 동물이다.

 

 

연애할 때 수컷은 암컷한테 딸린 새끼를 지 핏줄이 아닌 탓에 무차별하게 죽여 암컷은 이래저래 신경 날 선다. 인간의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든 판에 연애하느라 새끼까지 설상가상으로 죽어나니? 그렇게 짝짓기93일 후 바위굴이나 크레파스에서 태어난 1~5마리의 새끼들은 2년쯤 후에 성체가 되어 15~17년쯤 생존한다.

 

털빛은 위쪽이 회색, 아랫부분은 하얀색으로 바위와 눈발 속에서 기똥찬 보호색을 띄는 눈표범은 먹이사슬 최상위를 살다가 히말라야독수리한테 사체를 내준다. 독수리는 지구상의 청소부다. 놈들이 온갖 병균의 숙주를 먹어치움으로 전염병을 예방하는 셈이다. 히말라야고산 독수리는 몽골초원 유목민에게 신성한 동물이다.

 

 

유목민들은 죽으면 시신을 산으로 옮겨 독수리한테 공양하는 조장(鳥葬)문화민족이었다. 자연에서 모든 걸 취하며 자연의 일부로 살아온 육신을 은혜 입은 자연에 바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윤회사상탓일 터다. 가축을 몰고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고산지대유목민에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존재는 가족전체의 생존과 안정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한다.

 

더욱이 날씨변화가 극심한 고산지대에서 제때에 이동하지 못하면 가족전체가 생존의 위험에 빠져든다. 하여 노쇠한 노인은 조그만 움막을 지어 약간의 음식과 함께 떼어놓고 작별의 예를 올렸다. 사지(死地)에 남아야 하는 부모와 떠나는 자식의 생이별의 아픔을 운명으로 순응했던 거다. 남겨진 부모는 불경을 외며 마지막 생을 마감했고 시신은 이듬해 자식들이 돌아와 수습한다.

 

 

이른바 고려장(高麗葬)풍습은 자손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노인이 택한 최선의 처신이었다. 시신을 독수리에 공양하는 소이도 급변하는 날씨와 빙토(氷土)에서의 차선의 장례식이었을 텐데 이런 풍습은 20세기중반까지 성행했다. 효도와 생존의 기로에서 고뇌해야 했던 우리선조들의 얘기 기로전설(棄老傳說)’의 의의를 지혜롭게 실천하는 길을 여미어본다.

 

 

아들이 늙은 아버지를 지게에 지고 산엘 오르는데 어린손자가 그 뒤를 따른다. 깊은 산속에 이르자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지게를 버리고 돌아서자 손자가 얼른 달려가 지게를 가져오는 게 아닌가.

왜 지게를 가져오느냐?”고 아버지가 책망하듯 물었다.

아버지가 늙으시면 지게가 있어야 제가 아버질 지고 산으로 올게 아닙니까?”아들의 대답에 일격당한 아버지는 잠시 머뭇거리다 되돌아서 아버지를 다시 지게에 지고 집으로 돌아와 극진히 모셨다.

 

 

부모의 은혜에 효도를 권장하고 고려장을 비판한 금세기에 노인문제는 또 다른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출산율이 저조하고 심화되는 노령화사회에서 노인부양에 드는 비용은 갈수록 태산일진데, 급격히 느는 노인치매환자와 수명연장환자에게 쏟을 가정적`국가적인 재원마련은 후손들, 우리의 젊은이들이 감당해야할 지난한 숙제가 됐다.

 

 

식물인간의 인위적인 수명연장이 환자본인은 물론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는 사실 앞에 새삼 안락사문제를 터부시해야할까? 효도는 인간관계의 원초적인 의무이며 덕목이지만 그렇기 위해선 사회와 국가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필수일 테다. 늙은 부모를 떼어놓고 생이별하는 유목민의 애통한 심정 앞엔 엄혹한 자연환경 속에서 후손들이 살아나가야 할 치열한 지혜를 보게 된다.

 

 

아들이 병든 늙은 어머니를 업고 깊은 산속을 향한다. 농경사회에서 노인네 수발을 하느라 장정하나가 매달려 생산성이 줄어든 가정에서 노인을 산채로 산속에 버리고 오는 풍습이 있었다. 후손의 생존을 위해 노인들은 기꺼이 고려장을 감수했던 시절이었다. 등에 업힌 어머니는 손에 잡히는 나뭇가지를 계속해 꺾어놓는다. 이를 궁금히 여긴 아들이 물었다.

 

 

어머니, 뭣 땜시 자꾸 나뭇가지를 꺾으요?”

나를 놔두고 올 때 니가 길을 잃을까봐 그런다라고 어머니가 대답을 하자 아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깊은 산속에 자기를 버리고 갈 자식의 귀가 길을 염려한 어머니의 사랑! 후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죽음! 자연에서 나 자연에 얹혀살다 자연으로 회귀하는 삶! 성자(聖者)의 모습이다.

 

동의보감의 저자이자 명의(明醫)였던 허준에겐 유의태란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 유의태는 생전에 허준에게 '자기 시신을 해부해서 심오한 의술의 경지를 넓히라'고 유언했다.  허준을 명의로 만들고 싶은 유의태나 아들이 깊은 산속에서 무사히 귀가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기원한 노모의 심정은 우리들한테 삶의 지혜와 깊은 성찰을 남긴다.

 

 

지혜로운 노인의 경건한 임종은 성자의 모습이다. 효도의 행위는 영원불변이 아닌 개인과 집단이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과 시대변천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는 것이리라.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 훌륭한 일생을 사는 지혜인 것이다. 안락사가 결코 불효가 아닌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식물인간의 생명연장은 위선적인 낭비이고 자연에 대한 불경이다.

 

먹이사슬 정점의 눈표범사체가 독수리먹이가 되고, 유목민이 부모의 시신을 독수리에 공양하며 고려장을 기꺼이 감수하는 노인의 삶에서 진정한 자유인이 되는 지혜를 터득하지 싶다. 사지를 향하는 노모의 나무 꺾기나, 유의태의 시신 사회환원은 이제 우리들의 몫일 것 같다. 시신기증은 의학과 법의학발전에 기여하여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함이라.

2019. 0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