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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아

여든일곱살 누님의 사부곡(思夫曲)을 들으며~

여든일곱살 누님의 사부곡(思夫曲)을 들으며~

 

지하철6호선종점 봉화산역에서 그리 멀지않은 신내동아파트대단지내의 한 시영아파트에서 울 부부는 어머니 같은 누님과 마주하고 있었다. 거의 반년 만에 누님댁을 찾았다. 지난 6월에 아흔일곱 세수로 자형님이 작고하였으니 홀몸이시지만 그실 누님은 십여 년 전부터 혼자사신 셈이다. 자형님께서 치매환자로 요양원생활을 10여년간 하신 땜이다.

 

6년 연하인 누님은 6.25전란 속에 가난한 자형님과 결혼을 하셨고, 지지리도 복이 없으셨든지 가난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사셨다. 가난은 모든 걸 앗아가기도 한다. 특히 주변사람들부터 소원해진다. 그 소원감이란 객관적이기 보단 스스로 보이지 않는 울타릴 치는 다분히 주관적이기 십상일 것 같다. 적어도 누님은 그랬지 싶다. 누구 앞에 나선다는 게 부담 내지 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조심스러워서였을 테다.

 

나는 그걸 눈치 채면서도 몰인정하게 누님 찾아뵙는 걸 부러 뜸들이곤 했었다. 근디 자형님과 사별해선지 뜬금없이 보고 싶다고 전활 주셨다. 오늘만 해도 누님의 전활 받고 찾아뵙겠다고 한지 한 달쯤 된다. 누님께선 내게 언감생심일 테지만, 찾아뵈면 아무 도움 주지 못하는 내처신이 나름 부담되는 게 싫어서였다. 오후한나절을 누님과 담소하면서 그런 나의 행위가 얼마나 치졸한 것 이였던가를 절감했다. 아니 난 못돼먹은 동생이었다.

 

영세민인 누님은 나라에서 주는 최저생계비50여만 원으로 생활을 꾸린다. 아파트임차비와 제세공과금을 공제하면 40만원도 안된단다. 그런 누님한테 13평형시영아파트는 궁전(?)이다. 사뭇 새색시 방처럼 깨끗하고 잘 정돈돼 있었다. 출입문에서 안방 베란다까지의 통로양편에 신발장,창고방,부엌,화장실,안방이 올망졸망 붙어있고, 거기엔 불편한 누님께서 거동하며 손에 잡힐 수 있도록 살림살이 도구가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다. 노인네집이란 생각이 무안케 말이다.

 

누님은 눈감고도 어디에 어떤 가재도구가 있는 줄을 알고 쓰실 테다. 특히 침대 맡의 화분과 베란다의 십여 개의 화분 중에 겨울잠 안든 놈이 꽃을 피우고 있어 감탄했다. 거동이 불편하신 누님은 화분에 물주기도 때론 귀찮단다. 해도 하루 한번은 기어가서라도 이파리를 만져보며 대화를 나눠야 마음이 편하단다. 궁전안의 유일한 생명체로 동거하는데 애정을 쏟지 않을 수가 없다 하셨다. 이파릴 만져봐 촉감으로 놈의 갈증을 느껴 물을 주면 금세 생기가 돋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겠느냐?고 신바람이 나신다.

 

여든일곱살의 소녀를 목도한 나는 맘이 아렷다. 뿐이랴. 반년 전에 사별한 자형님에 대한 애뜻한 감회를 술회할 땐 울 부부는 그냥 멍멍해졌다. 평생을 가난이란 질곡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창부수 치매남편이, 무릎관절수술로 절음발이 누님을 무지 괴롭혔는데 그렇게라도 살아계실 때가 좋았다고 연민의 회억을 하고 계셨다. 때론 빨리 죽기를 바랬던 요양원남편이 어딘가 기댈 수 있는 가늘디가는 지팡이이기도 했다는 연민은, 어쩜 지금의 홀몸보단 좋았던 것 같다고 씁쓸해하셨다.

 

늙어 귀찮기만 했지 쓸데없을 것 같은 고목 같은 부부도 때론 삭은 지팡이노릇하며 서로 기댈 수가 있는 게 부부란 걸 누님은 가르쳐줬다. 해로(偕老)의 의미를 일깨우는, 가난은 결코 행복의 변수가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걸 말이다. 자형님은 노래를 썩 잘하셨다. 어쩌다 같이 노래방을 가면 늘 빵파레를 터뜨렸다며, 누님은 베란다 너머로 눈길을 돌려 기억 한자락을 더듬나 싶었다. 언제 호강 한번이라도 시켜줬을까? 싶은 남편을 향한 사부곡을 듣는 울 내외는 누님이 좀 청승맞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님은 미인이고 똑똑하셨다. 일제때 초등교를 다닌 누님은 일본어와 노래를 썩 잘하셨다. 선친기일에 누님들이 오셔서 제사상 앞에서 일본창가를 합창하던, 그 낭랑한 꾀꼬리화음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아니 이젠 리바이벌할 수도 없다. 가난해도 아름다운 노년의 누님이시다. 그런 똑똑이 누님이 어디 한 군데 성한 데가 없는 육신이 되어 우리가 사온 바나나를 우물우물 삼키신다. 아내가 사과를 깎아 권하자 사양했다. 사과는 숟갈로 긁어서 먹는단다.

 이빨이 부실한 탓에 고형질의 음식이 치아에 닿으면 오싹 소름끼치는 통에 오늘오전에도 치과엘 다녀왔다고 하셨다. 내가 치료할 수가 없느냐?고 물었다. 십여년간 다니는 단골치과에선 다시 가치(假齒)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단다. 비싼 임플란트는 언감생심이라 틀니가 아닌, 치아를 덮어씌운 가치로 여태 버텼는데 그게 다 닳았단다. 가치는 5년여간 사용할 수 있고, 치주가 살아있어야 시술이 가능함이라. 누님의 치주는 아직은 버티고 있어 가치가 가능한데 단념했단다. 얼마나 더 살겠다고, 하시면서~! 짠하고 아렸다. 가슴이 미어졌다.

치과에서 몇 개나 가치를 할 수 있답디까?”라고 누님께 물었다.

한쪽에 다섯 개니 열 개를 하면 아쉬운 데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고 의사가 말했단다.

비용이 얼마나 든데요?”아내가 물었다.

전에 했을 땐 한 개에 15만원 주었는데 지금은 30만원이라네. 곱빼기로 튄거야누나는 눈길을 돌리며 목젖으로 기어드는 대답을 하고 계셨다. 나는 한참을 주저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망설이고 있었다. 심난한 맘으로 어쭙잖게 아내를 쳐다봤다. 안타까운 표정이 역력했다.

 

열 개면 300만원이네요. 누님, 제가 300만원 드릴테니 하루빨리 하십시오놀란 표정의 누님은 순간 가슴에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하고 계셨다. 글곤

내가 주책을 부렸어, 얼마나 살겠다고 동생한테 쓸데없는 소릴 했디야. 고마워. 맘만으로도 됐씅게 없는 걸로 하제글고 보니 누님은 십자가목걸이를 하고 계셨다. 언제 천주교에 귀의하신 거였다. 겨울철이라 거동이 불편해 날씨 좋으면  한 번씩 나가신다 하셨다.

 

거기서 좋은 말씀 듣고, 친구도 생겨 좋긴 한데 부담이 돼 곧장 집으로 오시곤 한다고 하셨다. 가난한 누나의 심저를 헤아릴 것도 같았다. ‘잘 하셨다고 얼버무리면서 누님의 계좌번호를 물었다. 절대 안 된다고 도리질 치신다. 큰딸한테 보낼 테니 걱정 말고 가치하시라고 당부했다. 사실 누님께 송금한들 불편한 몸으로 옹색할 거고 어차피 보호자가 따르는 시술이라야 할 것 같아 큰딸에게 송금하여 치료하게 함이 최선이란 생각이 든 터였다. 그녀도 형제를 키우느라 바쁜 솔로워킹맘이긴 한데~.

 

300만원으로 누님이 5년간 음식을 맛있게 드실 수 있으면 얼마나 다행인가! 음식은 곧 건강이고, 먹는 기쁨은 최고의 행복일진데 누님의 기쁨은 나의 기쁨일 테다. 뿌듯했다. 귀로에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타고 했다. 일방적으로 생색(?)낸 기분이 들어서였다. 아낸 오히려 잘 했다고 격려를 해줬다. 글고 보니 오늘이 성탄전야다. 내 평생 오늘 같이 뿌듯한 성탄이브를 맞긴 처음이라. 주는 자의 기쁨은 받는 자의 몇 갑절이지 싶다.

내가 누님에게 기쁨을 드릴 수가 있음에 자족한다. 누님, 건강하세요. 글고 자주 찾아뵙지 못한 허물 용서해주시라요. 누님큰딸한테 전활 넣었다. 할 말이 없다는 큰딸~, 눈에 밟혔다. 자정 무렵 모 종편방송에 홍콩배우 주윤발의 8100억원(재산의 99%) 기부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그는 자가용도 없이 대중교통을, 늘 싸구려 할인매장을 애용하는 근검절약의 모범인이며 월드스타다. 주는 자의 기쁨은 행하지 않고는 결코 맛볼 수가 없으리라.

2018.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