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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십여 년 만에 재회한 화톳불사랑 – 고봉산 러브스토리

십여 년 만에 재회한 화톳불사랑 고봉산 러브스토리

 

안곡생태자연습지

 

먼발치에서나마 폭염을 앗아간 태풍솔릭 덕이리라. 상쾌한 날씨는 한강을 거슬러 고양 고봉산자락을 애무한다. 일산역에서 내린 아내와 나는 몇 번이나 묻고 물어 일산초등학교를 휘도는 하늘마을길에 들어섰다.

화강암사고석을 물살처럼 박아 이름처럼 멋진 길은 인적도 뜸한데다 상큼한 바람까지 마중물 나와 한 시간 전의 서울을 깡그리 잊게 했다.

 

고봉산

 

고봉산습지를 지금은 안곡생태습지공원이라 부른다는데 지긋지긋했던 폭염도 이 습지는 어쩌질 못했지 싶었다. 개발붐에 사라질 번한 이 습지를 일산시민들이 살려낸 것은 습지가 품고 있는 끈끈한 사랑의 원천(源泉)을 영원히 음미해보고 싶어서일 것이다.

난 습지를 거닐며 한 여름날의 초록빛생명보다 짙은 유구한 사랑의 아우라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 습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개백고을 관아가 자리한 명당자리가 아닐까? 라는 상상의 나래를 지피면서 말이다. 5세기경 아랫마을엔 부호(富戶)()씨 집에 이름이 주()라는 절세가인이 있었다. 재색을 완비한 주()낭자의 소문은 고구려 문자명왕(文咨明王)의 장자 흥안(興安)태자를 달뜨게 하여 상인차림으로 변장을 하고 개백에 잠입케 한다.

 

 

그때가 용구재이무기제라는 축제기간이었다. 고양한강변에 용이 되려다 못된 이무기의 한을 달래기 위한 축제를 12년마다 여는데, 흥안태자는 그 축제에서 주낭자를 보고팠던 거였다. 요행이 축제난장판에서 주낭자를 발견한 흥안은 그녀의 수려한 자태에 넋을 빼앗긴 채 인파를 헤치고 발걸음을 옮겼다.

 

 

주낭자는 몸종 별이를 데리고 있었지만 흥안은 대뜸

나는 고구려태자 흥안입니다. 죄송하오나 할 얘기가 있으니 잠시만 저를 따라오시지요.”라며 대답할 짬도 없이 낭자의 손목을 잡고 갈대숲으로 이끌었다.

당황한 주낭자가 얼핏 청년을 훔쳐보니 이목구비 준수한데다 고구려태자라 하잖는가!

 

 갈대습지

 

뿌리칠 겨를도 없었지만 무슨 위급한 정황일까 싶고, 또한 몸종 별이가 있어 잠자코 따라갔다. 갈대숲에서의 태자의 얘기는 엉뚱하게도 풋풋한 사랑고백에 이은 프로포즈였다.

저는 낭자의 소문을 듣고 연모하다 축제에 숨어들었습니다. 저와 결혼을 약속해주시면 고구려왕이 되어 낭자를 맞으러 오겠습니다.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주낭자는 태자의 손을 뿌리치지 안했다. 아니 태자의 손을 잡아 이끌어 며칠간 사랑의 불꽃을 태우면서 혼인언약까지 하고 헤어졌다. 그 갈대숲은 어디쯤이었을까?

넓은 습지 안을 거닐며 두 남녀의 스피디한 사랑의 불꽃놀이를 상상해 봤다. 습지 한 가운데로 난 데크다리에 쉼터가 있고 붉은 태양가림막이 접어진채 수문장마냥 서있다.

 

 

갈대밭 어디쯤이었을까?  다른 길 생태숲속으로 들어섰다. 수풀 빼곡한 음산한 숲길에 뱀 주의라고 쓴 푯말이 을씨년하다. 꼬불꼬불 굽은 생태숲길을 걷다 그만 고봉산등산로로 들어섰다. 낙락장송은 아니더라도 몇십 년생 리기다소나무가 울울창창 초록차일 친 황톳길을 밟는 전율은 산뜻하다. 어제 밤 태풍끝자락이 흩뿌린 실비 탓에 솔숲의 황톳길 고봉산을 유토피아로 만들었지 싶었다.

 

 

문자명왕이 제위28(518)에 죽자 흥안이 왕위에 오르니 22대안장왕(安臧王)이다. 안장왕은 주낭자를 맞으러 노심초사 몇 차례 전쟁까지 벌렸으나 실패했다.

그때 개백엔 비후라는 신임태수가 부임한다. 비후태수의 귀에 절세가인 주낭자의 소문이 비껴갈리 없다. 주낭자를 불러 마주한 태수가 수청들 것을 주문한다.

 

 

이미 정을 준 남자가 있는데 멀리 가서 돌아오지 않으니, 그 남자의 생사나 안 뒤에 청혼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주낭자는 단박에 거절하는 거였다. 화가 난 태수가 누구냐고 물으며 다그친다.

바른대로 말하지 못하는 걸 보니 그자가 고구려 첩자 같구나. 적국의 첩자와 정을 통했으니 죽을죄를 지은 것이다.”

 

가파른데크계단은 끝이 안 보인다

태수는 주 낭자를 옥에 가두고 몸종 별이를 목 베며 온갖 협박과 감언이설로 꾀었다. 그러나 그녀는 요지부동, 단심가를 읊는 게 아닌가!

“이 몸 죽어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야 있건 없건/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단심가를 들은 태수는 그녀를 죽이기로 작정했다.

 

쉼터

이 소식이 고구려의 안장왕 귀에도 들어갔다. 안장왕재위11(529), 왕은 편전에서 신하들을 불러 사랑의 기로에 대해 하문한다. 태자 때 백제땅 개백현(皆伯縣)한주(韓 珠)낭자와의 사랑의 언약을 지킬 수 있는 방법론을 물었던 것이다. 울창한 소나무사이 황톳길은 탱탱한 여인의 가슴팍처럼 보드랍다.

 

 

 

비집고 쏟아지는 햇살에 가랑이파리가 곡예를 하며 떨어진다. 가로막는 데크계단이 상당히 가파른데 끝이 안 보인다.

만일 개백현을 회복하여 주낭자를 구하는 사람이 있다면 천금은 물론 만호후(萬戶侯)의 상을 줄 것이다.”라고 왕이 말하자 을밀장군이 한 걸음 나아가 아뢴다.

 

 

천금과 만호후도 좋지만, 신의 소원은 안학공주와 결혼하는 것뿐입니다. 신이 안학공주를 사랑함이 대왕폐하께서 주낭자를 사랑하심과 다르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만일 신의 소원대로 안학공주와 결혼할 수 있게 해주신다면, 신이 목숨을 다해 주낭자를 구해오겠습니다.”

을밀은 오래 전부터 문자명왕의 딸인 안학공주를 남몰래 흠모하고 있었다.

 

 

문자명왕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올라 안장왕이 되었으니, 안학공주와의 결혼은 바로 왕의 매제가 됨이었다.

빡센 계단을 오르니 밋밋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울창한 수목에 고봉정상도 일산시가지도 오리무중이라. 쉼터에 이정표 대신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러브스토리를 간략하게 소개한 안내판이 있다. 반가운 친구를 조우한 기분이 들었다.

 

 

을밀이 아뢴다.

신이 먼저 백제를 쳐서 개백현을 회복하고 주 낭자를 살려낼 것이니, 폐하께서 대군을 거느리고 육로로 진군해 오시면 사랑하는 주낭자를 재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을밀장군이 수군5천명을 배에 태우고 선발, 강화도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 개백현에 잠입했다.

 

 

태수의 생일날 잔치마당의 관아는 야단법석이었다. 태수가 이방을 시켜 감옥의 주 낭자에게 최후의 기횔 베푼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오늘 너를 죽이기로 작정했으나, 네가 마음을 돌리면 살려줄 것이니 오늘이 바로 네가 다시 태어나는 생일이 될 수도 있다.”는 이방의 전갈에 주낭자가 답했다.

 

 

태수가 내 뜻을 빼앗지 않으면 오늘이 태수의 생일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태수의 생일이 곧 내가 죽는 날이요, 만약 내가 사는 날이면 태수의 죽는 날이 될 것이다.”라고. 이방이 뇌까리자 태수는 대노하여 빨리 처형하라고 고래고래 악쓴다.

잘 다져차진 황톳길을 맨발로 걷는 산뜻한 촉감의 쾌감이라니! 사지를 죄어오던 피로를 씻어내나 싶다.

 

 

더구나 시원한 솔바람이 푸나무를 흔들며 파란하늘보자기를 띄우고, 하얀 구름 한 떼를 초대하는 삽화는 주낭자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고봉산을 오르는 신바람일 것 같았다. 헬기장에 섰다.

여기쯤이었을까? 두 연인이 뜨겁게 포옹한 곳 말이다.

 

 

용구재이무기제축제에서 언약한 사랑의 맹세는 고봉산에서 횃불처럼 타 올랐고 두 연인은 냅다 달려와 얼싸안은 곳 말이다.

이때 을밀의 결사대 20명이 춤추는 광대 패로 가장하고 연회장에 들어가 칼을 빼어들며 태수를 포박하고 소리쳤다.

지금 고구려 군사 10만이 개백현에 입성하였다!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다! 모두들 손을 들고 항복하라!”

 

 

 주낭자가 봉활 올리고 안장왕과 재회했지 싶은 헬기장

 

고봉산정상은 군사보호구역이라 출입금지였다. 헬기장에서 영천사방향으로 향했다. 을밀장군은 주낭자를 데리고 고봉산정을 올랐다. 산정에 올라 봉화를 올리기로 안장왕과 약속한 터였다. 안장왕은 뒤늦게 대군을 이끌고 육로로 한강변 백제땅을 토벌하며 개백에 닿아 진을 치고 있었다.

 

 

고구려군사들이 고봉산정의 봉화를 발견하여 왕께 아뢴다. 백마에 올라 탄 왕은 척후병을 앞세우고 봉화산으로 내달렸다. 여기쯤이었을 테다.

십일 년도 넘게 꿈을 키워온 두 연인의 사랑의 언약이 봉화처럼 활활 타오른 뜨거운 포옹장소가 말이다. 아니다, 그 사랑의 재회는 설화처럼 인구에 회자돼 역사의 뒷마당에서 사랑의 귀감으로 상존한다.

 

영천사약수터

글고 수 많은 커플들의 로망이 됐다.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춘향전>의 사랑이 고봉산러브스토리의 맥아(麥芽)에서 피었지 싶다. <삼국사기지리지와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는 옛날 문헌해상잡록(海上雜錄)에 안장왕과 한씨 미녀의 사랑 이야기기록이 또렷하다.

 

영천사삼성각

을밀장군이 한씨 미녀구하기 작전에 성공하여 한씨 미녀가 고산(高山) 위에서 봉화(烽火)를 피우고, 안장왕은 몸소 달려가 한씨 미녀를 재회했다. 하여 고봉(高烽)이라 이름 하였다.'라고.

안장왕은 약속대로 친누이동생 안학공주를 을밀에게 시집보냈다.

 

 

오늘날 고봉(高烽)산은 자가 아닌 자로 표기해야 옳음일 텐데 안내표지판에 자로 쓰여 있어 아쉬웠다.

고봉산정엔 봉화대와 성벽이 남아있단 데 출입금지라 영천사로 발길을 돌렸다. 숲을 뚫고 조망되는 일산시가지와 한강너머의 넓은 김포일대를 훑으며 왜 고구려,백제,신라가 서로 뺏고 빼앗긴 격전의 장소인지를 어림잡게 한다.

 

고봉산에서 조망한 일산시가지

 

영천사마당을 밟고 등산로에 든 숲길은 울창한 초목으로 하늘마저 숨기고 수풀에 찢긴 햇살이 땡땡이무늬 비단길을 만들었다. 진종일 걸어도 질리지 않을 조붓한 산길은 등산길 아닌 산책길이라. 일산시민이 행복할 소이를 알만했다.

 

 

주낭자가 감옥에서 읊었다는 연시(戀詩)는 고려 말 역성혁명 때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에 답한 포은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의 시원일 것이다.

고구려시대부터 인구에 회자(膾炙)되어온 주낭자의 단심가를 포은이 차용했지 싶어서다.

 

 

주낭자와 포은선생의 <단심가>, 안장왕과 주낭자, 을밀장군과 안학공주커플의 러브스토리는 설화던 팩트던 간에, 도도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우리네 삶을 윤택케 하며 온고지신의 지혜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진정한 시랑은 그 아름다움이 고금을 관통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용감하고 저돌적인 흥안태자의 프로포즈는 오늘날의 처녀들도 옴짝달싹 못하게 할 연애작업1단계일 테다.

고봉산은 '영원한 사랑'을 실천했던 아릿다운 커플얘기로 울 부부를 힐링한 셈이다.

2018. 08. 25

 

 

주낭자의 뒤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