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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수락산 팔아먹은 영의정이라니? 수락산에서

수락산 팔아먹은 영의정이라니? - 수락산에서

 

 

 

햇살은 초여름인데 뿌연 미세먼지가 연막을 쳤다. 4년 만에 오르는 수락산행에 아내가 동반하겠단다. 평탄한 자락길만 걷던 아내가 암릉구간이 태반인 수락산행엘 따라나서 걱정이 앞섰지만 쉬엄쉬엄 길동무하기로 했다. 수락산 입구 덕성여대 생활관에 추사 김정희의 글씨 우우당(友于堂)현판이 있다는데 담 기회에 찾기로 그냥 지나쳤다.

 

매월정

 

백운계곡으로 향하는 신록 속에서 산님들과 조우한다. 4년전 산행 때 하산한 코슨데 긴가민가했다. ()운동계곡은 이병직이 산안개속의 수려한 바위와 물길, 빼곡한 숲의 골짝을 산책하곤 큰바위에 벽운동천(碧雲洞天)이란 글씨를 새겨 부르게 된 지명이다. 강수량이 적어선지 골짝의 물소리가 영 시원찮아 벽운동천을 절감킨 아쉬웠다.

 

수락정상

 

능선에 오르자 치마바위가 자릴 내준다. 매월정에 섰다. 김시습은 수락산에서 십여 년을 유유자적하여 발자취 남긴 곳이 많다. 서계(西溪) 박세당은 수락산에서 매월당영혼 살리기에 푹 빠진 선비였다. 정자 앞에 있는 매월당의 시 한 수를 옮겼다.

 

 

가현 (假峴) -매월당-

驟雨暗箭村 (소나기에 앞마을 어둡고)

溪流徹底揮 (시냇물 온통 탁하네)

疊峰遮客眼 (첩첩봉우리 나그네 눈을 막고)

一徑入溪源 (깊은 골짜기 향해 한 줄기 길 나있네)

靑草眠黃犢 (초록풀밭에 황송아지 잠들고)

蒼崖叫白猿 (푸른 절벽에 흰 원숭이 울부짖네)

十年南北去 (십년세월 남북으로 떠다녔지만)

岐路正銷魂 (갈림길에 서면 애가 탄다)

 

 

하강바위라던가, 코끼리와 철모바윌 넘었는데 아내가 주저앉았다. 바위 오르고 내리기 현기증 나서 죽어도(?) 못 가겠다고 정상엘 나 혼자 갔다 오란다. 할 수 없이 암릉을 피해 에둘러 가기로 했다. 근다고 바위산이 어디 만만한가? 정상 밑500m 울창한 숲속 마당바위에 기어코 자릴 깔았다.

 

 

아낸 나더러 정상엘 갔다 오라지만 혼자 숲속에서 기다리게 할 순 없었다. 정오를 넘겼었다. 기갈을 해소하고 우린 반듯이 눴다. 누가 파아란 하늘보자기에 연푸른 이파리들을 촘촘히 수놓았을까? 수놓은 여인은 온통 연푸른 이파리들 속에 새를 한 마리 숨겨 놨는지 이따금 노랠 하고 있잖은가!

 

 

5월이 베푸는 대자연의 풋풋한 사생화다. 우주가 인간에게 베푼 자연을, 사유화할 수 없는 태초의 섭리를 깔아뭉개며 권세라는 허울로 울타리 친 영의정이 있었다.

중종때 윤원형은 수락산을 통째로 사유화해 입산료는 물론 부지깽이 하나도 나무꾼에게 팔아먹으며 농락했었다.

 

하늘보자기에 수 놓인 연초록잎새들

 

당시에는 시장(柴場)이란 곳에서 나무꾼들이 땔나무를 하여 사용하고 관청에 내다팔기도 했었다. 하여 한양주위 30리 안팎은 시장으로 법제화했는데 일부 권세가들이 사유지로 정해서 꼴과 땔나무 베어가는 것을 금지하여 원성이 자자했다.

 

숲속에서 본 수락산흰바위정상이 설산처럼 보였다

 

문정왕후의 오라비였던 윤원형은 20여년동안 권세를 누리며 수락산 일대를 사유화하여 주민들을 내쫓고 무덤까지 파헤쳐 시장을 독점했다. 거기서 땔나무를 하거나 사냥 또는 물고기 잡아도 세금조로 현물을 챙겨 축재를 한 탐관오리였다. 그 짓거리에 도를 틘 건 그의 정부(情婦) 정난정이 한 수 위이기도 했다.

 

 

이 무렵의 서거정의 시 한수가 전해온다.

 

얼마 전부터 권세가의 힘이 / 나무며 돌까지 미쳐 산이란 산은 죄다 / 제 땔나무 밭으로 차지해 / 사람들 나무 하고 꼴 베는 것을 막고부터 / 서쪽 집은 땔나무 한 번 한 죄로 / 매질 마구 하여 피가 철철 흘렀고 / 동쪽 집은 소가 밭을 밟은 죄로 / 아비 아들 나란히 묶여 갔지요 / 아무런 이유 없이 백성의 재물 약탈해 / 낫과 도끼까지 모두 빼앗아 갔지요.

 

 

윤원형과 정난정의 로맨스도 세기적불륜이다. 원형은 궁중의 천비 정난정과 배꼽이 맞아 통정하다 정부인김씨를 독살하고 그녀를 정경부인자리에 앉혔다. 정난정은 문정왕후에게 접근 아양 떨고 꼬리질 쳐 원형의 권세를 이용 온갖 매관매직으로 사직을 물란케 했다. 오죽해야 임꺽정이 난을 일으켰을까.

 

 

나중에 원형이 파직 당했을 때다. 추풍낙엽신세의 난정은 금부도사가 사약을 들고 오고 있다는 시종의 호들갑(오보)에 지례 음독자살한다. 그 비보를 들은 원형도 달려와 난정의 주검 앞에서 자결하니 탐욕의 종말은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해야 하나? 애욕은 죽음도 불사한다?

 

 

조선판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로맨스 같기도 하다. 하늘을 찌를 듯했던 권세와 엄청난 재물은 일장춘몽이었다그런 희대의 탐욕쟁이 커플이 넘쳐나는 탐욕과 애욕을 분탕질했던 희극의 현장을 아내와 나는 그 시장에 공짜(?)로 누워서, 그들 불륜을 질근질근 감칠 맛나게 씹어 보는 거였다.

 

 

욕망에 눈멀면 살인 같은 건 장난일까? 지금도 욕망에 눈먼 권세가들이 우리 앞에 얼쩡대고 있다. 권력의 노예 두환이는 수많은 살상자 앞에 철면피 거드름 피우며, 기춘이 아류들은 교도소에서 공짜콩밥 먹고 있잖은가. 그들을 이리 끌고 와서 김시습과 윤원형의 일생을 반추해보게 하면 짐짓 좋은 수락산교도가 될 텐데~

자릴 털었다. 오후 2시반 이었다.

 

 

안부에서 수락골짝으로 빠져 깔딱고개를 넘어 석림사쪽으로 하산키로 했다. 빼곡 찬 숲은 신록의 터널을 만들고 낙엽너덜 길은 음습하기까지 했다. 찔끔거리는 수락폭포에 닿을 때까지 산님은 딱 한 분 만났다. 호젓해서 좋긴 했지만 간혹 산님들을 조우해야 반갑게 인살 나누며 안도하기도 한다.

 

 

수석(水石)이 어우른 멋과 정취가 빼어나 수락산이라 명명했을 이 산자락에 매월당은 오두막을 짓고 농사를 일구며 살았다. 유불선(儒彿仙)과 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등의 서책을 쌓아놓고 독서를 하다 오수에 드는 한량의 세월을 즐겼을 테다.

 

 

또한 만장봉에 자신의 호매월당(梅月堂)’이라는 이름을 붙인 처소를 짓고 지냈단다.

눈코뜰새 없이 바쁜 세상이라지만 요즘엔 매월당 같이 고매한 분이 그립다. 석림사 경내는 물론 진입로엔 석탄등불로 꽃을 피웠다.

 

석림사 석탄절 재등

 

첩첩산중도 5월엔 울긋불긋 계절의 여왕 재림으로 화사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세상이 늘 5월 같음 유토피아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될 것이다. 매월당의 영정을 모시려 서계가 지은 노강서원을 지나쳤다. 하천준설공사로 앞길목이 어지러운 서계의 고택도 그냥 지나쳤다.

 

 

미세먼질 잔뜩 뒤집어 쓴 도봉산도 어지럽긴 마찬가지다. 아내가 여간 지친표정이었다. 그래도 수락산 깊은 골짝서 바윌 침대삼아 신록이불 덮고 하늘보자기에 얼굴가린 채 얘기꽃 피운 오후 한나절은 쉬이 잊을 수 없으리라. 토종다람쥐의 눈길도 때까치의 지저귐도 귓가에 맴돈다.

5월은 푸르구나!

2018. 05. 15

 

서계선생의 궤산장

노강서원

수락산정상

 

 

 

 

수리바위 뒤로 미세먼지에 덮인 도봉산고 시가지

 

매월당서 본 수락정상(좌)능선

매월당서 본 불암산

 

수락골짝의 찌질한 폭포

서계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