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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겨울밤에 듣는 타고르의 산타니케탄

겨울밤에 듣는 타고르의 산타니케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입춘이 엊그제였는데 영하1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연속이다. 초저녁시청 앞은 음산한 시베리아다. 중무장한 사람들이 띄엄띄엄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프라자호텔중식당엔 먼저 온 둘째와 W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들끼리의 식사에 굳이 울 내욀 초치한 건 W였다. 둘째와 막역한 사이인 W는 같은 그룹에서 근무하고 있어 종종 단편소식을 듣곤 했었는데 이번에 귀국했단다.

 

 

인사치례 안 해도 좋을 걸 자릴 마련해 고맙고 미안했다. 울 내외에게 식단을 묻자 십여 일전에 들었던 멘보샤로 간단히 하자고 했더니 베이징`덕과 샴페인을 더 주문한다. W는 일주일 전 콜카타에서 돌아왔단다. 그런 그가 뜻밖에 울 내외에게 카트만두 티셔츠를 한 벌씩 선물하여 좌불안석해야했다. 커피색티셔츠의 카트만두(Kathmandu)’(네팔)지명만 알고 있었지 아웃도어상품 브랜드가 있단 걸 난 처음 알았다. 그의 마음 써줌이 한량없이 고마웠다.

 

 

샴페인과 와인을 들며 W의 인도얘길 듣느라 깊은 겨울밤에 빠졌다. 그의 인도얘기 중 나의 뇌리에서 쉬이 지울 수 없을 것 같은 건 타고르와 산타니케탄 이었다. 레벤드라나드 타고르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익히 알고 있는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이다. 그 위대한 시인이 정규학교와는 담 쌓아 졸업장 하나 없는 인물이고, 히말라야오지인 산타니케탄에 학교를 세워 지금은 유명한 교육문화도시로 회자되게 했단 전설 같은 얘기였다.

 

 

타고르는 정규교육을 받지 않고 아버지의 교육열정과 자연에의 신비, 아름다움에 취하는 자유스런 깨달음의 경험이 위대한 시인으로 태어나게 했단 거다. 그가 1901년에 세운 산타니케탄의 초중등학굔 지금도 교실이 아닌 자연 속에서 학습이 이뤄지고 있단다. 태양을 가린 나무그늘 아래서 온갖 풀벌레와 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자연과 한 속이 된 학생들의 학습을 상상해 봤다. 산만한 주위에 빠져들 학생들의 수업에 집중력이 결여 될 텐데 선생은 개의치 않는단다. 자유스럼 속에 스스로 선택과 집중에 이르는 방법과 지혜를 찾게 한다는 실험교육이 성공하고 있음일 거다.

 

 

타고르가 12살 때 아버질 따라 4개월 동안 히말라야여행 때 처음 머문데가 산타니케탄이고, 그곳에 세운(대안)학교가 지금 비스바바라티대학교(Visva-Bharati University)로 발전하여 동서양문화를 연구하는 명문대학으로 노벨상 수상을 두 명, 인디라 간디수상을 비롯한 인도의 저명인사들을 수 없이 배출하였단다. W가 감명 받은 건 우리처럼 주입교육이 아닌 자연속의 감성교육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베이징`덕 전병이 나오고 샴페인은 레드와인으로 바뀌었다. 나를 뺀 세 사람은 와인애주가들인데 W는 소믈리에(Sommelier) 뺨치는 와인실력파다. 난 이런 자리에서 늘 실감하는 바지만 값비싼 와인을 마시는 이유를 모르겠다. 그래 아내로부터 재미없는 쫌생이란 핀잔을 듣곤 하지만 세상에서 젤 큰 낭비중의 하나가 술 마시는 거란 고정관념은 어쩔 수가 없다. 글면서 와인 두서너 잔을 비우는 나를 많이 발전했다고 격려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토를 달곤 하지만, 솔직히 나는 분위기 깽판치지 않으려 억지춘향노릇 함이다. 얼굴이 홍당무에서 시푸딩딩 망가지면서 말이다. 

 

 

와인 한 병을 더 주문한다. 난 빈와인병을 읽었다. 지난번의 와인과 브랜드만 다른 아르헨티나제품 이였다. 요즘은 아르헨티나와인이 저렴하고 향이 좋아 선호한단다. 셰프가 살코기양배추쌈을 돌린다. 바싹 구운 오리다리식감도 특별한데 연이어 들어온 고소한탕은 배불러 국물만 들이켰다. 포만감이 깔끔하고 담백한탕을 거부한다. 호텔 같은 고급식당에서 식사를 하면 조금만 먹어도 왜 배가 부른지 모르겠다. 값비싼 음식이 아까워 포장해달라기엔 그 양이 넘 작아 그 짓 또한 낭패다. 와인을 또 한 병 시켰다. 젊어선지, 술배가 따로 여선지 그들은 거뜬해보였다.

 

 

타고르는 채식주의자이기 전에 자연주의자였다. 그는 히말라야협곡의 광대한 분지 산타니케탄에서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몸과 맘을 살찌운 일생을 살아서다. 이름 모를 푸나무, 예쁜 꽃들이 실바람 끝에 흔들리며 변화하는 신비와 아름다움은 그의 가슴을 늘 경탄과 전율에 달뜨게 하는 거였다. 그가 학교졸업장 하나 없어도 위대한 시인이며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건 자연과 함께하는 탐구의 삶일 터였다.

 

 

창밖 서울의 밤하늘은 어지러운 불빛의 난장판이다. 풀벌레들은 문명의 굉음에 놀라 사라진지 오래다. 타고르는 불빛 대신 별빛속에서, 자동차소음 대신 풀벌레노래를 들으며 감성을 농익혔을 테다. 그런 자연에의 동화가 진정한 산교육이라 생각되어 산타니케탄에 안주하고 학교를 세우며 자식들 교육도 자연에 위임 했으리라.

 

 

타고르는 집안대대로 엄청난 부자였기에 대도시 캘커타를 외면하고 열악한 대안학교에 자식들을 교육시킨다는 게 모험일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자연속의 인성교육을 택한 타고르교육에서 오늘날 우리의 주입식교육의 장단점에 대해 고민해봐야 함 아닐까?

배불러 탕국물만 좀 먹고 남긴 고기가 아까워 내 뱃속이 얄미웠다. 와인 한 병을 더 시키려는 둘째에게 난 단호히 제지했다. 담 기횐 수없이 많다고.

 

 

디저트과일과 음료도 눈요기만으론 아깝긴 마찬가지였다. 호텔 밖은 시베리아한파가 빌딩에 부딪쳐 앙칼지게 포효하고 있었다. 산타니케탄의 겨울한파는 어땠을까? 아까 그걸 안 물었다. 만년설을 이고 있을 히말라야, 자연에 파묻힌 산타니케탄의 문화교육메카를 가보고 싶다. 아니 인도는 불가사이 한 것들의 집합체여서도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쪼잔 하게 늘 맘만 앞세웠다.

W가 베푼 겨울밤은 두고두고 울 식구들 맘에 자리할 것이다.

 

 

 온 세상이 기쁨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꽃봉오리는 꽃으로, 꽃은 열매로, 열매는 씨로, 씨는 다시 새싹이라는 활동의 순환을 끊임없이 계속된다. 그러나 꽃은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와서는 겨우 그 바쁘던 사실은 없어지고 여유와 휴식의 상징이 된다. 또한 완전한 아름다움과 평화의 표현이 된다” -타고르의 <인생론>에서-

2018. 02. 06